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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님과 프란체님이 보내주신 맛난 군것질거리.
 
충북 옥천산 민속엿과 제주산 백년초 초콜릿 이랍니다.
 
음... 정말 맛있군요.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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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2-1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류사님 저도 좀 주세요~~ ^^(백년초 초콜릿은 프란체님이 예전에 보내주신 적이 있어서 아이들이 맛나게 먹었어요)

류사 2006-02-1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반갑습니다. ^^
 

<장송>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나다.

토요일 오후의 도심은 수많은 인파로 넘쳐났다.
청계천의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걷는 사람들과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동심이 묻어났다. 가족과 연인, 아이들과 마실 나온 노인들의 시선에서도 저마다 공지(空地)를 찾는 즐거움이 보였다.
하지만 여유로운 사람들의 행렬과 대비되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정체 된 도로.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좌회전이 금지된 종로. 그리고 신호에 걸린 차량들 때문에 잠시 한산해진 반대편 도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약속 장소는 좌회전만 하면 바로 도착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불법유턴을 감행했다.
어김없이 달려드는 경찰관의 훈계 그리고 ‘싼 걸로 부탁 한다’는 애원으로 끊은 3만 원짜리 범칙금을 들고서야 겨우 사인회가 열리는 대형서점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사인회는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예정시간 보다 길어졌다.



사람들 틈을 비집어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녹음기의 배터리를 교환했다.



드디어 사인회가 끝나고 한적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준비해간 녹음기가 말썽을 부려 녹음은 포기해야 했다.



사진보다는 조금 순해 보이는 인상.
<문명의 우울>에 실린 흑백 사진의 이미지와 최연소 나이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이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몰라도 날카로운 인상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사진 속 20대의 치기어린 눈빛과는 다르게 30대 초반의 차분하면서도 깊어진 눈빛은, 그의 작품이 얼마나 더 성숙되어졌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류사(이하 류) - 동양권에서 문학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이나 주목할 만한 작가가 있는가?
히라노 게이치로(이하 히)- 일본 작가도 포함되는가?
- 아니다. 일본 밖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 파리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정명훈의 연주회를 접했었다. 그의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라 깊은 감동 받았었다.
한국 작가는 번역된 작품이 많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웃음). 중국 작가 중에는 모옌을 좋아한다.
- 묘엔?
- (냅킨을 바닥에 깔더니 한자로 적는다.) 모옌!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



- (웃음) 이 냅킨은 기념으로 가져가겠다.
- (웃음)
- <일식>과 <달>, 그리고 <장송>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보면, 각각의 작품이 새로운 현대성을 발견하는 시기 즉, ‘르네상스로의 전환기’, ‘근대화의 시작’, ‘공화제로의 이행’과 같이 전환기적 시기를 배경으로 그렸다. 다음 작품의 주제가 살인으로 알고 있는데, 차기 작품 역시 역사적 태동과 맞물리는 시기를 배경으로 그릴 것인가?
- 아니다. 다음 작품은 현대를 무대로 할 것이다. 하지만 격변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라는 격변기 속에서도 인정(人情)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
- <문명의 우울>에서 묘사한 ‘열쇠’에 대한 정의가 흥미로웠는데, 과연 문학이라는 열쇠를 쥐고 있는 입장에서 본인이 풀어내야 할 문학적 과제(문제의식)는 무엇인가?
-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살고 죽느냐의 문제, 동시에 현대인이 안고 있는 불안과 우울함이 그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이 없다. 일상에 빠져 불안과 우울한 나날을 보낼 뿐이다. 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들을 서술하는 대변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본인이 지닌 근원적인 문학적의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자기 작품에 대한 PR을 부탁한다.
- 문학의 힘은 ‘언어의 명확성. 즉 생각이나 사고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명확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근원적인 문학적 힘 역시 언어를 구체화 시키는 명확성에 기인한다.
- 작품을 쓰기에 앞서 방대한 자료 수집과 현지답사를 많이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작품 구상을 마친 상태에서 자료수집과 답사를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답사를 통해 구상을 해나가는 편인가?
- 어떤 것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 그렇다면 제목은 어떤가?
- 이것 역시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다. 단지 에세이 같은 종류는 작품을 다 쓴 후에 붙이는 편이다. <문명의 우울>이 그런 경우다. <장송>과 <달>은 제목을 먼저 만든 후 작품을 썼다. 하지만 제목 붙이는 것에 그리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다. 제목 짓는 것을 싫어한다.(웃음)



- 첫 번째 답변에서도 언급됐지만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 외에 오페라나 뮤지컬 등 음악에 관련된 다른 장르의 작품을 써볼 의향은 없는가?
- 당장은 없다. 하지만 음악과 연극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도해 볼 생각이다.
- 다음 질문은 우리 리더스 가이드에 올라온 회원의 질문이다.
일식을 읽다 보면 움비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교된다. 추리 소설의 냄새도 나지만 전체적으로 지적이면서도 고풍스런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런 문체를 썼는지, 보통 문체보다 표현하는 다른 잇점이 있는지, 조금 더 쉽게 쓸 수는 없었는지 알고 싶다
.
- 작품을 쓸 때 그 시대의 문체에 맞게 쓸려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현대 단편은 현대의 문체로 쓰고 있다. 그리고 내 문체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따지면 5000매의 원고에서 겨우 40~50매 정도가 어려운 문장으로 쓰였을 뿐이다 (웃음)
- 그 시대의 문체를 쓸려고 하는 이유는 뭔가?
- 감각적이 되기 위해서다. 그 시대의 감각에 맞춰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 언제나 최신작이다. (웃음) 아직 최신작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조만간 번역되길 바란다.
- 이건 여담인데, 아쿠타가와상 수상 얘기를 할 때마다 무라카미 류의 이름도 함께 거론 되는 줄 안다. 재학 중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사람이 둘뿐이기 때문인데, 류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다.
- 대면한 적은 없는가?
-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좋은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웃음)
- 오늘 일본으로 가는가?
- 1시간 정도 인사동을 둘러보고 갈 생각이다.
- 이건, <문명의 우울>을 읽다 생각나서 준비한 거다. 장정일이라는 한국 작가가 쓴 <생각>이란 에세이인데 <문명의 우울>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해서 기념으로 준비했다.
- 표지가 예쁘다. 장식으로 써도 되겠다.(웃음)
류 - 일본어 번역어판이 없어서 아쉽다. 빨간 표지가 이쁘긴 하다. (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아쿠타가와상’의 영예를 주었던 <일식>을 볼 때마다 ‘아쿠타가와’의 <월식>이란 단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재와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再來)라는 평을 듣는 살아있는 천재가 시간을 뛰어넘어 <일식>과 <월식>이라는 진검으로 대결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문학 동네’에서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간 <다카시가와>와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을 번역 중이다.
특히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은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러지 등 아홉 편의 단편을 모은 최신작이라서 개인적로도 기대가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가로이 청계천을 바라보고 있는 문학동네 편집팀장과 통역을 해주신 두 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 자고로 열쇠라는 건 그 들쭉날쭉한 복잡한 모양에 묘한 맛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원래 밝혀져서는 안 될 자물쇠 내부의 비밀을 정밀하게 베낀 것이다. 그 자물쇠의 비밀이야말로 안쪽에 숨겨진 자물쇠가 지켜야 할 비밀과 직접적으로 통하는 것이므로, 열쇠의 형태는 말하자면 자물쇠 안쪽에 숨겨진 음화(陰畵)라는 것이다. 보물을 넣어 둔 상자의 열쇠라면 그것은 보물 자체가 가진 비밀의 교묘한 물질화다. 여인의 방 열쇠라면 그녀라는 비밀을 손바닥에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응축된 모습이 그것인 것이다. 도시 아이들이 목에 걸려있는 것은 작은 금속제의 부제, 아무도 없는 그 아이들 집의 공허다. 내가 열쇠를 가지는 맛이 어쩌고 하는 말을 쓰는 것은 그것이 각각의 비밀을 정밀히 가시화 하면서도 결코 적나라하지 않게 그 복잡한 모양 뒤로 교묘하게 비밀을 감추어버리기 때문이다.
<우울한 문명 - 자물쇠와 열쇠를 둘러싼 이미지 중 일부를 발취)


http://www.readersguid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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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0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 다 사진빨 받쳐주시네용 ^^

urblue 2005-11-0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지난 백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라고 주장해 온 많은 이데올로기들과 이론체제들이 얼마나 마르크스주의에 부합되는 이론들이었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근본 목적이 계급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본과 함께 성장해야할 프롤레타리아의 잠재력은 비록 자본주의를 뛰어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속에서 여전히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계급에 속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는 무엇이며, 그가 지향하고자 했던 사회주의는 무엇일까? 또한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갈라놓았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 차는 어떤 것일까?
오역되고 잘못 이해된 마르크스주의의 고전 전통은 무엇이며, 그 이론들이 어떻게 잘못 실천됐는지를 다음의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이 책은 영국의 좌파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에 쓴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 칼럼은 특정 독자층, 즉 스스로 생각하는 비판적 성향의 노동계급 활동가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 그들은 주류문화를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칼럼의 전형적 논지 전개 방식은 '상식' 즉 사회주의 노동자가 동료 노동자에게서 접하는 흔해 빠진 생각과 태도에서 출발해 이와 관련된 사회주의적 견해를 제시한다.
이 책은 사회주의 초보 입문서로 불려도 좋을 만큼, ‘착취’, ‘변증법적 유물론’, ‘노동자 권력’, ‘혁명적 지도’ 등의 용어를 쉽게 설명하면서, 사회주의에 관한 인식이나 전략이 세계의 흐름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잘 풀이하고 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진정한 마르크스의 근본 특징은 마르크스의 저작 전체 또는 특별히 엄선된 교의들을 충직하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급인 현대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계급의 이익. 투쟁. 해방을 이론적으로 분명히 표현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가 실천, 곧 사회주의적 사회 노동자 운동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이 책은 제3세계 민족주의의 생존 가능성과 노동 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변혁이 가장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Mr. 김정일
이 책은 굴곡 많은 북한의 역사와 김정일 이라는 독재정권주의자의 모습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엮었다. 김일성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만들어 놓은 독재체제의 그늘에서 과연 김정일은 어떤 위치에 서 있으며, 어떠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작가의 독특한 통찰력으로 파헤쳤다.
북한이라는 왕국은 궁핍한 재정난에 쪼들려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당당하게 원조를 요구하거나, 외자를 갚을 생각 대신 갚지 말아야할 이유만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억압과 곤궁에 처한 자국민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체제를 유지하기위해 현실을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김정일을 사악한 미치광이로 매도하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일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북한은 단지 냉전이라는 덫에 사로잡힌 역사의 제물이며, 김정일 역시 그 희생양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사회주의의 어떠한 면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김정일 왕국은 분명 마르크스계의 이단아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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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여 개가 넘는 출판사들 중, 일 년에 한편 이상의 작품을 내는 출판사가 천 곳을 조금 넘는단다. 출판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정작 독자들이 읽을 만한 작품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은 이미 포말 상태에 있고, 그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상위 레벨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대기업에서 퇴직한 40대의 직장인들이 일명 ‘치킨’으로 불리는 ‘닭집’을 동시 다발적으로 개업한 사례가 있었다. 사무직에서 10년 이상을 종사했던 이들에게 거대한 자본과 특별한 기술 없이도 체인점에서 공급해주는 싼 원가의 ‘닭’은 그야말로 ‘봉’으로 보였을 것이다. 국민 소비가 최대량이라는 삼겹살집과는 달리 서너 평의 공간만으로도 개업이 가능 했던 닭집은 그 후 조류독감과 넘쳐나는 경쟁 업체들로 인해 풍지박살이 나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닭집의 리모델링 격인 출판사가 그 전철을 되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독자를 만족시키는 신간들은 꾸준히 출판 되고 있으며, 이번 주 신간 역시 주목할 만한 새 책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번 주에 소개할 신간 작품들은 저마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아기자기한 문체의 소설에서부터 솔직담백한 의학 이야기까지, 실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은 보석>은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노란 외투의 여인은 오래 전 모로코에서 죽었다는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 시절 나는 ‘작은 보석’이란 예명으로 불렸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란 외투 여인의 걸음은 무용을 했던 엄마의 걸음걸이를 연상케 했다. 발목을 다친 엄마는 무용을 포기해야 했고, 결국 나 역시 버려져야 했다. 내 주위를 맴돌던 어릴 적 기억은 그녀를 보는 순간 내 몸에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나는 ‘작은 보석’으로 불렸던 그 시절이 심어준 기억을 떠올리며 아득한 심연에 젖어든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과거와의 조우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연약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되고, 파트릭 모디아니의 전 작품들에서 봐왔던 결말과는 다르게,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희망적인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 희망적인 끝맺음은 그녀의 고단했던 삶에 처음으로 주어지는 작은 선물 같아서 다행스럽게까지 여겨진다.

파트릭 모디아니의 부드러운 문체와는 대조적으로 거친 문체를 자랑하는 두 소설이 있다. 2001년 단편 소설 ‘광어’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와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도모유키>다.
<도모유키>는 정유년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던 '왜장 도모유키'와 그의 누이를 닮은 '조선인 명외'와의 이야기다. 비록 일본 왜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극의 흐름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떠나, 모든 것을 잃은 서글픈 '희생자'들의 애환을 담았다.
<귀뚜라미가 온다>는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날카로운 필체로 그린 작품이

다. ‘광어’나 ‘귀뚜라미가 온다’ 등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둥글거나 순탄한 법이 없다. 허구를 그리는 소설 속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의 사랑은 아프고 깨져야만 더욱 그럴 듯 해 보인다. 자식의 폭력을 피해 좁은 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늙은 노모의 심정처럼, 그들에게 사랑은 철저히 고립된 상태가 되어야만 나타나는 감정이다. 백가흠의 소설을 보며, 극단적 사랑의 방식을 택해야만 하는 이들이 아직도 세상에 많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현대의학의 실태를 솔직담백하게 그린 의학박사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다밋)이다. 수의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중의 하나는 '아저씨'라는 호칭이란다. 일반 병원에서는 하얀 가운만 걸쳐도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동물병원의 의사들에게는 그 호칭이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좋은 뜻에서 해석하자면 생명을 다루는 의술은 같아도 직업에서 풍겨지는 인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존경심과 편안함이다. 옆집아저씨처럼 무게를 재는 일도,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환자를 낮게보는 일도 적기 때문이다. 아직도 '의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권위 의식'과 '두려움'이다. 의사에게 권위는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폼'잡는 '권위의식'은 사라져야 할 성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박사 서민의 글은 의사로써의 고뇌와 인간미가 함께 묻어나 있어 큰 점수를 줄만하다. 그의 글을 읽으며 '의사'들에게 품었던 선입견 또한 줄어들었음을 시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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