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또 한 명의 옆지기를 떠나보냅니다.
조금 있으면 만 2년 꼬박 채우는 데, 정확하게 따지면 만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네요.
지금 일하는 잡지에서 일하는 10년 동안 모두 5명의 옆지기를 떠나보냈습니다.
저보다 앞서 편집장으로 일했던 장석남 선배까지 포함해서 말하자면 6명 째가 되는군요.
처음 출판사 일을 배우기 시작할 때 함께 일했던 선배가 함민복 선배였습니다.
그 무렵 민복 형의 건강이 썩 좋지 못해서 함께 한 시간은 1년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기억에는 참 오래 남는군요.
첫 정이란 그래서 무섭습니다.

오늘 떠나는 녀석도 편집자로써 머리를 올려준 선배로 절 기억할까요.

예전에도 몇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출판계는 노가다판이랑 흡사해서
나이들어서도 늦게까지 배겨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집사람이랑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에 대해 상의했었는데, 자기는 한 직장에 너무 오래 있어서
도리어 무능해보일 수도 있다고 염려하더군요.
3-5년 마다 한 번씩 직장을 옮겨주는 것이 이 세계의 관행처럼 된 것은 그만큼 이쪽 직장들이
안정적이지 않은 까닭도 있고, 또 한 곳에 오래 있다보면 타성에 젖기 쉬운 까닭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출판이란 것이 종합문화적인 속성이 있어서 여러 경험을 쌓으면 그만큼 유리한 측면도 있긴 합니다.

나가려는 이 친구를 잡으려고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쓰고,
3년은 버텨야 그래도 경력이 된다고 협박도 해보았는데 요새 애들이라 그런지 자기 고집을 한 번 세우니
선배의 말을 잘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별 수 없는 일이죠.
자신의 삶이니 제가 어찌 말한다고 해도 결국 판단은 스스로의 몫일 테니까요.
오는 3월 4일 외국에 나갔다가 20여일 쯤 후에 귀국한다는 데, 그런 뒤에 또 어딘가로 나갈 모양입니다.
한 번 외국에 나가면 잘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는다던데...

모쪼록 건강하게 잘 지내다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쓰고자 하는 글, 성공했으면 좋겠고, 스스로 희망하는 대로 괜찮은 글쟁이가 되어
어딘가에서는 편집쟁이들에게 자기도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원고 청탁 받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절 거쳐간 후배들도 꽤 많습니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떠올려보니 미운놈, 고운뇬, 나쁜놈, 좋은놈이 골고루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엄한 선배였고, 가끔 제 성질에 못 이겨 못된 성질 부린 적도 많았는데,
지금 같이 일했던 녀석은 성격이 모질지 못해 제 앞에서건, 저 못 보는 곳에서건
울리기도 많이 울렸을 테고, 울기도 많이 울었을 겁니다.

편집일이란 게 눈에 도드라지진 않아도 힘든 일입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높이 평가해주지도 않지요.
실수나 잘못은 눈에 확 드러나는데 반해서 잘된 점, 좋은 점은 그리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책 만드는 일이 좋아서 시작했다가 책 만드는 사람들이 싫어져서 떠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저와 일했던 친구들은 절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오늘 제 곁을 떠나는 이 녀석은 또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요.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부디 본인이 꿈꾸고 희망했던 대로 삶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쉽게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마음으로 얼마나 많이 그대에게 고마와했는지....
꼬옥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잘가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질기게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Farewell, sullga! See you again....

* 추신 : 내가 성질 드러운, 거기에 곰만한,  게다가 냄새까지 나는 코알라라구...
            흐흐, 너는 평수 넓은 아메리칸 너구리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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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을 능력있고 좋은 분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근데 십년이라, 으음. 대단하단 생각이...

2006-02-28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6-02-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말씀 복사.

paviana 2006-02-2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지 않아도 님의 그 마음 그 옆지기 분이 잘 알거라 생각됩니다. 그분이 부럽네요.^^

마태우스 2006-02-2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댓글 복사는 인터넷법 2조 2항에 의해 금지되어 있습니다. 벌금으로 저한테 땡스투 세번 눌러 주세요

마태우스 2006-02-2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님/비슷하게 쓰는 건 더 나쁘다는 설이 있습니다. 땡스투 일곱번!

stella.K 2006-02-28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 쉬운 일이 없군요. 오면 떠나는 것 또한 정해진 이치겠죠. 많이 섭섭하신가 봅니다. 그리 속정이 깊으셔서야 원...

딸기 2006-02-2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비연 2006-03-0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03-0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6-03-0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세 번이라, ㅎㅎㅎ 마태님, 몇 달만 기둘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