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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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경쾌하고, 속도감 있고, 매력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만의 (개똥)철학을 가진 캐릭터들이 잔뜩 나오거든요. 게다가 우연처럼 보였던 사소한 사건들이 결국 얼키고 설켜 마지막에 하나의 퍼즐로 딱 맞춰지는 것도 너무 좋잖아요! 현실에서는 보통 그렇게 모든 떡밥들이 회수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지만 소설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은 언제나 현실보다 훨씬 정교하고 개연성 있기 마련이니까, 제대로 된 작가라면 독자들에게 이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 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이사카 고타로는 정말 성의 있는 작가입니다.


<페퍼스 고스트>는 전반적으로 아주 잠깐의 미래, 예를 들면 몇십 초나 몇 분 정도의 미래밖에 보지 못하는 중학교 국어선생님과 고양이를 고문하고 죽이는 사람에게 복수해주는 고지모 사냥꾼의 이야기가 교차됩니다. 국어선생님이라는 한없이 평범한 배경과 소심하고 소시민적인 성격을 가진 단 선생님은 이 '미래를 아주 조금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에 터무니없이 큰 스케일의 일에 휘말리고 맙니다. 갑자기 납치를 당하지 않나, 소설 속 인물이 현실 세계에 툭 튀어나오질 않나, 폭탄테러를 사전에 알게 되질 않나, 염산을 뒤집어쓰질 않나... 그렇다고 선생님이 아주 멋지게 일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이렇게 답답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것 같은 생생함이 있긴 해요. 말도 안 되는 요소는 다른 인물이 죄다 가져갔으니 주인공 정도는 이래도 괜찮지 싶습니다.


<페퍼스 고스트>의 소개문구에 이런 게 있었어요, "흥미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걱정스러운 일과 두려워하는 일을 꾹꾹 눌러 담자, 제 소설의 특징을 망라한 듯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행복해졌어요. 저는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달변가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도 또 하나 등장하겠구나 싶어서요. 아니나다를까 고지모 사냥꾼 아메쇼-러시안블루 콤비가 힘차게 등장했습니다! 두둥! 직업도 무려 '청부업자'라고요. 살인..까지는 안 하는 것 같지만! 너무나 해맑은 긍정킹 아메쇼와 너무나 걱정스러운 염세주의자 러시안블루의 만담은 읽어도 읽어도 너무 재밌었어요ㅎㅎ


요즘 작가는 계속 '한 번 죄를 지었으면 평생 용서받을 수 없을까' 하는 주제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김없이 <페퍼스 고스트>에도 관련한 고민이 등장하고요. 하지만 저는 금방 화를 내고 마는 성난 현대인이라서일까요? 작가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아주 엄격한 눈으로 보게 되네요. 예를 들어 노구치 씨 같은 경우, 아무리 슬프고 힘들고 정신이 망가지는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고양이를 고문하고 살해하는 걸 부추긴 죄에 대한 변명이 될까요? 저도 반려인으로서 제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이유가 돼?'라는 생각밖에 안 들 것 같아요. 작가님은 뭔가 좀 더 옹호하는 쪽에 서 계시는 것 같긴 하지만... 전 아직 용서할 마음까지는 들지 않네요.


작가님 책이 언제나 그렇듯 이 소설도 거대한 이사카 고타로 세계관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제가 아메쇼-러시안블루 콤비를 또 보고 싶으니까요! 다음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디 그날까지, 건강하길. 작가님도. 두 사람도.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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