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를 "B급 좌파"라고 규정하고 있는 김규항은 일선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못난 현실을 뒷짐만 지고 바라보는 풍객도 못된다. 그러기에 그는 스스로를 "B급 좌파"라 정의 한다.
그는 사회진보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예수를 선전하는 신자이기도 하다. ‘진보’와 ‘예수’가 얼핏 반대 개념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가 논하고 있는 예수는 ‘허울뿐인 관념에서 벗어나 실천적 행동’을 행하는 진보주의자로써의 관점이다.
‘진보’와 ‘예수의 행동’이 지닌 공통점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행보이다. 그러기 때문에 ‘B급 좌파’ 혹은 ‘예수쟁이’가 그리고 있는 세상 읽기의 기본 틀은 인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본주의적 이기심이 가장 인간적인 품성으로 추앙되고, 남을 누르고 빼앗는 능력이 사회적 능력으로 설명되는 세상에서 사람다운 사람의 유일한 조건은 공정함을 쫓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정함을 쫓는 습성을 길러주려 애쓴다.”
그래서인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삐딱할지 몰라도 그 속에 배어진 사람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인텔리들은 늘 뒤늦게 흥분하고 먼저 절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대중의’ 저력에 뒤늦게 흥분하고 ‘대중의 반동’에 먼저 절망하는 발작과 패닉의 끝없는 반복상태를 보인다.”
그를 B급 좌파로 남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 지식층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의 음험한 욕망과 결합하여 강고한 지적권위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지식층에 그는 진보란 이름으로 딴죽을 걸고 있는 것이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의 출발은 ‘다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다. … 혁명은 한줌의 지배 계급이 차지하던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혁명의 최종 목표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공정한 가치관’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살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세상은 ‘불합리한 공론’들이 머리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좌파 인텔리들마저 자식과 연결되는 문제에대해서는 ‘공정한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제 자식이 ‘진보적 엘리트’가 되길 바랄지언정 고등학교나 마친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좌파 인텔리를 본적이 있는가?”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수십 년 간 쌓아 온 가치관을 바꾸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를 바꾸는 일은 자칫 사회의 몸뚱이마저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결코 한 발짝도 밀려서는 안 된다.

고정된 가치관을 바꾸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자녀를 스승으로 두는 길이다. 자녀의 시선만큼 자신을 따끔하게 만드는 채찍도 없다. 김규항은 열한 살 난 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진화해 나가는 것 같다.
“딸은 단지 딸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 ‘삶의 시험지’다. 한 남자가 ‘딸에게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 더 근사해질 것이다.”
가치관은 바꾼다는 건, 세상을 바꾼다는 건, 존경받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백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라고 주장해 온 많은 이데올로기들과 이론체제들이 얼마나 마르크스주의에 부합되는 이론들이었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근본 목적이 계급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본과 함께 성장해야할 프롤레타리아의 잠재력은 비록 자본주의를 뛰어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속에서 여전히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계급에 속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는 무엇이며, 그가 지향하고자 했던 사회주의는 무엇일까? 또한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갈라놓았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 차는 어떤 것일까?
오역되고 잘못 이해된 마르크스주의의 고전 전통은 무엇이며, 그 이론들이 어떻게 잘못 실천됐는지를 다음의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이 책은 영국의 좌파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에 쓴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 칼럼은 특정 독자층, 즉 스스로 생각하는 비판적 성향의 노동계급 활동가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 그들은 주류문화를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칼럼의 전형적 논지 전개 방식은 '상식' 즉 사회주의 노동자가 동료 노동자에게서 접하는 흔해 빠진 생각과 태도에서 출발해 이와 관련된 사회주의적 견해를 제시한다.
이 책은 사회주의 초보 입문서로 불려도 좋을 만큼, ‘착취’, ‘변증법적 유물론’, ‘노동자 권력’, ‘혁명적 지도’ 등의 용어를 쉽게 설명하면서, 사회주의에 관한 인식이나 전략이 세계의 흐름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잘 풀이하고 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진정한 마르크스의 근본 특징은 마르크스의 저작 전체 또는 특별히 엄선된 교의들을 충직하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급인 현대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계급의 이익. 투쟁. 해방을 이론적으로 분명히 표현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가 실천, 곧 사회주의적 사회 노동자 운동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이 책은 제3세계 민족주의의 생존 가능성과 노동 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변혁이 가장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Mr. 김정일
이 책은 굴곡 많은 북한의 역사와 김정일 이라는 독재정권주의자의 모습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엮었다. 김일성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만들어 놓은 독재체제의 그늘에서 과연 김정일은 어떤 위치에 서 있으며, 어떠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작가의 독특한 통찰력으로 파헤쳤다.
북한이라는 왕국은 궁핍한 재정난에 쪼들려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당당하게 원조를 요구하거나, 외자를 갚을 생각 대신 갚지 말아야할 이유만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억압과 곤궁에 처한 자국민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체제를 유지하기위해 현실을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김정일을 사악한 미치광이로 매도하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일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북한은 단지 냉전이라는 덫에 사로잡힌 역사의 제물이며, 김정일 역시 그 희생양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사회주의의 어떠한 면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김정일 왕국은 분명 마르크스계의 이단아가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 해나무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하여 탱고의 혼이 깃든 카미노토, '유팡키'의 조국애가 서린 팜파와 안데스를 따라 ‘네루다’의 나라 칠레에 이르는 여행길까지, 작가는 ‘세르메더스 소사’와 ‘비올레타 파라’와 같은 뛰어난 음악가를 만나 그들의 음악과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거론되어야 할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음악가들의 삶이다. 세계에 라틴음악을 알리는데 크게 공헌한 ‘메르세데스 소사’와, ‘비올레타 파라’, 그리고 ‘유팡키’와 ‘빅토르 하라’의 치열했던 삶을 모른다면 라틴음악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활동했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칠레, 아르헨티나,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의 정국은 쿠데타와 혁명으로 혼란했다. 그런 상황에서 민중의 불안을 덜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던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을 통해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폭력에 항거했으며, 단결할 수 있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터뜨려 노래하던 아르헨티나의 국민적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와 음색으로는 부족하지만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만으로 칠레 음악을 세계에 알린 ‘비올레타 파라’. 그리고 구타와 고문으로 죽어가면서도 그 상황을 노랫말로 적어 냈던 ‘빅토르 하라’.
‘빅토르 하라’의 음악이 안일한 삶에서 투쟁을 위한 길로 들어선 노래였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노래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이었으며, ‘비올에타 파라’의 음악은 체코의 전통 음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을 불태운 경우였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두 번의 이혼을 당하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끝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올레타 파라’. 산티아고로 올라와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하던 ‘비올레타 파라’의 고달팠던 삶이나, 연극무대감독이라는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 민중을 위한 노래를 부르다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속에서 죽어간 ‘빅토르 하라’의 안타까운 사연을 모른다면 라틴 음악의 달콤함 속에 녹아있는 슬픈 음색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던 ‘비올레타 파라’와 ‘빅토르 하라’와는 달리 노년 때까지 음악적 위용을 과시했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자신의 노래보다도 동료들의 노래를 불러 더욱 유명해진 경우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비올레타 파라’의 <생애 감사해>나 광대한 팜파와 신비한 안데스 천년의 한을 연주했던 ‘유팡키’의 노래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을 만큼 매혹적인 감성을 지녔다. 그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그녀는 시대의 아픔을 민중과 함께 호흡했다.

이들의 음악을 통해 라티음악이 세계적인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가 민중을 향한 목소리였기에 이들은 라틴음악을 대변하는 음악가로 남을 수 있었다.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음악가는 쉽게 잊어지기 마련이다.
라틴음악을 알아간다는 것은 열정적인 리듬 속에 숨어있는 슬픈 단조 하나를 찾아낼 줄 아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천여 개가 넘는 출판사들 중, 일 년에 한편 이상의 작품을 내는 출판사가 천 곳을 조금 넘는단다. 출판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정작 독자들이 읽을 만한 작품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은 이미 포말 상태에 있고, 그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상위 레벨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대기업에서 퇴직한 40대의 직장인들이 일명 ‘치킨’으로 불리는 ‘닭집’을 동시 다발적으로 개업한 사례가 있었다. 사무직에서 10년 이상을 종사했던 이들에게 거대한 자본과 특별한 기술 없이도 체인점에서 공급해주는 싼 원가의 ‘닭’은 그야말로 ‘봉’으로 보였을 것이다. 국민 소비가 최대량이라는 삼겹살집과는 달리 서너 평의 공간만으로도 개업이 가능 했던 닭집은 그 후 조류독감과 넘쳐나는 경쟁 업체들로 인해 풍지박살이 나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닭집의 리모델링 격인 출판사가 그 전철을 되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독자를 만족시키는 신간들은 꾸준히 출판 되고 있으며, 이번 주 신간 역시 주목할 만한 새 책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번 주에 소개할 신간 작품들은 저마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아기자기한 문체의 소설에서부터 솔직담백한 의학 이야기까지, 실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은 보석>은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노란 외투의 여인은 오래 전 모로코에서 죽었다는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 시절 나는 ‘작은 보석’이란 예명으로 불렸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란 외투 여인의 걸음은 무용을 했던 엄마의 걸음걸이를 연상케 했다. 발목을 다친 엄마는 무용을 포기해야 했고, 결국 나 역시 버려져야 했다. 내 주위를 맴돌던 어릴 적 기억은 그녀를 보는 순간 내 몸에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나는 ‘작은 보석’으로 불렸던 그 시절이 심어준 기억을 떠올리며 아득한 심연에 젖어든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과거와의 조우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연약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되고, 파트릭 모디아니의 전 작품들에서 봐왔던 결말과는 다르게,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희망적인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 희망적인 끝맺음은 그녀의 고단했던 삶에 처음으로 주어지는 작은 선물 같아서 다행스럽게까지 여겨진다.

파트릭 모디아니의 부드러운 문체와는 대조적으로 거친 문체를 자랑하는 두 소설이 있다. 2001년 단편 소설 ‘광어’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와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도모유키>다.
<도모유키>는 정유년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던 '왜장 도모유키'와 그의 누이를 닮은 '조선인 명외'와의 이야기다. 비록 일본 왜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극의 흐름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떠나, 모든 것을 잃은 서글픈 '희생자'들의 애환을 담았다.
<귀뚜라미가 온다>는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날카로운 필체로 그린 작품이

다. ‘광어’나 ‘귀뚜라미가 온다’ 등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둥글거나 순탄한 법이 없다. 허구를 그리는 소설 속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의 사랑은 아프고 깨져야만 더욱 그럴 듯 해 보인다. 자식의 폭력을 피해 좁은 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늙은 노모의 심정처럼, 그들에게 사랑은 철저히 고립된 상태가 되어야만 나타나는 감정이다. 백가흠의 소설을 보며, 극단적 사랑의 방식을 택해야만 하는 이들이 아직도 세상에 많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현대의학의 실태를 솔직담백하게 그린 의학박사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다밋)이다. 수의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중의 하나는 '아저씨'라는 호칭이란다. 일반 병원에서는 하얀 가운만 걸쳐도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동물병원의 의사들에게는 그 호칭이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좋은 뜻에서 해석하자면 생명을 다루는 의술은 같아도 직업에서 풍겨지는 인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존경심과 편안함이다. 옆집아저씨처럼 무게를 재는 일도,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환자를 낮게보는 일도 적기 때문이다. 아직도 '의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권위 의식'과 '두려움'이다. 의사에게 권위는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폼'잡는 '권위의식'은 사라져야 할 성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박사 서민의 글은 의사로써의 고뇌와 인간미가 함께 묻어나 있어 큰 점수를 줄만하다. 그의 글을 읽으며 '의사'들에게 품었던 선입견 또한 줄어들었음을 시인한다.

www.readersguide.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학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은 ‘추리소설’과 ‘스릴러 소설’들이 쏟아져 나올 때다. 오싹한 공포로 순간의 더위를 잊거나 사건의 결말을 풀기위해 신경을 집중하다보면 더위는 어느새 한 풀 꺾여 있기 마련이다.

이번 주, 더위를 해소시킬만한 책은 '법의관'으로 에드거 포우상 등 대부분의 추리문학상을 휩쓸었던 퍼트리샤 콘웰의 새로운 작품 <카인의 아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화제를 모았었던 김진명의 <살수>다.
<카인의 아들>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낙인 찍혔던 카인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범죄 인공지능 네트워크’(Crime Artificial Intelligence Network), 즉 CAIN의 숨겨진 음모를 그리고 있으며, 김진명의 <살수>는 113만의 수나라 군대와 맞서 싸운 고구려의 을지문덕을 주인공으로 사라진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역사 추리나 미스터리 외에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상큼한 소설로는 <쇼퍼홀릭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를 들 수 있다. 쇼핑중독에 빠져 사고뭉치로 치장되던 전편에 비해 다소 침착해지긴 했지만 레베카의 발랄함은 여전히 지속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을 꼭 시원하게 보내야만 할까?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에는 이열치열만큼 고전적이면서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뜨거운 몸을 더욱 달아오르게 해줄 소설들을 살펴보자.

먼저 <나는 아프리카로 간다>. 제목만 보아도 무더운 더위가 확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 서안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미국이나 유럽 쪽 국제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기아와 전쟁으로 그곳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35세를 넘지 못하며, 5살 무렵의 아이들은 내전의 희생양이 되어 마약을 투여 받고 전쟁터로 보내졌었다. 고향에서 조차 돌아오기를 거부 받은 아이들은 국제자원봉사자들에 의해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싼 내란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들은 언제 또 전쟁의 노예로 팔려갈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소개할 책은 <암베드카르>와 <아름다운 노년>이다. <암베드카르>는 인도의 카스트에 가장 밑바닥인 불가촉천민(하리잔)으로 태어나 나중에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까지 선출 되었던 암베드카르의 격정적인 삶을 그리고 있으며, <아름다운 노년>는 지금은 병마와 싸우고 있으나 한때 인권외교로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지미카터의 치열한 생을 다뤘다.
더위 해소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땀 흘려 투쟁했던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잠시 숙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도 같다.

지막으로 깊은 생각에 빠짐으로써 잠시 더위를

망각해 보는 철학을 살펴보겠다.
프라하의 이방인이었던 <카프카>와 철학박사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는 철학이 어떻게 소설 속에 전이되며, 문학 속에 살아있는지를 보여 준다.

카프카의 문학을 정의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가 작품에서 보여준 실존의 문제들을 볼 때, 카프카는 삶과 절망을 동시에 논했던 변증법적 작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검은 까마귀라는 뜻의 ‘카프카’는 그의 작품 색을 은밀히 암시한다. 카프카의 일대기를 읽으며, 깊은 철학적 사고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는 이번 주 신간 중,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다.
철학적 사고를 몸으로 실행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재미있는 예제들로 들어차 있으며, 유명한 철학가나 철학론이 논하지 않으면서도 철학의 본질을 얘기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아마도 적당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푼 작가의 의지 때문일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회와 문화에 대해 그가 내뱉을 쓴 소리가 기다려진다.

무더운 날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 보면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가올 가을처럼 성숙해진 정신적 풍요와 함께 말이다.

www.readersguide.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