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규현 신부님을 처음 뵌 것은 1989년 7월의 일이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임수경 씨가 북한에 밀입북하여 평화축전의 남한 측 전대협 대표로 참가해서 보인 의젓하고, 분명한 행동에 찬사를 보냈지만 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숨막혔던 상황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수경 대표는 하마터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랫동안 북한이나 혹은 제3국의 망명자로 지내야 할 뻔 했다. 그때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사람이 바로 문규현 신부님이었다. 문규현 신부님은 목숨을 걸고 북으로 넘어갔고, 다시 목숨을 걸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어쩌면 주님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봉헌했을 때부터 이미 당신의 육신과 영혼은 지상의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임수경의 방북 사건 이후 당신은 한동안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고, 풀려난 뒤에도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는 전북 부안에서 핵폐기장 백지화 대책위원회를 맡아 부안방폐장 건설을 저지시켰고, 이후 생명평화운동에 누구보다 헌신해오셨다. 얼마전엔 ‘사람과 생명, 평화의 가치’ 회복을 목표로 2달여 동안의 오체투지를 마친 바 있다. 당신에게 용산참사는 무엇이었을까?  

이 세상의 가난하고 힘없는 풀뿌리 같은 백성들을 자신의 터전에서 뿌리째 몰아내려다 생긴 일이 아니었던가. 이 땅의 자본이 한 줌의 이익을 위해 자기 동포를 불에 태워버린 사건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검사들은 이들 모두에게 실형을, 그 중 결혼한지 이제 막 1년밖에 안 된 한 사내에겐 8년이란 형량을 구형했다. 정의가 강물 같이 넘치는 사회는 결코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문규현 신부님은 또다시 목숨을 걸고 11일 동안 단식투쟁을 해오셨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당신의 단식 농성을 알리지 않았다.  

결국 오늘 당신이 혼절하여 두 차례나 심장이 멎을 뻔한 지경에 와서야 우리는 그 소식을 접한다. 부디 당신이 쾌차하시길 어서 빨리 일어나 이 땅의 가난하고 힘 없는 어린 양들을 지켜주는 목자로 돌아오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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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10-2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깝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0-2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하신 분이니 빨리 쾌유하시리라 믿습니다.

qualia 2009-10-2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로운 분이십니다. 시대의 양심을 떠받치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쾌차하셔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비연 2009-10-2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쾌차하시길...기도할 뿐입니다.

Kir 2009-10-2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드시 쾌차하셔야 합니다. 2009년의 악재는 어디까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