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연하기 싫어서 초연하게 - 반투명한 인간의 힘 빼기 에세이,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김영 지음 / 카멜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는 '우울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현실을 사느라 바쁘기도 하고, 딱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 같은 게 별로 없었어요. 그저 사회가, 학교가, 가족이 시키는대로 하라는 거 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는 그런 시절이었죠. 그러다 이제 슬슬 여러 가지 의미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고, 답 없는 질문에 몰두하다보니 저도 어느 사이에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더라고요. 거길 벗어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연연하기 싫어서 초연하게>를 집어들게 된 계기는 하나의 문장 때문이었어요. '우울을 쓰다보니 우울이 나았다'. 너무나 공감이 되더라고요. 우울한 자신이 싫어서 피하기만 하면 남들 앞에서는 밝고 쾌활하게 지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반작용으로 혼자 있을 때는 더욱 더 힘들어집니다. 내가 왜 우울한지, 이 우울과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내 자신이 우울하다는 자체에 연연하지 말 것. 그게 시작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정신승리'밖에 안 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가장 높은 곳을 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외모 출중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거야 당연히 부러운 일이죠.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조건을 통해 얻고 싶은 건 '행복'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조건이 당장 행복을 보장해주느냐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그런 사람은 애초에 이 책을 집어들 리가 없을 것 같아요ㅎㅎ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미래의 어떤 가치로 환산되는 삶을 사는 건 좀 숨막힐 것 같지 않으세요? 오해하지 마세요. 실제로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단지 저는 그런 삶에서 '행복'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모두의 중심이 되는 삶은 멋지고 저 역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지만, 평생 그렇게 일거수 일투족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망설여지는 겁니다. 지레 겁부터 먹고 일단 걱정하는 쫄보의 마인드라서라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행복이라는 건 결국 인생과의 타협점을 찾는 일이잖아요. 무한정 나의 모든 욕망이 이루어지는 일은 이 세상 그 누구한테도 없다고요.


 내가 어떨 때 편안함을 느끼고, 어떨 때 만족스러운지 아는 것. 나를 아는 것. 그게 외부의 요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제 1 조건인 것 같아요. 작가의 경우에는 조용하고, 사색적이고,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인데 괜히 이런저런 술자리에 참여했다가 후회했던 경험이 있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입는 것이나 먹는 것보다는 경험하는 것에서 만족을 크게 얻는 사람인데 주변에서 '이 정도는 먹어야지, 입어야지' 같은 말에 휩쓸려 소비했던 것들이 엄청 후회스러워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하는 과정은 정말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무조건 신의 뜻, 신의 탓을 했대요. 내가 늦잠을 자도 그건 잠의 신이 나를 붙들어둬서 그런거야~ 같은 태도였다는 거죠. 우울의 늪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런 태도가 조금은 필요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망친 것 같고, 나는 정말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나만 운이 없는 것 같아 자기혐오가 물밀듯이 밀려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와 인생 플러스 마이너스인데 다음에 뭐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 하면서 눙치고 넘어가는 태도를 장착하면 좋아요. 물론 한 번에 잘 되진 않지만, 태도도 습관이라서 자꾸 연습 하다보면 몸에 익더라고요.


 작가는 나에게 잘된 일이 생기면 과거에 덕을 쌓은 게 복으로 돌아온 거고, 일이 잘못되면 덕을 쌓을 기회가 온 거라고, 그렇게 좋게 좋게 생각하고 넘어갔다고 해요.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죠. 덕 같은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삶은 결국 이런 순간들의 합이니까요.


 철학자 칼 포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 선과 악에도 통하는 말이지만, 삶 전반에도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는 게 훨씬 더 빨리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방법 같아요. 미래나 과거처럼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상황이 이미 고정되어 바꿀 수 없다면, 우리 태도를 바꿔야지 별 수 있나요.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진중한 사람이 쓴 자기혐오 극복 에세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저는 에세이가 평소에 느끼던 것을 타인이 정돈된 언어로 얘기해주는 데서 '공감'과 '위로'를 얻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싫어서 고민이신 분들, 좀 더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 내가 한심해 보이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앞서 걸었던 길을, 활자로 우선 걸어보세요. 그 길이 마음에 들면 비슷하게 가면 됩니다. 그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을 던져 버리고 그냥 다른 길로 가면 되겠죠!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