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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찬란 실패담 - 만사에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
정지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평점 :
정지음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한 SNS였습니다. 그때 작가님이 보여주신 언행이 너무나 비범했던 나머지, 그게 이제는 밈으로 변해 인터넷 세상을 떠돌게 할 정도였죠. 작가님께서 본인 고양이 역시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을 멍때리면서 지켜보곤 한다는 사진과 글을 올리셨는데, 거기에 답글이 달립니다. 드럼식 세탁기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고요. 그러자 작가님께서 거기에 다시 답글을 남기셨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의 표지에도 적혀 있는 그 문구입니다. "그래 보이나요?심각한 건 아닙니다."
<오색찬란 실패담>은 작가님의 이런 태도를 총망라해서 한 권으로 엮어낸 것 같은 책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저래도 괜찮을까? 싶은 얼렁뚱땅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상황에서 온갖 고민과 생각 끝에 해탈과 달관에 이르러 허허 웃으며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외치고 있다고나 할까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어쩜 이렇게 시트콤 같은 일상을 살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물론 살고 계신 작가님 본인은 시트콤이 아니라 인생극장 다큐멘터리라고 느끼실 테지만요.
작가님의 호방함(?)에 감탄하며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으면서 봤던 꼭지는 '개미는 여행하지 않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여행 자금을 모으려고 주식을 했다가 몽땅 다 잃으시는 바람에 여행을 못 가게 되셨다는 얘기였어요. 깜짝 놀란 게, 사실 (주식을 전혀 모르는) 제 생각에도 코로나가 끝나면 노래방 사정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가님이 노래방 주식 사자마자 떡락하셨다고;; 아니 왜죠? 역시 주식은 무서운 것이에요.. 아무튼 작가님의 주식은 가성비 좋은 호캉스 비용에서 제주도 여행 경비로 발전해, 이윽고 일본 여행 경비 전체를 날려먹고 맙니다. 거기에 대한 작가님의 대응은? '까짓 일본, 다녀오진 않았지만 다녀온 걸로 치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이 반응이 너무 익숙해 웃펐습니다. 만원 이만원에 벌벌 떨던 제가 한꺼번에 오백만원 정도 잃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잊어버리자 싶은 마음이 되던데, 그거랑 완전 똑같더라고요ㅋㅋㅋ
마음을 묵직하게 눌렀던 얘기로는, 영화나 연극 관람에서 조용히 쥐죽은 듯 앉아있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도 공연 관람을 자주 다니는 입장으로서 극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고요한지 잘 알거든요. ADHD 환자나 어린이, 노약자 등에게는 그런 식으로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그래서 그들이 공연 문화로부터 배제된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공연은 워낙 비싸고 일회적인 장르이다보니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좀 더 자유로우면서도 각자 관람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게 됐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싱어롱 회차 같은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거의 다 사라지긴 했거든요. 상영회 같은 거면 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네요.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대책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삶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쩐지 공감이 가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살아온 인생 여정도, 삶의 방식도, 성격도, 취향도 전부 다 다르지만 '나만 아는 정말 한심하고 못난 나'를 껴안고 산다는 점에서는 작가님과 제가 똑같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게다가 작가님은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그걸 해내신다고요! 어둠의 시간 뒤에 찾아온 평화의 시간 같은 느낌이라 읽으면서 괜히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저도 얼른 거기까지 도달하고 싶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