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 189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브램 스토커 지음, 원은주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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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 딱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캐릭터를 창조해낸다는 것, 모든 작가들의 꿈 아닐까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그 엄청난 영향력으로 이젠 드라큘라라는 단어 자체가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지요~ 실제하는 역사와 전설, 인물을 엮어서 하나의 소설로 탄생시켰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 같아요. 지금 보니 <드라큘라> 자체에는 현재 우리가 아는 흡혈귀 설정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창작에 창작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우리가 아는 흡혈귀가 된 것 같아요.



고딕 소설 vs 대극장 뮤지컬

 얼마 전에 뮤지컬 <드라큘라>가 성황리에 마쳤는데, 뮤지컬과 소설을 비교해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다른 점이 많거든요. 대극장 뮤지컬과 고딕 소설이 가지는 장르적인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소설 속 드라큘라는 절대, 절대, 절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완전한 악역입니다. 최종빌런 그 자체거든요. 여주인공과 아련하고 사연 많은 과거가 있지도 않고, 심지어 미나는 (살아남긴 하지만) 여주인공이라고 하기엔 중반까지 비중이 엄청나게 낮아요. 중반까지는 오히려 루시가 더 주인공 같다니까요. 뮤지컬에서는 그저 '주인공의 친구' 정도로, 세 남자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드라큘라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그 루시가요! 소설에서는 거의 미나만큼이나 추앙받지만 안타깝게도 구해지지 못하는 여성이에요. 미나와 같은 상황 다른 결말을 맞는 운명이랄까요.


 드라큘라가 대놓고 악역인 만큼 외모도 굉장히 추하게? 인상적이게? 나옵니다. 보통 악=추한 외모로 등치시켜서 나타내곤 하니까요. 매부리코에 창백한 얼굴, 악마처럼 붉게 빛나는 두 눈은 드라큘라 백작의 트레이드 마크에요. 다양한 등장인물의 일기나 수필, 메모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드라큘라 백작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붉은 눈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처음부터 인외라는 힌트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예를 들어 조나단이 면도를 하다가 실수로 얼굴을 베는 장면 같은 경우, 뮤지컬에서는 그저 실수일 뿐이지만 소설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이 거울에 비치지 않은 걸 보고 너무 놀라서 손이 헛나간 거예요. 조나단은 드라큘라 성에서부터 이 존재가 사악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성에 갇혀버린 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악을 대비하며 일기를 씁니다. 뮤지컬과 달리 미나는 드라큘라 성에 방문하지 않고요.


 뮤지컬과 비교해서 보면 정말 신기한 게, 어떻게 이런 원작에서 그런 로맨스를 뽑아냈지? 싶어요. 렌필드만 해도 드라큘라랑 전혀 상관이 없고 그냥 혼자만의 믿음으로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면 영생을 할 수 있다! 하고 믿는 정신병자일 뿐이거든요. 나중에야 병원에 드라큘라를 안으로 초대함으로써 드라큘라랑 엮이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그냥 수어드 박사의 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런 인물을 조나단의 선임자로서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방문한 뒤에 정신병원에 갇힌 인물로 살짝 틀어서 훨씬 더 개연성 있게 만들다니, 역시 2차 창작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1897년의 과학, 2020년의 과학

 흡혈귀 전설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작가 본인도 '피'를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듯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수혈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은 현대에서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어요. 예를 들어 용감한 남자의 피를 받았으니 저 여자는 이제 생명력을 가지게 됐어! 하는 식의 묘사가 꽤 나오는데, 남자의 피든 여자의 피든 상관없이 피는 그냥 피일 뿐이잖아요. 당시로서는 남자의 피가 여자의 피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요. 피를 한 번 수혈해주고 나면 몇날 몇일을 꼬박 수척하게 지낸다는 묘사도 그래요. 저도 헌혈 많이 해봤지만 하루 정도 물 많이 먹고 푹 쉬면 괜찮아지잖아요? 체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엄청난 양을 뽑아냈다면 좀 힘들긴 하겠지만요.


 제일 뜨악했던 건 혈액형 검사를 하지 않고 그냥 일단 남자의 피니까 당연히 OK, 하는 식으로 막무가내 헌혈을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마 작품을 쓸 때는 아직 혈액형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었던 시기인가봐요. 루시의 혈액형이 뭔지 모르는 상태로, 아서-수어드-모리스-반 헬싱의 혈액형이 뭔지 모르는 상태로 그냥 수혈을 진행합니다. 혈액형이 맞지 않아서 충돌 일으켰으면 드라큘라가 아니라 수혈 때문에 루시가 죽었을 텐데, 다행히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걸로 봐서 남자들이 전부 O형이었나봐요;; 현대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과거의 작품 속 흠결을 놀리는 건 좀 공평하지 못하긴 하지만, 읽을 때 물음표가 뜨는 건 사실이니까요ㅋㅋㅋ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도드라집니다. 미나가 똑똑해서 그에 대한 칭찬을 하고 싶으면 그냥 똑똑한 여성이다 하고 1절만 하면 되는데 남성의 뇌를 가졌다는 둥, 훌륭한 여자는 자신의 삶을 전부 말한다는 둥 2절, 3절, 4절.. 끝도 없이 해요. 공포 장르가 대개 그렇듯이, 결국 살아남는 건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철저하게 편입된 여성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미나 역시 일에 엮인 당사자인데 살살 추켜세우는 척 모든 사건에서 쏙 빼버리는 걸 보면 현대 여성 독자로서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결국 미나를 지키지도 못하고 미나한테 도움받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죠;;


  그리고 마담 미나,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될 때까지는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이 일에서 바지세요. 마담은 우리에게 너무 ㅁ소중한 분이라 그런 위험을 감당하게 둘 수 없어요. 오늘 밤 회의가 끝나면, 마담은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마세요. 때가 오면 마담께 다 말씀드릴 겁니다. 우리는 남자들이고 견딜 수가 있죠. 하지만 마담은 우리의 별이자 우리의 희망이니, 마담께서 위험하지 않아야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겁니다 - p.477


 게다가 드라큘라가 마지막으로 으름장을 놓으면서 "너희가 사랑하는 너희 여자들은 이미 내 것이다" 하고 협박하는 장면은 여자를 소유물로 보는 시각이 대놓고 보여서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남자가 보통 '(적들이) 우리 여자를 강간할거야' 하는 공포를 가지곤 하잖아요. 공포를 얘기할 거면 자기가 강간당할 공포를 상정하든지;; 이게 뭐람;; 어쨌든 백 년도 더 넘은 옛날 빅토리아 시대 작품이라는 건 감안해야겠죠.


 저는 흡혈귀가 굉장히 카톨릭적인 괴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모든 나라 모든 문화권에 흡혈귀가 나온다는 것은 그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는 식의 논리를 펼쳐서 좀 신기했습니다. 중국에도 흡혈귀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하지만 흡혈귀가 카톨릭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도대체 왜 십자가나 성체에 그렇게까지 반응을 하겠어요? 중국 부적 쓴다고 드라큘라가 물러가지도 않을 텐데 말이죠. 결국 '카톨릭'과 '과학'으로 대변되는 1897년의 신봉 가치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괴물을 물리친다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종교적이에요.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이 조금은 엿보이고요.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는 일단 표지가 예뻐서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 뮤지컬 원작 소설을 꾸준히 내줘서 정말 좋아요♡ 원전과, 그에 파생되어 나온 다른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정말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가 늘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많은 작품 내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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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거울나라의 앨리스 (양장) - 187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손인혜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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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대중문화에 정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잖아요!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도 영화나 드라마, 만화, 2차 창작, 심지어는 CF에서까지도 온갖 분야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아마 보셨을 거예요. 시계를 든 토끼나 티타임을 가지는 모자장수, 트럼프 카드의 하트 여왕 같은 강렬하고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온갖 대중문화에서 '너네 이거 다 알지?' 하는 식으로 오마주되곤 하니까요.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그 후속작입니다. 앨리스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작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연관성은 거의 없어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 같은 경우, 앨리스가 말 그대로 거울로 빨려들어가면서 시작되는 모험입니다.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뒤 반년쯤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거울 속 세계는 체스와 비슷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앨리스는 처음에는 병졸로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 칸에 다다르게 되면 여왕으로 변신합니다. 세계관 전체가 체스에 기반을 둔 만큼, 체스를 알고 있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가장 계급이 낮은 폰이 끝에 다다르면 퀸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체스 룰이니까요. 앨리스는 체스 판처럼 한 칸 한 칸 전진하면서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온갖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 붉은 기사와 하얀 기사, 트위들덤과 트위들디, 험프티 덤프티, 사자와 유니콘 등인데 전자는 체스에서 후자는 유명한 동요에서 따온 캐릭터에요. 참고로 초판본 표지의 앞면이 붉은 여왕, 뒷면이 하얀 여왕에요! 


 언어유희가 워낙 많아서, 원어민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꽤 많은 작품입니다.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워낙에 언어의 리듬이나 라임, 말장난을 중요시하는데 번역이 되다보면 아무래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딱 되지는 않아요. '감사합니다'를 '감사합디다'로 바꿔 말한다면 아주 작은 차이지만 뉘앙스가 확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이걸 번역으로 전달하려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 캐럴 작품에는 주석이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만약 원어를 모른다면 이게 왜 농담인지, 이게 왜 재치있는지, 이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지거든요. 책 속에 등장하는 '재버워키'라는 시는 영미권에서는 거의 전설로 인정받는 최고의 넌센스 시라고 하는데, 번역본으로 봤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애를 먹었어요. 이런 식이거든요↓




 물론 나중에 가면 앨리스가 거울에 비쳐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긴 하는데, 그것도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ㅋㅋㅋ 제가 영미권 독자였다면 이 시에 담긴 말장난을 훨씬 더 빨리 캐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ㅠ 주인공인 앨리스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다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시 자체가 의미없는 하나의 농담 같기도 해요!


 상징적인 내용이 많아서 그냥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읽어도 재밌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붉은 여왕은 뭐든지 서둘러야 한다면서 빨리빨리 하는 모습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그런 모습이거든요. 이 작품 덕에 [붉은 여왕 효과]라는 용어도 생겼다고 해요. 죽을 둥 살 둥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려야 겨우 현상유지가 가능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건데.. 정말 섬뜩하고 슬픈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죠ㅠ <앨리스> 작품 안에서는 뭘 위해 그렇게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죽어라 달리는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지만요.


 "말도 안 돼. 계속 이 나무 아래에 있었던 거야! 모든 게 아까와 똑같아요!"

 "당연하지. 그럼 어떨 거라고 생각했느냐?"
 여왕이 말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오랫동안 빨리 달리고 나면 보통 다른 곳에 도착해요."

 앨리스는 여전히 약간 헐떡이면서 말했다.

 "정말 느린 나라구나! 여기서는 같은 장소에 있으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뛰어야만 하지.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 p.44


 환상문학이 대개 그렇듯 환상 속에 깃든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엉뚱하게 나타나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이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이런 글재주를 가지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현실은 수학자이자 교수였다니, 정말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은 것 같아요. 상상력이 메말라버린 독자에겐 그저 놀랍고 경이로울 뿐입니다.. 우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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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벤허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그리스도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 월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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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허> 저 이 작품을 뮤지컬로 처음 접했는데, 알고 보니까 5번이나 영화화되었더라고요. 1959년의 영화 전차씬이 워낙 유명해서 <벤허> 하면 대부분 그 영화를 떠올리신다고 해요. 나중에 한꺼번에 영화를 몰아봤는데, 확실히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그저 상상해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훨씬 더 박진감 넘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설과 중점을 둔 부분도 달라서 훨씬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복수'의 카타르시스 덕분에 슬며시 가려져 있던 카톨릭적 메시지가 훨씬 도드라지거든요. 

 

 저는 불교-카톨릭-무교 라인을 탄 케이스라서, 신앙심은 쥐똥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대의 시대상 묘사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어서 종교와 상관없이 꽤 재밌게 읽었어요. 다만 워낙에 카톨릭적 색채가 진하기 때문에 성당/교회에 반감을 가지신 분들이 보시면 불쾌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놓고 '야 하느님은 있고 예수는 그리스도고 믿는 우리는 구원받을 거고 그러니까 안 믿는 너네는 멍청해!' 하고 외치는 소설이거든요ㅋㅋㅋ 뭐, 처음부터 작가가 자기 종교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고자  만들었다고 하니까요.


 제가 소설을 읽다가 가장 놀란 부분은 메살라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영화나 뮤지컬에서 보면, 메살라는 그래도 벤허와 우정을 나누고 함께하는 시기가 꽤 있잖아요. 벤허를 배신하는 것도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인다고 해도) 차별을 받았다는 둥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요. 그런데 소설에서의 메살라는 진짜 완전 양심도 없고 우정도 없고 그냥 나쁜 놈이에요;;; 로마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기나 하면서 유대인 완전 깔아뭉개는 언변 심해서 유다가 의절할 정도예요. 그리고.. 벤허 가문이 몰락하는 게 로마 총독 머리 위로 기왓장 떨어뜨려서 그런 거잖아요? 근데 처음에 사람들이 누가 떨어뜨렸는지 모른단 말이에요? 그걸 메셀라가 벤허가 그랬다면서 손가락으로 콕 집어 가리킵니다;;; 이후에 벤허 가문 재산 뺏어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양심의 가책 따위 하나도 없어요. 벤허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 아예 글러먹었다는 게 곳곳에 드러납니다. 특히 제가 정 떨어진 건 자기 앞에 사람들이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그 사람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이 그냥 말로 밟아서 지나가려고 한 장면이었어요. 벤허가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여인과 노인은 죽었을텐데, 벤허 덕분에 상황이 수습되자 뻔뻔하게도 사람을 못 봤다면서 눙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어찌나 건들거리는지! 으으 너무 싫어요!


 "멈춰! 앞을 보라고! 뒤로, 뒤로!"

 로마 귀족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댔다. 벤허는 낙타 일행을 구할 길은 한 가지뿐임을 알았다. 그가 전차 앞으로 왼쪽 멍에마와 견인마를 붙잡았다. 

 "개 같은 로마 놈! 사람 목숨이 그렇게 우스워?" 

 (...)

 로마인 메셀라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였다. 몸에서 고삐줄을 풀어 한쪽으로 던지고, 전차에서 내리더니 낙타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벤허를 쳐다본 후, 노인과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를 구합니다. 두 분 모두에게. 난 메살라라고 합니다. 대지의 어머니에게 맹세컨대 두 분이나 낙타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솜씨를 과신했나 봅니다. 여기 이 선량한 구경꾼들을 좀 놀려줄까 했는데 도리어 놀림을 당했네요. 어쨌든 저들에게도 다행이지요!" - p.310

 그런데 주인공인 벤허를 좋아하기에도.. 개인적으로 좀 불편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게 1880년 작이라 그런지 곳곳에 좀 고루한 표현들이나 여혐적인 내용이 있거든요. 본인이 하면 OK인데 상대가 하면 욕하는 그런 부분도 있구요. 예를 들면 벤허 본인은 아름답고 화려한 이집트 아가씨 이라스에게 푹 빠져서 조용하고 다정한 유대인 소녀 에스더를 완전 등한시하는데, 읽다 보면 양다리 느낌이 팍팍 온단 말이에요? 물론 두 여자 다에게 절절한 사랑 고백을 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썸 비스무리한 걸 양쪽으로 자기 혼자 막 타고 난리부르스인데, 후반부에 이라스가 사실은 메셀라를 사랑하고 자기는 그냥 야망을 위한 떡밥 정도 취급하는 걸 알자마자 '아..!! 사실 나는 이라스를 사랑한 게 아니야 나는 에스더를 사랑해..!!' 이렇게 태세전환하는데, 완전 꼴사나워요. 방금 전까지 에스더에 대해서 완전히 싹 잊고 있었으면서.. 이라스가 그렇게 냉담하게 안 쳐냈으면 에스더가 상처받든 말든 신경도 안 썼을 거면서.. 그리고 벤허 본인이 그러는 건 괜찮고 이라스가 야망에 불타오르고, 두 상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건 천하의 몹쓸 년으로 만들어버리는 묘사도 엄청 거슬렸어요. 작가 남자 아니랄까봐ㅋㅋㅋ 시대상 여자는 남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설정이라 모든 여자의 소망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남자를 향해 있는데, 아마 지금 시대에 썼으면 이라스는 훨씬 더 자기 목소리와 입장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유대인만이 선하고 옳은 세계관에 맞춰지느라 좀 희생된 감이 있습니다.


 영화로 유명한 전차씬이나 후반부의 예수와의 만남보다도 오히려 초중반부에서 보여지는 유다 벤허의 다사다난한 인생 고난과 복수에의 여정이 더 재밌습니다. 아마 제가 그다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어서 그렇겠지요. 그리고 사실 저는 벤허만큼 고생 끝에 모든 부와, 명예와, 사랑과, 가족과, 건강을 부여받은 사람이 신에게 자신을 헌사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가 하거든요. 만약 예수가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나병을 고쳐주지 않았다면? 벤허가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죽었다면? 그랬어도 믿음을 잃지 않았을까요? 종교인이라면 신이 그러지 않도록 예비하신 거라고 하겠지만, 저는 그들만큼 신앙이 깊지 않아서 그런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ㅎㅎ


 전체적으로 유대인 중심주의가 좀 있긴 한데, 그래도 여러 가지 문화와 민족을 다채롭게 등장시켜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더스토리 초판본 디자인이 끝내주게 예뻐요! 실제로 보면 벽돌책 색감도 고급스러워 소장용으로 딱입니다. 카톨릭에서 가끔 교육 서적으로 쓰일 정도로 종교적인 색채가 짙으니, 그 부분만 주의하시면 괜찮은 시대물로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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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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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제가 찾던 영화 서적이었어요! 그러니까 지나치게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 에세이류의 개인적인 잡담 위주가 아니면서, 적당히 영화에 담긴 은유나 의미를 얘기하면서도 적당히 정서를 공유하는 책이랄까요? 저는 유튜브를 보지 않아서 '거의없다'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책과 비슷한 내용의 컨텐츠라면 구독하고 싶네요. 저는 망한 영화보다는 잘 만든 영화가 더 좋긴 한데, '거의없다' 님의 리뷰를 보다보면 망한 영화도 궁금해서 찾아볼지도 모르겠어요ㅋㅋㅋ


 저는 영화 속에 담긴 은유나 시대의 정서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볼 때 단순히 얼마만큼 무섭냐, 어떤 빌런이 나오냐 이런 게 아니라 공포영화 속 피해자는 대개 그 시대에서 가장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계층이며, 공포영화에 나오는 설정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영화 줄거리나 화면이야 제가 영화를 직접 찾아보면 그만이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가 어떻게 컨텐츠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지 한 데 묶어서 관련짓는 건 영화 바깥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바로 이런 지점이 재밌어서 영화 리뷰를 찾아보는 거구요!


 책 속에는 다양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영화를 즐겨 본다 하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 아닐까요ㅋㅋ) 봤을 것 같은 작품들이라 막히지 않고 쭉쭉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비포 선셋> 시리즈나 <다이 하드>, <스크림>, <밀리언 달러 베이비>처럼 유명한 작품들은 웬만하면 다 보시지 않으셨을까요? <로스트 인 더스트>나 <시카리오> 같은 작품은 아마 못 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읽는 데 문제 없도록 관계된 설정이나 대사 같은 것들을 꼼꼼히 알려줘요. 물론 굵직한 스포는 빼구요~ 이 영화가 왜 명작인지 혹은 어떤 지점에서 대중들에게 어필했는지를 분석하는데, 그게 정말 재미져요~ 앞서 말했듯이, 딱 제가 원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해줘서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다이 하드> 시리즈 같은 경우, 보통은 액션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평가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거의없다' 님 같은 경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브루스 윌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웅물로 미국+보통+백인+노동자 계층의 남성의 욕망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평합니다. 미국인이 그렇게까지 이 작품을 사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면서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요소들이 빼곡하게 영화에 자잘하게 연출이나 소품, 대사 같은 걸로 숨겨져 있고요. 그걸 찾아서 알려주는 리뷰어에요. 딱 봐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행복하자는 저자의 가치관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무척 공감됐습니다. 아마 우리 세대 전체의 정서가 아닐까 싶어요.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크고, 그래서 오히려 현재에 열심히 즐기고 소소한 행복이라도 누려야지 삶이 살아볼만하고 느껴지는.. 그런 거? 우리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모든 즐거움을 다 포기하고 산다고 해도, 평생 집 한 채 마련하기도 불가능한 게 현실이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현재에 즐길 수 있는 건 즐기면서 살겠어! 하는 게 지금 젊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 같아요. 물론 저자는 여기에 더해 '즐거운 일을 하다보면 그 과정 자체가 삶이 된다'는 식으로 양념을 치긴 하지만요ㅋㅋ


 자꾸 독자들이 할법한 생각을 지레짐작해서 거기다가 초를 치거나 미리 능청을 떠는 화법을 쓰는 건 좀 불호포인트였어요. 그거 좀 재치있어 보이려고 하는 옛날식 유우머 같은 느낌이 있단 말이에요ㅠ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 혼자 "책을 갖다 버리고 싶다고? 그래도 소용없다 이미 읽은 책을 어떻게 환불해주나?" 하는 식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거.. 유튜브는 괜찮겠지만 책으로 보니까 영 별로였습니다. 할 말 없어서 대충 떼운 건가 하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 사소한 부분만 뺴면, 영화 얘기는 정말 재밌었어요! 앞으로 책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지만, 후속작 나오면 그때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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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이방인 - 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최헵시바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첫 문장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명작! 단 한 문장으로 주인공 뫼르소의 성격과 태도를 보여주는 걸 보면, 확실히 작가가 보통 내공이 아니에요~ 카뮈는 이 작품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라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렵지 않을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의외로 책이 꽤나 얇은데다 내용도 딱히 어렵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금방 읽을 수 있어요:)



뫼르소는 왜 그 아랍인을 죽였나?

 <이방인>은 첫 문장만큼이나 주인공 뫼르소의 이해할 수 없는 범죄 동기로도 유명합니다. 주인공인 뫼르소는 사람을 죽이는데, 그 이유가 '햇빛이 눈을 찔러서'거든요.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잖아요? 혹시 숨겨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건 없습니다. 정말로 뫼르소는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인 거예요. 정말 말도 안 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설 속에서 뫼르소의 담담한 심리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진술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죽일 만했다 그런 말이 아니라 뫼르소라는 사람은 그 순간 총을 쏠 수도 있는 사람이고, 진짜로 쐈을 뿐이라는 게 수긍이 된달까요. 뫼르소가 감정이 없는 잔혹무도한 싸이코패스이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검사 측에서 그렇게 주장하긴 하지만요. 다만 말이 없고 조금은 무심한, 현대인 같은 느낌은 있어요.


 뫼르소가 그렇다고 평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굉장히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어떤 경우에도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침묵할지언정 거짓으로 순간을 회피하지는 않죠. 심지어 자기 목숨이 걸려있어도 그래요!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면 손쉽게 사형을 벗어날 수 있는데도 굳이 진실을 말해 모두를 불편하게 합니다. 변호사도, 판사도, 기자도, 여자친구도.. 모두 그에게 어떤 '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지 않아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진실을 말하겠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는 고결한 태도죠. 이게 굉장한 지점입니다. 이런 보기 드문 덕목을 갖춘 뫼르소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라는 것이죠.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요? 참고로 카뮈는 뫼르소를 두고 '현대의 유일한 그리스도'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거기에 동의하냐 동의하지 않냐는 물론 독자 개개인의 몫이에요. 


 뫼르소가 살인자라는 건 불변의 사실입니다. 뫼르소는 아무 죄도 없는 한 아랍인을 죽이고, 그에 대해 아무런 비애나 죄책감 따위를 가지지 않고 있거든요. 그가 사형을 받는 건 마땅한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문제는 뫼르소의 재판 과정입니다. 거기서 보여지는 온갖 부조리가 마치 이 사형이 부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극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정말로 죽은 피해자를 위해서 벌을 주는 거라면, 죽은 피해자에게 아무 잘못이 없었고 그의 죽음은 부당하다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법정에서 뫼르소를 비난하는 근거는 '어머니가 죽었는데 울지 않았다', '어머니 관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어머니 장례식 다음날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하고 야한 영화를 보러 갔다' 등등 살인사건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일상의 모습이에요. 보다못한 변호사가 피고는 살인죄로 기소된 거라고 항변할 정도로 엉뚱한 것들만 물고 늘어집니다. 말도 안 되는 재판이에요. 물론 그 때문에 뫼르소의 거짓말하지 않는 태도가 더 도드라집니다. 눈물 몇 방울 흘리고, 그 아랍인이 자기를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기만 했어도 무죄 땅땅 확정이거든요. 프랑스인이 아랍인을 죽이는 건 별 문제가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차별에 대한 고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차별인가?

 소설 속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다음 모두가 죽은 아랍인은 아예 지워버리고 뫼르소에만 집중하는데, 이것이 인종주의적인 or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아예 그런 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작품 속에서 고발하고 있는 것인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보통 이런 주제를 다루면 모 아니면 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이방인>은 관련 자료나 기사를 찾아봐도, 어느 쪽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더라고요. 카뮈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이건 차별이다 혹은 아니다 단언하지는 못 하는 것 같아요. (이런 논쟁조차 카뮈가 그토록 부르짖는 부조리처럼 생각되는 면이 있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작가 본인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해도 전개나 묘사에 인종차별적인 부분이 있고, 만약 이게 현실 고발이었다면 소수자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의 근거는, 뫼르소가 아무 죄도 없는 아랍인을 죽였다는 걸 작가가 아주 분명하게 서술한다는 점을 듭니다.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영역을 침범한 것도, 방아쇠를 당긴 것도, 전부 아랍인이 아니거든요. 카뮈는 그 아랍인은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뫼르소가 그를 죽였다는 걸 대놓고 보여줍니다. 워딩 하나하나가 뫼르소의 잘못을 지적해요. 예를 들어 그 아랍인이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뒤돌아서면 끝날 일'이라고 본인이 생각하기도 하죠. 만약 카뮈가 정말 인종차별자였다면 아랍인에 대한 정당방위처럼, 혹은 그 비슷하게 얼버무렸겠지 않냐 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랍인이었다면, 극중에서 아무 잘못 없이 살해당한 후 이름도 애도도 없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피해자를 굳이 아랍인으로 설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불쾌했을 것 같아요. 당시 프랑스인-아랍인 두 집단이 인종적으로 동등하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죠. 만약 일본인이 <이방인> 같은 소설을 쓰면서 식민지 시대 한국인을 이런 식으로 그렸다고 생각해보세요. 일본인이 한국인을 살해하는데, 정작 그 한국인은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흔적도 아무것도 없고, 독자들은 정작 살인범의 실존주의적 고뇌에 공감하고 이입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이 작품 자체가 인종차별을 강화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기분이 상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찾아봤는데 그래서 실제로 <이방인> 속 아랍인을 다루는 태도를 두고 비판적인 시각도 많더라고요. 한국에도 출간된 <뫼르소, 살인사건> 같은 작품은 아예 <이방인>에서 살해된 아랍인의 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 작품에서는 지워진 피해자와 그 주변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고 해요. <이방인>을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함께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만큼 작품 바깥의 이야깃거리도 많은 편이라, 다 읽고 찾아보시면 재미가 2배! <이방인> 관련해서 '아랍인' 관련 오역 논란이 꽤나 시끄러웠는데, 오역은 아니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 논란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프랑스어 원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왜 아랍인을 중간에 무어인이라고 표현하는지 설명해놓은 포스팅을 봤는데, <이방인>에서 '그 아랍인' 하면 딱 한 명, 피해자를 지칭하는 게 될 수 있도록 작가가 고심한 흔적이래요~ 그 외에도 감옥 묘사에서 안은 남자들의 공간, 바깥 면회장은 여자들의 공간처럼 느껴지게 단어를 섬세하게 골랐다고 하네요. 프랑스어는 단어 자체에 여성형 남성형이 다 따로 있으니까, 원문을 읽으면 그런 정서를 바로 캐치할 수 있나봐요. 저는 프랑스어를 못 하는지라ㅠ 원문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런 작품을 번역하려면 번역가 역시 엄청나게 애써야 할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편안하게 한국어로 작품을 즐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지! 번역가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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