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와 자작나무
송호근 지음 / 하늘연못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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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의 박지원에서 <토지>의 박경리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근대, 현대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사회학자 송호근의 <나타샤와 자작나무>(하늘연못)에는 그의 문학적 고백론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김보일의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에서 보던 수필 같은 서평들과 개인의 신변을 다룬 산문들 그리고 박경리와의 인터뷰를 다룬 글들을 통해 우리는 그 만의 ‘문학과 겹쳐진’ 세상사를 접한다.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정약전의 절망을 복어의 독에 비유하거나, 황진이의 슬픈 비애를 화류항 거리의 여자들에게 빗댄 문학적 감각과 백석과 임화, 김산 등의 인물들을 꿰뚫어보는 역사적 인식은 그가 지닌 자산임에 틀림없다.


단지 그의 글에서 인텔리겐치아 적인 냄새를 조금 완화시킨다면 역사와 문학을 아우르는 그의 작품이 조금 더 빛을 발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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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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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 탄생의 순간부터 아이를 요람을 흔드는 것은 엄마의 손길이 아닌 보이지 않는 죽음의 숨결이다.

“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데 또 일생이 걸린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죽음은 낡고 병든 것이 아니라 삶보다도 싱싱하게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러므로 삶의 완성이란 사라져 가는 생을 바라보며 죽음과 나누는 친밀한 속삭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의 두 주인공들은 피할 수 없었던 과거로인해 아픔을 가진 자들이다. 어린시절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유정과 가난의 핍박으로 동생을 잃어야 했던 윤수의 상처는 각인된 문신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사형수가 된 윤수와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던 유정에게 죽음은 낯설지 않은 손님이었을 것 이다. 그럼에도 그 숨결이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자신을 괴롭혀 왔던 아픔들과 온전한 화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안고 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죽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죽음은 친밀한 속삭임을 멈추고 고통만을 이야기 할 것이다.

사랑과 참회라는 진부한 소재와 불우한 사형수, 헌신적인 수녀, 권력가의 막내딸이라는 인물 배치 그리고 예상되는 결말 등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스치지 못한 ‘죽음’의 옷자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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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화살
하이예메요스츠 스톰 지음, 정도윤 옮김 / 도솔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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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관련 책들 중에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일곱 개의 화살>(도솔)은 근시적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적 교류의 참뜻을 전해준다.

일곱 개의 화살은 동서남북 네 방향과 지구 어머니, 하늘, 그리고 영혼을 뜻한다. 네 방향은 깨달음, 내성, 순수와 신뢰, 지혜를 상징하며 일곱 번째 화살인 영혼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의 조화’를 말한다. 신성한 원인 영적인 길을 걷는 우리는 여덟 번째 화살인 셈이다.

신성한 원이란 ‘삶의 바퀴’ 즉 원의 위대한 네 방향의 삶의 여정을 말한다. 그 네 방향을 돌며 사물을 보는 방식을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깨달아야만 완전한 자아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위대한 네 방향 가운데 한쪽으로만 인식하는 사람은 불완전하다.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가르침이야. 대지와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사람들을 위한 거울이야. 이건 완전한 선물이다. 뛰어 올라라. 그러면 신성한 원을 보게 될 것이다.”

인디언들의 영적 성장과 탐구를 담은 이 책은 자기완성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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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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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소설 <투견>(문학동네)을 읽고 있으면 맨발로 음습한 대지 위를 걸어가는 몽유병의 여인이 떠오른다. 대지의 중간쯤에서 푹 하고 가라앉을 것만 같은 여인은 끝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그 대지의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그녀가 만약 꿈에서 깨어나 갑작스럽게 눈을 떠버린다면 소설은 하나의 ‘장난’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께스의 소설처럼 김숨은 몽안적 현실을 더욱 몽안적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현실의 실상을 더욱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검은 염소 세 마리> <지진과 박쥐의 숲> <중세의 시간> <유리 눈물을 흘리는 소녀>등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신비감은 이 책의 전체 구도와도 호흡을 같이한다. 표제작 <투견>과 <중세의 시간>처럼 누군가가 질근질근 씹다 버린 고깃덩어리를 주워 다시 되삼키는 기분의 소설은 마치 무라카미 류의 글을 읽는 것 같아 잔혹하기만 하다.

“지진을 직감하고 멀리 달아나는 짐승들의 뿔을 가만가만 만져주는 꿈을 꾸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으로 보아, 앞으로의 소설들 역시 그녀만의 색을 유지하며 ‘김숨 마니아’들을 만들어 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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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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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에게 삶은 안착하지 않는다. 가난이 애절함을 먹고 살 듯, 떠도는 자는 한 많은 사연으로 삶을 유지한다. 가난은 몸속에 인식된 유전자와 같다. 돌연변이로 태어나지 않는 한, 가난은 승계 될 것이며 사연은 대를 이어 늘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식은 ‘풍요’를 나누기 싫어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공선옥의 연작소설 <유랑가족>(실천문학)에서도 이 허상은 많은 사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삶의 중심에서 밀려 그 변두리를 배회하는 가족사를 그리며 작가는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 작가 일 뿐”이라는 고백을 한다.

가난을 먹고 살기에 치쳐 집을 뛰쳐나온 아내와 그 아내를 만나고서도 붙잡지 못하는 달곤, 시댁식구의 거짓말에 속아 시골로 시집온 조선족 명화의 서울 방랑기, 그리고 수몰지구에 사는 갈 곳 잃은 서민들을 통해, 우리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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