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처 라이프 1
이창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시선을 끄는 장편 소설을 만났다. 미국 내에서 세 개의 도서상과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상을 받은 <제스처 라이프 A Gesture Life>(렌덤하우스중앙)의 명성은 겉도는 소문만이 아니었다.

유연한 글쓰기와 뛰어난 소재의 발굴 그리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은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과 세 번째 작품인 <가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인생의 황혼을 걷고 있는 구로하타는 어릴 적에 일본인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이다. 닥터라고 불리며 이웃에게 존경을 받는 그는 사실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기 가게를 운영했던 평범한 노인에 불과하다. 닥터는 하타의 배려를 받은 이웃들이 그의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붙인 호칭이다.

하지만 그 ‘배려’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성품은 한국계 입양 딸인 ‘서니’와의 마찰을 꾀하고 말았다. ‘적당’을 넘어선 배려는 충분히 ‘거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의 화제로 몸에 가벼운 화상을 입고 병원 입원해 있는 동안 하타는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소위로 복무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곁을 떠난 딸과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회상은 전쟁 당시 위안소에서 만난 ‘끝애’라는 여인의 회상과 맞물려 돌아간다.

일본인 가해자 입장에서 바라본 정신대 문제는 작가 이창래가 정신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난 후 그가 느낀 것은 ‘진실을 제대로 포착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괴리감이었다. 결국 조선계 일본인 위생 장교의 관점으로 시점을 돌린 그는 정신대 문제와 민족이라는 커다란 화두들을 슬쩍 스치듯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라는 불안한 자료의 의존과 한국이라는 땅을 머물지 않은 위치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한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