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여 개가 넘는 출판사들 중, 일 년에 한편 이상의 작품을 내는 출판사가 천 곳을 조금 넘는단다. 출판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정작 독자들이 읽을 만한 작품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은 이미 포말 상태에 있고, 그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상위 레벨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대기업에서 퇴직한 40대의 직장인들이 일명 ‘치킨’으로 불리는 ‘닭집’을 동시 다발적으로 개업한 사례가 있었다. 사무직에서 10년 이상을 종사했던 이들에게 거대한 자본과 특별한 기술 없이도 체인점에서 공급해주는 싼 원가의 ‘닭’은 그야말로 ‘봉’으로 보였을 것이다. 국민 소비가 최대량이라는 삼겹살집과는 달리 서너 평의 공간만으로도 개업이 가능 했던 닭집은 그 후 조류독감과 넘쳐나는 경쟁 업체들로 인해 풍지박살이 나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닭집의 리모델링 격인 출판사가 그 전철을 되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독자를 만족시키는 신간들은 꾸준히 출판 되고 있으며, 이번 주 신간 역시 주목할 만한 새 책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번 주에 소개할 신간 작품들은 저마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아기자기한 문체의 소설에서부터 솔직담백한 의학 이야기까지, 실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은 보석>은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노란 외투의 여인은 오래 전 모로코에서 죽었다는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 시절 나는 ‘작은 보석’이란 예명으로 불렸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란 외투 여인의 걸음은 무용을 했던 엄마의 걸음걸이를 연상케 했다. 발목을 다친 엄마는 무용을 포기해야 했고, 결국 나 역시 버려져야 했다. 내 주위를 맴돌던 어릴 적 기억은 그녀를 보는 순간 내 몸에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나는 ‘작은 보석’으로 불렸던 그 시절이 심어준 기억을 떠올리며 아득한 심연에 젖어든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과거와의 조우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연약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되고, 파트릭 모디아니의 전 작품들에서 봐왔던 결말과는 다르게,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희망적인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 희망적인 끝맺음은 그녀의 고단했던 삶에 처음으로 주어지는 작은 선물 같아서 다행스럽게까지 여겨진다.

파트릭 모디아니의 부드러운 문체와는 대조적으로 거친 문체를 자랑하는 두 소설이 있다. 2001년 단편 소설 ‘광어’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와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도모유키>다.
<도모유키>는 정유년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던 '왜장 도모유키'와 그의 누이를 닮은 '조선인 명외'와의 이야기다. 비록 일본 왜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극의 흐름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떠나, 모든 것을 잃은 서글픈 '희생자'들의 애환을 담았다.
<귀뚜라미가 온다>는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날카로운 필체로 그린 작품이

다. ‘광어’나 ‘귀뚜라미가 온다’ 등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둥글거나 순탄한 법이 없다. 허구를 그리는 소설 속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의 사랑은 아프고 깨져야만 더욱 그럴 듯 해 보인다. 자식의 폭력을 피해 좁은 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늙은 노모의 심정처럼, 그들에게 사랑은 철저히 고립된 상태가 되어야만 나타나는 감정이다. 백가흠의 소설을 보며, 극단적 사랑의 방식을 택해야만 하는 이들이 아직도 세상에 많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현대의학의 실태를 솔직담백하게 그린 의학박사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다밋)이다. 수의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중의 하나는 '아저씨'라는 호칭이란다. 일반 병원에서는 하얀 가운만 걸쳐도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동물병원의 의사들에게는 그 호칭이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좋은 뜻에서 해석하자면 생명을 다루는 의술은 같아도 직업에서 풍겨지는 인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존경심과 편안함이다. 옆집아저씨처럼 무게를 재는 일도,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환자를 낮게보는 일도 적기 때문이다. 아직도 '의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권위 의식'과 '두려움'이다. 의사에게 권위는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폼'잡는 '권위의식'은 사라져야 할 성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박사 서민의 글은 의사로써의 고뇌와 인간미가 함께 묻어나 있어 큰 점수를 줄만하다. 그의 글을 읽으며 '의사'들에게 품었던 선입견 또한 줄어들었음을 시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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