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모든 것, 또는... - 단편
연두 지음 / 청어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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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 정말로 생소한,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서 지나치듯 들은 기억이 납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그냥 훑고 기억 저 너머로 사라졌던 내용. 새삼스레 기억을 더듬었지요.

이질감. 나와 다른 누군가를 볼 때의 그 알 수 없는 감정. 동정도 호기심도 아닌 그 무엇. 가까이오는 것이 꺼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다가서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감정. 그러면서도 그것이 나에게는 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면서 입으로는 한껏 그들을 추켜세웁니다. 그것을 이겨낸 당신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고 뇌까리며 한 구석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느꼈떤 그 감정, 죄책감, 동정. 아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불편함. 그렇습니다. 글 속의 선우가 말했던 그 불편함, 다른 그들을 보며 느끼는 그 감정을 기억 저 너머로 보내고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 잊어버리죠.

그것을 뭐라 해야할까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왜 저는 로맨스 소설을 보면서 남여의 관계, 그 아픔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글 속의 선우의 입을 통해 내뱉은 작가의 말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어쩌면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꾸만 비약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면서도 헤어진 두 사람. 그리고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남자의 동생. 다가서고 싶어하고 견딜 수 없어하면서도 여자를 거부하는 남자. 그리고 아니길 바랬던 현실이 닥쳐왔을때, 가슴 속의 상처를 애써 숨기며, 그것이 오히려 더한 상처를 남길 뿐이란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에서 힘겹게 눈을 돌립니다. 미려한 문체로 눈에 춤추듯 그려지는 남자의 감정. 닿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그리고 그 증거를 남기고 싶어하는 너무도 당연한 본능. 그리고 그것이 또 하나의 불행을 낳을 까봐 두려워해서 스스로 매몰차게 밀어내 버리고, 뒤돌아서 놓고는 완전히 버리지도 못한 채 그 주위를 맴돌고... 그 감정, 그 사랑. 그 마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던 감정, 그렇지만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

남녀간의 관계는 이렇듯 아픔을 동반하는 걸까요. 글 속에서와 같은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소설 속에서 뿐 아니라 대중매체에서도 그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볼 수 있었던 그 상처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상처를 받으며 상처를 주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는 그 둘, 그리고 끝끝내 울음을 터뜨릴 수 없었던 그 감정. 마지막에 흘렸던 눈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머리 속에서 뿐 아니라 가슴에까지 전해져 와 마치 내가 그 상황이 된 듯, 그 인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그렇게 떠나버린 남자를 평생 가슴에 묻을 수 밖에 없는 여자에게 또 다른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였습니다. 애초부터 그러한 일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무작정 해피만을 위해서 말도 안되는 설정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실제적이며, 또한 과연 로맨스소설 답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스소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는 과정을 얼마나 절묘하고 아슬아슬하며 재밌게 그려내느냐, 그 감정들을 얼마나 더 예리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느냐가 관건이겠지요. 흔하고 흔한, 멋진 남자와 멋진 여자가 만나 구태의연한 오해와 싸움끝에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라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 이렇게 여운을 남기는 글도 좋았습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맨 마지막에 있는 작가후기였습니다. 고통을, 미칠 것만 같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꾹꾹 눌러 참고 참은 억누른 신음소리같은 글을 보며, 아프지만 담담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책을 덮었더라면 그냥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잠시의 여운은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그 후기를 보고, 왜인지 모르지만 머리 속이 텅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격렬하게 감정을 토로하는 말에서, 글속에서 비틀린 소리로 개소리, 까고 있네라고 서슴없이 속으로 욕을 퍼붓던 선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억누르고 억눌렀던 비명을 지르던 민준도 말입니다.

재밌다. 혹은 재미 없다. 슬펐다. 좋았다. 등등 표현할 말은 수도 없을 텐데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꾸역꾸역 올라오고,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데도, 왜인지 아직도 뭔가 정리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쌈빡하게 이건 이런 기분이야,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토로해놓고 틀림없이 다시 기억 너머로 이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은 묻어버리겠지만, 한동안은 선우가 말했던 그 '불편함'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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