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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평점 :
딱 제가 찾던 영화 서적이었어요! 그러니까 지나치게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 에세이류의 개인적인 잡담 위주가 아니면서, 적당히 영화에 담긴 은유나 의미를 얘기하면서도 적당히 정서를 공유하는 책이랄까요? 저는 유튜브를 보지 않아서 '거의없다'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책과 비슷한 내용의 컨텐츠라면 구독하고 싶네요. 저는 망한 영화보다는 잘 만든 영화가 더 좋긴 한데, '거의없다' 님의 리뷰를 보다보면 망한 영화도 궁금해서 찾아볼지도 모르겠어요ㅋㅋㅋ
저는 영화 속에 담긴 은유나 시대의 정서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볼 때 단순히 얼마만큼 무섭냐, 어떤 빌런이 나오냐 이런 게 아니라 공포영화 속 피해자는 대개 그 시대에서 가장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계층이며, 공포영화에 나오는 설정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영화 줄거리나 화면이야 제가 영화를 직접 찾아보면 그만이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가 어떻게 컨텐츠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지 한 데 묶어서 관련짓는 건 영화 바깥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바로 이런 지점이 재밌어서 영화 리뷰를 찾아보는 거구요!
책 속에는 다양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영화를 즐겨 본다 하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 아닐까요ㅋㅋ) 봤을 것 같은 작품들이라 막히지 않고 쭉쭉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비포 선셋> 시리즈나 <다이 하드>, <스크림>, <밀리언 달러 베이비>처럼 유명한 작품들은 웬만하면 다 보시지 않으셨을까요? <로스트 인 더스트>나 <시카리오> 같은 작품은 아마 못 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읽는 데 문제 없도록 관계된 설정이나 대사 같은 것들을 꼼꼼히 알려줘요. 물론 굵직한 스포는 빼구요~ 이 영화가 왜 명작인지 혹은 어떤 지점에서 대중들에게 어필했는지를 분석하는데, 그게 정말 재미져요~ 앞서 말했듯이, 딱 제가 원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해줘서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다이 하드> 시리즈 같은 경우, 보통은 액션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평가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거의없다' 님 같은 경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브루스 윌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웅물로 미국+보통+백인+노동자 계층의 남성의 욕망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평합니다. 미국인이 그렇게까지 이 작품을 사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면서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요소들이 빼곡하게 영화에 자잘하게 연출이나 소품, 대사 같은 걸로 숨겨져 있고요. 그걸 찾아서 알려주는 리뷰어에요. 딱 봐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행복하자는 저자의 가치관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무척 공감됐습니다. 아마 우리 세대 전체의 정서가 아닐까 싶어요.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크고, 그래서 오히려 현재에 열심히 즐기고 소소한 행복이라도 누려야지 삶이 살아볼만하고 느껴지는.. 그런 거? 우리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모든 즐거움을 다 포기하고 산다고 해도, 평생 집 한 채 마련하기도 불가능한 게 현실이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현재에 즐길 수 있는 건 즐기면서 살겠어! 하는 게 지금 젊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 같아요. 물론 저자는 여기에 더해 '즐거운 일을 하다보면 그 과정 자체가 삶이 된다'는 식으로 양념을 치긴 하지만요ㅋㅋ
자꾸 독자들이 할법한 생각을 지레짐작해서 거기다가 초를 치거나 미리 능청을 떠는 화법을 쓰는 건 좀 불호포인트였어요. 그거 좀 재치있어 보이려고 하는 옛날식 유우머 같은 느낌이 있단 말이에요ㅠ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 혼자 "책을 갖다 버리고 싶다고? 그래도 소용없다 이미 읽은 책을 어떻게 환불해주나?" 하는 식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거.. 유튜브는 괜찮겠지만 책으로 보니까 영 별로였습니다. 할 말 없어서 대충 떼운 건가 하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 사소한 부분만 뺴면, 영화 얘기는 정말 재밌었어요! 앞으로 책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지만, 후속작 나오면 그때도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