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블로그'란 공공재의 사적 이용 

인터넷 블로그(서재)가 대세가 되면서 누구나 공공의 필자가 되는 경험을 손쉽게 할 수 있다. 뭐, 이 자리에서 블로그가 공공의 공간이냐, 아니면 사적인 공간이냐를 두고 논쟁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그건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가 결정할 개인적인 사안이지 옆에서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생각외로 심각해질 수 있는 때가 있다. 그건 해당 블로그가 유명하고, 블로거가 유명해질 때다.   

안면 까는 글쓰기를 하는 강준만

'누군가와 논쟁을 벌일 때 솔직하면 지는 거다. 인정하면 지는 거다'란 이야기가 있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준만 선생을 좋아하지만 요 근래에는 강준만의 글을 열심히 읽지는 않는 편이다. 내가 강준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 사회에서 참 보기 드물게 - 사실상 거의 최초라고 생각하는데 - 안면 까는 글쓰기를 한다는 점이다.  

인격이란 상대방이 나에게 예상하는 행동양식 

언젠가도 말한 적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인격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데, 인격이 곧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인격이란 외부의 시선에 투사된 나의 모습일 뿐이란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란 매우 견고한 시선이기도 하다. 인격이란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간에, 자매간에 혹은 이웃간에 수많은 사회적 관계의 틀 속에서 내가 어떤 사건이나 일과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상대방이 예견할 수 있는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동료와 지나가다 어깨를 툭 부딪쳤다거나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그가 뭐라 변명할지 미리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이 상대방의 인격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대응을 보였을 때, 어깨를 툭 부딪쳤는데 평소 같으면 씩 웃고 지나갈 사람인데 갑자기 돌아서서 욕을 한다거나 나를 밀쳐버린다거나 할 때 우리는 상대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로 돌변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상태가 좀더 발전해 사회가 인정해줄 수 있는 대응 방식 이상으로 나가면 '인격파탄'이 된다. 

인격파탄적인(?) 강준만 

그런 점에서 강준만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생각해오던 글쓰기 방식 - 예를 들어 '주례사 비평' 같은 - 과는 다른 대응을 보여주는 글쟁이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은 동업자 글쟁이들에게는 일종의 인격파탄적인 글쓰기를 하는 필자라고 볼 수 있다. '비평'이란 말 속에는 이미 '비판적 글쓰기'란 뜻이 담겨져 있는데, 비난과 비평(판)의 가장 큰 차이는 논거의 존재 유무다. 원칙적으로만 보자면 비평가란 누구나 다 그렇게 글을 쓸 수 있고, 친소, 관계 유무와 상관없이 그와 같은 원칙 아래 글을 써야 하고, 공공의 공간에 글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그에 대한 비평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논문을 쓴 뒤 심사 받는 일을 가리켜 논문을 방어(디펜스)한다고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학자가 된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입론(논리적,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이 발견했거나 생각한 바를 주장)하는 과정을 훈련하는 것이다. 입론은 당연히 기존의 입론들에 대한 비판 내지는 공격이다. 학문의 세계가 예술과 통하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남이 이미 다 연구해논 것을 되밟아 확인만 하고 돌아서는 것은 '학습'이지 '연구'가 아니다.    

강준만이 생매장 당하지 않는 이유

강준만 이후 진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학문에서 논거, 인용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우치게 된다. 강준만이 일종의 인격파탄적인 글쓰기 방식인 '실명비판'을 도입하고(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을 원칙적으로 지지하지만 이건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아무나 시도하기엔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고수하면서도 지금까지 생매장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힘이 뒷받침하고 있다.  

첫째는 그의 글쓰기(실명비판)가 충분한 자료와 구체적인 논거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가 자신의 매체(인물과사상)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힘은 그에게 공격당한 사람이 반격해올 때, 스스로를 디펜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두 번째 힘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힘인데, 그의 실명비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길드'라 할 수 있는 지식인공동체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한 무시(지적인 살해)'를 모면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자신의 글을 지속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매체(인물과사상)와 사회적 지위(교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구에는 오펜스 파울(공격자 파울)이 있고, 디펜스 파울(방어자 파울)이 있다. '파울'이란 '반칙' 보다는 조금 낮은 단계의 행위인데, 암묵적인 동의에 의한 무시가 일종의 '반칙'이라면 강준만식 글쓰기가 내게 가끔씩 이건 좀 '오바'인데라고 느끼는 부분은 파울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있을 수도 있는 정도의 실수라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나는 강준만이 파울을 범한 적은 있어도 반칙했다고 여긴 적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데 강준만이 생매장 당하지 않는 세 번째 이유쯤 되는 것이 있다면 그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독설(?)이 따끔할 수는 있어도 뼈가 부러질 만큼 중상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만약 그 정도 파워가 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무관심과 호평 사이에서  

자, 이걸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로 가져와보면 이렇다. 특히, 알라딘 서재는 다른 블로그들과 달리 결국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쇼핑몰의 곁방살이인 셈인데, 그런 특징 중 하나가 '리뷰'가 중요한 콘텐츠라는 것이다. '리뷰 = 비평'이라 했을 때 알라딘 쇼핑몰을 이용하는 우리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중요한 생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책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적 상품들을 소비하고, 그 결과를 블로그에 리뷰의 형태로 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당신이 쓰는 리뷰의 대상 서적들은 어째서 별점이 넷이거나 그 이상인가? 이 지점에서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첫째. 나는 책에 별이란 기호를 이용해 단순히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 동의한 적이 없지만 그 유용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인정한다.(누가 나의 긴 리뷰를 다 읽어주겠는가?) 둘째. 어째서 리뷰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나 할 말이 없는 책에 대해 아까운 시간과 공력을 들여 리뷰를 써야 하는가? 셋째.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저자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거나 도리어 반대하는 경우 그리고 그 반대가 의미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일부러 비판적인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알라딘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사실 알라딘에 의해 구조화된 결과물 

앞서 별점 형태가 알라딘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 따른 결과인 것처럼, 추천도 마찬가지다. 종종 알라딘 커뮤니티가 지나치게 호혜적이고, 어떤 문제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란 분위기로 흘러간다며 알라디너들을 비판하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이 역시 상당 부분은 알라디너 자신의 문제라기 보다는 알라딘의 구조가 알라디너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기고하고 있는 경향신문 칼럼엔 추천 혹은 동의에 해당하는 '꽃 던지기'와 비판, 반대를 의미하는 '돌던지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알라딘에는 추천 이외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도록 구조적으로 강제한다.  

우리가 누구나 강준만도 아닐 터인데 자신을 드러내면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건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자신의 인격에 손상을 입을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둘째는 반대하는 논거를 찾아 구체적으로 예시한 뒤 되돌아 올 반격까지 디펜스하면서 글을 쓰는 건 어렵다. 셋째는 어차피 심심풀이삼아 재미나자고 하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각을 세우며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여기에 글을 쓴다고 명성이 쌓이거나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뭐 그런 사람들도 가물에 콩나듯 있긴 하지만).  

블로그와 글감옥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글쟁이가 되는 경험을 쌓는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웹1.0을 기반으로 웹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글을 올리는 행위보다 더욱 손쉽고, 그 뒤에 수정을 가하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별 고민 없이 글을 쓰고, 간혹 문제가 생기거나 자신의 글로 인해 불편해진 사람들이 항의하여 불리한 상황에 몰릴 때는 블로그를 자신의 안방이니, 일기장이니 하는 논리로 디펜스하려 든다. 그러나 소통이란 어느 경우에도 일방적일 수 없으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설령 그것이 본인이 희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블로그가 공공영역이냐? 아니냐?(블로그란 공공영역이기도 하고, 사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어쨌든 내 집이니까 내 맘대로 불을 지르거나 자기 방에서 'X'싸는 사람을 우리가 정상으로 보지 않는 건 확실하지 않은가.) 이곳의 분위기가 알라딘에 의해 구조화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 유일하게 확실한 원칙이 있다면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이다. 누군가에게 근거 없는 악플, 감정적인 언사를 남발한다면 본인도 언젠가 그와 같은 악플, 감정적인 언사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그 역시 본인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인격이 다른 이들의 시선에 의해 고정되는 것처럼 '글' 역시 인격과 같아서 종종 자기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 아차차, 내가 왜 요즘 강준만의 글을 열심히 읽지 않는가 하면 요즘 그의 글은 태반이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짜깁기로만 된 글이 한 편으로 완결되기도 한다. 물론 강준만 정도면 그렇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인용한 부분을 읽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건 강준만 자신이 일종의 살아있는 텍스트로서 의미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가 살아있는 텍스트가 되는 일은 좀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반 권위주의적이라 그럴지도 모르고, 다른 하나는 나도 그가 인용한 텍스트를 읽었기 때문에 굳이 그가 짚어주는 맥락대로 읽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결론! 나도 책 좀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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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1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바람구두님.

이곳이 알라딘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확실한 원칙인거죠.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누군가에게 근거 없는 악플, 감정적인 언사를 남발한다면 본인도 언젠가 그와 같은 악플, 감정적인 언사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그 역시 본인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이 부분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바람구두 2009-10-19 14:18   좋아요 0 | URL
흐흐, 저는 다락방님 같은 스타일이 좋아요.
"하고 싶은 말은 한다" 그러나 타인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적절히 배려한다는...(잘 알진 못하지만 제가 봐온 다락방님 스타일이더라구요.)

Kir 2009-10-20 00:50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바람구두님처럼, 다락방님 같은 스타일이 좋아요.

2009-10-19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9-10-19 14:17   좋아요 0 | URL
뭐, 그것도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투닥거림도 없이 사느니 약간의 투닥거림은 활력소가 될 수도 있잖아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세요. ^^

Arch 2009-10-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람구두님의 글이 좋습니다. 추신의 저 말은 귀엽구요.

바람구두 2009-10-19 14:16   좋아요 0 | URL
귀여움은 모든 연약한 것들의 생존 전략이죠. 흐흐

울보 2009-10-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를때가 있어요,,
님들이 서로 소리 높여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할때 그냥 지켜보는 한사람으로,
아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이야기에 같이 호응하기에는 모든이들이 다 옳은것같아서 이럴때 우유부단하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 속에 글로 섞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글로 조분조분 쓸 수있다는것, 말이 아니라 참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서로가 아파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지요,
상처주지 말고, 서로의 의견을 말하는것은 좋지만 상처는 주지 말고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아닌가요, 제가 뭘 모르는건가요,??

바람구두 2009-10-19 15:35   좋아요 0 | URL
자신의 입장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힘들고,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것이고요. 설령 자신의 입장이 있더라도 그것을 피력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용기와 각오가 필요할 때도 있지요.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내 가족이나 친구의 일도 아닌데 굳이 그만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도 많고요.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상처받는 일을 피하기만 할 수도 없을 때가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그런 일(남들이 볼 때는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을 자신의 일처럼 여겨서 말하게 되기도 하고요. 저는 알고 모르고의 문제보다 그 자체도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는 거란 생각이 드네요. ^^ 심각하면 심각한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의 입장이 또 있는 거죠.

Kitty 2009-10-1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식땜에 눈이 빨갛지만 길어도 눈물 찔끔거려가며 열심히 읽었습니다 ^^

비연 2009-10-19 23:05   좋아요 0 | URL
앗. 성공적으로 끝나신거죠? ^^

바람구두 2009-10-20 09:21   좋아요 0 | URL
음, 저도 매번 안경을 새로 바꿀 때마다 차라리 수술을 하고 생각해보는데
괜찮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