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 해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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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하여 탱고의 혼이 깃든 카미노토, '유팡키'의 조국애가 서린 팜파와 안데스를 따라 ‘네루다’의 나라 칠레에 이르는 여행길까지, 작가는 ‘세르메더스 소사’와 ‘비올레타 파라’와 같은 뛰어난 음악가를 만나 그들의 음악과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거론되어야 할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음악가들의 삶이다. 세계에 라틴음악을 알리는데 크게 공헌한 ‘메르세데스 소사’와, ‘비올레타 파라’, 그리고 ‘유팡키’와 ‘빅토르 하라’의 치열했던 삶을 모른다면 라틴음악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활동했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칠레, 아르헨티나,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의 정국은 쿠데타와 혁명으로 혼란했다. 그런 상황에서 민중의 불안을 덜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던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을 통해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폭력에 항거했으며, 단결할 수 있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터뜨려 노래하던 아르헨티나의 국민적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와 음색으로는 부족하지만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만으로 칠레 음악을 세계에 알린 ‘비올레타 파라’. 그리고 구타와 고문으로 죽어가면서도 그 상황을 노랫말로 적어 냈던 ‘빅토르 하라’.
‘빅토르 하라’의 음악이 안일한 삶에서 투쟁을 위한 길로 들어선 노래였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노래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이었으며, ‘비올에타 파라’의 음악은 체코의 전통 음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을 불태운 경우였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두 번의 이혼을 당하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끝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올레타 파라’. 산티아고로 올라와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하던 ‘비올레타 파라’의 고달팠던 삶이나, 연극무대감독이라는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 민중을 위한 노래를 부르다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속에서 죽어간 ‘빅토르 하라’의 안타까운 사연을 모른다면 라틴 음악의 달콤함 속에 녹아있는 슬픈 음색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던 ‘비올레타 파라’와 ‘빅토르 하라’와는 달리 노년 때까지 음악적 위용을 과시했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자신의 노래보다도 동료들의 노래를 불러 더욱 유명해진 경우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비올레타 파라’의 <생애 감사해>나 광대한 팜파와 신비한 안데스 천년의 한을 연주했던 ‘유팡키’의 노래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을 만큼 매혹적인 감성을 지녔다. 그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그녀는 시대의 아픔을 민중과 함께 호흡했다.

이들의 음악을 통해 라티음악이 세계적인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가 민중을 향한 목소리였기에 이들은 라틴음악을 대변하는 음악가로 남을 수 있었다.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음악가는 쉽게 잊어지기 마련이다.
라틴음악을 알아간다는 것은 열정적인 리듬 속에 숨어있는 슬픈 단조 하나를 찾아낼 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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