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선생이 1년 반의 백혈병 투병 끝에 지난 5일 오후 9시 반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향년 49세의 일기로 소천(召天)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주석 선생과의 인연은 "옛그림읽기의 즐거움"을 펴낸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주석 선생을 처음엔 저자와 독자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고 누구인지 미술쪽, 우리 한국고미술 분야에 정말 괜찮은 감식안과 문재를 지닌 미술사학자가 등장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열화당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옛그림읽기의 즐거움"에 실린 "인왕제색도"와 "고사관수도"의 이미지를 복사하여 액자로 만들기도 했는데, 오주석 선생과 저의 이승에서의 인연은 그런 관계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2001년 9월부터 당신이 제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편집자문위원이 되셔서 저는 한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2005년이니 햇수로는 4년이고, 만 3년 정도의 기간동안 뵈올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부음에 즈음하여 신문에 실린 고인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엄정한 감식안과 작가에 대한 전기(傳記)적 고증으로 회화사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써 왔다”고 했다는데, 오주석 선생의 그간 활동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런 평가는 지극히 당연하나 그럼에도 당신의 넓은 도량과 흐뭇한 미소, 우리 미술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할 길은 없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병증을 알기 전에 저는 선생을 모시고, 함께 역사기행을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좀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것, 좀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당신은 늘 음악과 술을 즐겨하였고, 조선시대의 도학자들이 지닌 높은 정신세계를 흠모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거문고를 익히고 연주하고, 옛그림을 보되 이를 해석하기 보다는 이를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비록,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주장하는 바에는 사특함이 없었으며, 세사(世事)의 바르지 못함을 참지 아니했습니다. 특히 우리 옛 미술을 욕되게 하는 비평에 대해서는 더욱더 참지 아니하였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원통합니다. 저는 당신이 투병 중일 때 병문안 한 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전화로 몇 번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그리 말씀하시더니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서양미술가들은 알고, 좋아하되, 단원의 그림은 그만 못하다 여기는 자세를 질타하고, 우리가 우리 옛 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이를 마음으로부터 좋다 여기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와 했습니다. 이제 뉘 있어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겠습니까. 당신의 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옛 것의 아름다움을, 당신의 그 마음과 해석을 즐겨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학문적으로 더욱 많은 일들을 하여 주실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등지니 애석한 마음 누를 길이 없습니다.
부디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 편안하시길...
2005. 2. 7. 風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