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 얼굴 없는 가면
루서 링크 지음, 김병화 옮김 / 심산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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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악마는 극도의 혼란이 뒤섞인 존재이다. 사탄은 신학이 만들어낸 존재이며, 실용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치학의 산물이며, 기묘하게 얽힌 회화적 전통의 산물이다. … 그는 어떤 인물이 아니라 추상적 존재에 지나지 않으므로 얼굴을 가질 수 없다. 하나의 일관성 있는 “인물”이라는 확신감을 주지 못한 그는 하나의 사악한 힘으로 신빙성 있게 등장할 수도 없다. 그는 가면 밖에 없는 인간이다.」

미술에 있어서 도상학은 어떤 정해진 형태이고 상징이면서 어떻게 보면 약속이기도 하다. 도상학으로 우리는 그림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림안의 무수히 엉켜있는 인물들 중 누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다. 종교화 특히 기독교 회화에 있어서 도상학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림이고 뭐고 관심도 없고, 도상학? 그거 뭐지? 하는 사람일지라도 의외로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깊이 들어와 있다.

어떤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선한 눈동자에 적당히 마른 몸, 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의 손바닥에 못 자국이 있다면 그건 누가 봐도 예수이며, 손에 열쇠를 쥐고 있는 노인은 십중팔구 천국의 문지기 베드로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주로 파란색 옷을 입고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의 긴 머리는 창녀의 허영심을 상징한다.(비록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하얀 옷에 날개를 달고 있는 백인이 천사라면, 까만 피부에 뿔을 달고 있는 험악한 인상을 한 인물은 악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악마 : 얼굴 없는 가면’은 악마는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까만 피부, 험악한 인상, 뿔, 갈고리 혹은 삼지창, 가늘고 긴 꼬리 등 악마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그동안 많았지만, 사실 그것은 악마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예수와 마리아 등은 시각적으로 하나의 약속된 모양새를 만들어왔지만, 악마만큼은 도무지 형태를 짐작할 수도, 표현할 길 없었던 인간들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임의로 차용한 것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난 수세기동안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악마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각보다 무척 복잡한 문제이며, 과연 악마는 실재하는 존재인가? 하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악마의 기원은 어디인가? 흔히 악마는 루시퍼라 불리는 천사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시퍼는  신에 의해 천국에서 추방당해 악마가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루시퍼는 원래 ‘빛을 가져 오다’란 의미의 새벽별, 즉 금성을 뜻하는 단어였다는 것이다. 새벽별이 사탄이 된 것은 이사야서 14:12의 한 구절에서 시작된다. “그대는 어찌 하여 천국에서 추락했는가. 오 루시퍼, 아침의 아들이여!” 이 구절은 한 독재자 왕이 욕심을 부리다가 실패하고 지하세계로 떨어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로, 독재자 왕이 빛나는 별로 은유되어 루시퍼가 되고, 독재자 왕이 악마와 동일시된 후 루시퍼는 악마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악마의 기원을 논하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악마 역시 세상을 창조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꽤나 골치 아픈 딜레마이다. 신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으니 악마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을 인정한다면 신은 악을 창조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신학적 논쟁 사이에 원래는 적대자를 의미했던 사탄이란 단어는 악마와 동일어가 됐고, 원래 악이 아니었으나 악을 선택한 반란천사를 등장시켜 루시퍼와 악마, 사탄이 거의 같은 의미가 됐다.

악마의 생김새가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알려진 것은 그리스의 목신 판, 사티로스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 그나마 알려진 것이었지만,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악마는 결국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뿔과 무시무시한 생김새를 가진 악마는 그리스 신화의 목신과 유사하고, 삼지창은 포세이돈이 들었던 것과 같지만, 악마의 모습은 사실 어느 시기, 어느 때라도 정해진 모습은 없었다. 어느 그림에서는 이집트의 신과 닮았고,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어느 조각상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어느 때는 천사와 별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김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습과 상관없이 미술에서 표현된 악마의 역할이며, 그 역할이 결국 악마가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악마는 실재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결론짓고 있다.

오늘날에는 악마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지만, 사실 악마는 기독교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기독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확고하며, 기독교에서 악마의 역할은 창조주, 천사, 그리고 죄인과 매우 중요한 관계를 가진다. 미술에서는 그림으로 표현하기 힘든 창조주 대신 천사 또는 그리스도가 악마의 상대자로 나선다. 이때 악마는 그리스도의 유혹자, 신의 적대자, 천사에게 패배해 지옥으로 쫓겨 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지옥으로 쫓겨난 악마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을 관장하며 타락한 죄인을 벌주고 고통을 준다. 여기서 악마는 신의 대리인과도 같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신 대신 죄인에게 벌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악마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용, 뿔, 꼬리 등 어느 하나 현실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악마가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라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악마가 죄인을 다루는 장면이다. 그것은 과거 기독교에서 이단을 처벌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갈고리, 화형, 뼈를 으스러뜨리는 기계 등에 의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은 이단을 고문하고 처형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지옥이라 묘사된 그림은 결국 현실에서 벌어진 실제 현장이었고, 생생하다. 교회는 이단자를 악마라 했으며, 서로 반목하던 세력들은 서로를 악마라 지칭했다. 악마는 누구인가? 악마는 뚜렷하게 지어진 형태가 없는 것처럼 그 존재 역시 때에 따라 달라지고 다르게 규정되었다.

커다란 종교화이든 개인 소장의 작은 그림에서든 악마는 늘 존재한다. 그림 속에서 악마는 뚜렷한 특징도 없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려지고, 어디에서도 그 존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변적인 존재일 뿐이다. 이는 악마는 자체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반대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 그것을 규정할 권력을 지닌 사람에 의해 정체가 결정되는 특이한 존재라는 것의 반영이다.

「신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악마도 실재하지 않는다. … 역사적으로 악마는 자기가 반대하는 누구에게나 악마라는 딱지를 붙이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 올 수 있는 도구였다. 그것이 악마의 용도였다. … 항상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 얼굴 없는 존재, 오로지 가면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악마는 가장 순수한 타자(他者)였다. … 그것은 악마성이라기보다는 인간성 자체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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