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지음, 윤현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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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가와시마 윗킨스가 쓴 <요코 이야기>(문학동네)를 읽다보면 다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가 떠오른다. 두 작품은 전쟁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본을 그렸다는 것과 순박한 아이들의 시점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반딧불의 묘>는 전쟁의 참상을 실란하게 묘사한 대작이다. 전쟁으로 고아가 되어버린 두 남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라는 무모한 싸움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요코 이야기>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조선의 북동쪽에 나남’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 요코는 일본인 아이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요코의 가족은 일본으로 피난을 떠나게 된다.

 피난 도중 여자를 탐내는 조선인의 눈을 피하기 위해 요코와 언니는 머리를 짧게 잘라 남자로 위장을 하기도 하고, 요코의 오빠는 살육을 저지르는 인민군을 피해 가까스로 일본 땅을 밟아 그리운 가족들과 재회한다.

두 작품이 비슷한 관점으로 전쟁을 고발하면서도 전혀 다른 양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은, <반딧불의 묘>가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반면 <요코 이야기>는 자국의 패망이 아이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 전쟁 물자를 회수하는 일본군의 모습 외에 전쟁 가해자인 일본군의 침략 묘사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가해자는 여자를 농락하거나 일본인을 살육하는 조선인 뿐 이다.

주인공 가족의 안타까움이 전쟁이라는 비극보다는,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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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처 라이프 1
이창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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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선을 끄는 장편 소설을 만났다. 미국 내에서 세 개의 도서상과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상을 받은 <제스처 라이프 A Gesture Life>(렌덤하우스중앙)의 명성은 겉도는 소문만이 아니었다.

유연한 글쓰기와 뛰어난 소재의 발굴 그리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은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과 세 번째 작품인 <가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인생의 황혼을 걷고 있는 구로하타는 어릴 적에 일본인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이다. 닥터라고 불리며 이웃에게 존경을 받는 그는 사실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기 가게를 운영했던 평범한 노인에 불과하다. 닥터는 하타의 배려를 받은 이웃들이 그의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붙인 호칭이다.

하지만 그 ‘배려’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성품은 한국계 입양 딸인 ‘서니’와의 마찰을 꾀하고 말았다. ‘적당’을 넘어선 배려는 충분히 ‘거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의 화제로 몸에 가벼운 화상을 입고 병원 입원해 있는 동안 하타는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소위로 복무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곁을 떠난 딸과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회상은 전쟁 당시 위안소에서 만난 ‘끝애’라는 여인의 회상과 맞물려 돌아간다.

일본인 가해자 입장에서 바라본 정신대 문제는 작가 이창래가 정신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난 후 그가 느낀 것은 ‘진실을 제대로 포착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괴리감이었다. 결국 조선계 일본인 위생 장교의 관점으로 시점을 돌린 그는 정신대 문제와 민족이라는 커다란 화두들을 슬쩍 스치듯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라는 불안한 자료의 의존과 한국이라는 땅을 머물지 않은 위치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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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무덤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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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설집 <꽃게 무덤>(문학동네)으로 권지예가 돌아왔다.

소설가 권지예, 그녀에게서는 풋풋한 향이 난다. 이미 여러 편의 책을 내놓았고 제2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음에도 그녀의 글에선 아직도 살짝 비린 바닷가의 내음이 묻어있다. 쉽게 비껴갈 수 있는 소재들을 잘 끄집어내어 작은 도마위에서 요리하는 그녀의 재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 맛의 깊이가 구수하지 않다.

표제작인 <꽃게 무덤>(문학동네)이나 <뱀장어 스튜>에서 소재로 쓰인 ‘간장게장’과 피카소가 인생의 마지막 여인에게 바쳤다는 그림 ‘뱀장어 스튜’ 등을 통해 작가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에 비해 어이없이 내려지는 결말은 허무하기만 하다. 오히려 중편 소설을 예상하고 후반부에 힘을 쏟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밀> 역시 유괴를 당한 아이의 시각에서 쓴 것은 좋았지만, 아이가 유괴 상황을 몰랐다거나 공포심이 없었다면 모를까, 자신이 구덩이에 묻혀 죽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가벼워진다. 새가 되려나 보다”라는 시각으로 문장맺음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표면의 윤기를 닦기보다는 내면에 단단한 돌들과 씨름하는 그녀의 새로운 글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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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장미
마루야마 겐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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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데뷔작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고고(孤高)의 작가’로 불렸던 마루야마 겐지가 <납장미>(랜덤하우스중앙)란 제목으로 영화배우 다카쿠라 켄을 표지에 내걸었다.

“철도원’으로 유명한 다카쿠라를 내세운 이유는 ‘카메라만으로는 모두포착해내지 못하는 스타의 매력과 철학적인 이미지를 문자로 이끌어 내고 싶다”는 작가의 오랜 꿈 때문이었다. 형기를 마치고 고향 ‘회귀도’로 귀향하는 이미 늙어버린 ‘도주의 달인’ 겐조는 가난이 지긋지긋해 암흑가에 몸을 던졌던 악인이었다.

어둠의 세계에서 양대 조직의 두목으로 기세를 날리던 시절도 가고, 사랑했던 여인 야에코를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귀향하는 그를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젊은 암살자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딸이다.

하지만 차분히 죽음을 기다리는 그에게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와 야에코의 망령은 그의 과거만큼이나 그를 놓아 주지 않는다. 과거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살아있는 딸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잡아야하는 겐지의 삶은 비껴갈 수 없는 운명에 압사 당한지 오래전이다. 카메라로 담을 수 없었던 배우의 영상을 글로 옮긴 만큼 작가의 시선은 당당하게 늙어가는 두 주인공을 교묘히 조합시켰다.

사무라이가 칼을 빼들고 적장의 목을 베기까지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루야마가 다카쿠라의 날카롭고 묵직한 칼날을 묘사하기 드린 시간은 너무도 지루하다.

총탄이 박혀 피워낸 납 장미를 활용하기 전까지 지루하게 끼어드는 회상과 너무 자세히 묘사하고펐던 주인공의 내면 상태는 오히려 극의 흐름을 흐리게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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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퍼니 발렌타인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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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대담집 이 출간된 적이 있다.

무라카미 류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폐증(自閉症)이다”라고 하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자페증이면 무라카미 류는 자개증(自開症)이다”라고 말 할 정도로 두 사람의 간격은 멀기만 했다.

이런 상반된 성격의 두 작가가 만나 공통적으로 나눈 대화는 “어느 작가의 출현으로 자신의 일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상응하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내용이었다. 동시대 작가로 서로 다른 극에 놓여있는 문학의 관점을 공감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무라카미 류의 문학적 지반을 이루고 있는 자괴적인 애정론이 계속 모티브가 되는 한 그 극점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마이 퍼니 발렌타인>(랜덤하우스중앙) 역시 마약과 섹스, 변태적 행위와 결핍된 애정 등이 소재로 다루어진 단편집이다. 하루키의 ‘자개증’이란 표현처럼 꼭꼭 숨기거나 은근히 돌려 말하길 거부하는 류의 글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아프도록 후벼 파는 사디스트적인 기질이 있다.

류는 독자들을 ‘변태적 기질을 지닌 잠정적인 탐닉자’로 규정해 놓고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마음껏 펼쳐 놓는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남기는 여운은 원초적인 도발이 아니라 씁쓸한 과거로의 회기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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