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1 - 9월 2일
늦은 5시 정도 과 연구실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구실엔 아무도 없었다.
어느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파란색 치마를 입은 처음 보는 누군가 내 옆에서 나에게 말을 건다.
"저기요 박사과정(수료라고 했던가?) 학생인데요. 지금 과사무실에 열쇠가 없어 문을 못 잠갔어요". (열쇠는 과조교들이 개인적으로 소지하고 있고, 연구실에 공용으로 하나가 비치되어 있다.)
"저기(비치된 열쇠를 가리키며) 열쇠가 있어요".
"내가 열쇠가 어디에 있는 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구요".
"제가 조교가 아니라서요".
"저보고 잠그라구요?"(잠시 침묵)
"....."
"석사과정생이죠? 몇 학기 생인가요?"
"2학기생 000입니다".
"예에~ 석.사. 2.학.기. 0.0.0씨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자기신상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은 채 비치된 열쇠를 들고 나간다. 대화 끝.
-어떤 일이고 그것을 둘러싼 행위자 A와 B 등등등...은 자신의 이해관계나 감수성 등에 의해 '상황의 참모습'(그것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논란은 다음 기회에...)이 아닌 저마다의 인식에 의해 상황을 이해한다. 위에 내가 '재현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건 파란치마를 입은 그가 푸하에게 보인 부정적인 반응의 원인이 푸하의 표정이나 어조에서 나타난 부정적 뉘앙스를 보고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뭐 그건 그렇고.
그분이 웃음지으며 나의 이름을 되새기듯 한자 한자 부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그분이 내 이름을 물어보고 기억해 가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너의 버릇없음을 이를 꺼야 두고봐'이런 건데... 난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이건 좀 유치한 거 아닌가. 우는 아이 어르는 것도 아니고 성인에게... 이런 상황에 놓이다니 좀 재미있기도하다.
그분은 과정을 마치고 논문이 통과되면 정치학 박사가 될 것인데... 장래 학생들을 가르칠 때 위계질서에 또렷하지 않으면 좋겠다.
경험 2 - 1학기 초 3월 쯤 이런 일이 있었다.
장소는 4층 남자화장실(교수화장실)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한 분이 옆에 서서 일보면서 나에게 말을 건다.
"이번학기 신입생이세요?" "예" "그럼 여기가 교수화장실인 거 모르겠네요?" "아... 예" "일보는 데 민망하게 했네요." "아... 예."
민망한 건 둘째 치고...
그분이 상식에선 잘 못한 건 아닌 것도 같다.
한 가지 생각해보고 싶은 점이 있다. 그 분은 젊은(젊어 보이는) 사회학과 교수다.
화장실에서 학생에게 '화장실의 규칙'을 환기시키는 그는 규칙에 대해 확고한 것 같다. 그런데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문외한이라 특별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 볼 수는 있겠다. 사회학은 사회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그들 각자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되는 지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학은 사회규칙에 민감하고 그러한 규칙이 왜 생성되고,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 지... 등등을 주된 학문의 대상으로 되어온 것 아닌가?
젊은 사회학과 교수인 그는 [교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사회(학교)의 규칙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적용하여 푸하에게 그 사실을 알린 것은 하등 이상할 바(약간 민망한 상황이긴 하지만...) 없다. 그정도의 일은 일상에서 많이 되풀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경험에서 내가 느낀 아쉬움은 교수라면 그것도 사회학과 교수라면 사회규칙을 무작정 적용하기 이전에 그 규칙에 담긴 의미들을 상대화해서 바라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상식'이 모두 옳은 것이 아니라면 교수화장실이라는 것도 꽤나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제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분이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내 생각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듯 규칙의 집행자로서만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단지 규칙은 이러니 지켜야한다."로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