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춤추는 죽음 - 탄생의 순간부터 아이를 요람을 흔드는 것은 엄마의 손길이 아닌 보이지 않는 죽음의 숨결이다.

“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데 또 일생이 걸린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죽음은 낡고 병든 것이 아니라 삶보다도 싱싱하게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러므로 삶의 완성이란 사라져 가는 생을 바라보며 죽음과 나누는 친밀한 속삭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의 두 주인공들은 피할 수 없었던 과거로인해 아픔을 가진 자들이다. 어린시절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유정과 가난의 핍박으로 동생을 잃어야 했던 윤수의 상처는 각인된 문신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사형수가 된 윤수와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던 유정에게 죽음은 낯설지 않은 손님이었을 것 이다. 그럼에도 그 숨결이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자신을 괴롭혀 왔던 아픔들과 온전한 화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안고 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죽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죽음은 친밀한 속삭임을 멈추고 고통만을 이야기 할 것이다.

사랑과 참회라는 진부한 소재와 불우한 사형수, 헌신적인 수녀, 권력가의 막내딸이라는 인물 배치 그리고 예상되는 결말 등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스치지 못한 ‘죽음’의 옷자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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