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검사생활
뚝검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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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면허직에 있는 사람이 "우리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모든 직업에는 직접 종사해봐야만 알 수 있는 어려움이나 습성이 있기 마련이고, 잘 모르는 외부인의 눈으로 그런 현장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건 언제나 재밌고 새로운 경험입니다. <슬기로운 검사생활>은 제목에서처럼 검사의 일상과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중간중간 직업-생활인으로서의 태도가 드러나는 게 흥미로웠어요. 아~ 일하기 싫다~ 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랄까요? 보통 이런 얘기는 잘 안 해주잖아요ㅋㅋㅋ



 

 처음으로 부장검사에게 직구속 의견을 받았을 때 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면서 얼마나 일이 많아질까, 얼마나 귀찮아질까 고민하면서 어떻게든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려고 반박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세상사 참 다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책에서는 결국 더 귀찮고 일이 많아지는 걸 감수하면서도 직구속을 청구해서 결국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합니다. 하지만 모든 검사들이, 모든 사안에서 이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번거로운 일을 해줄까? 하는 의심이 생겨요. 누군가는 성실히 하겠지만, 누군가는 자기 일이 더 늘어난다는 이유로 회피하기도 하겠죠? 이런 거 생각하면 피해자 입장에선 검사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인 것 같아요^^;


 이 책이 재밌는 점은, 이런 식으로 '근로노동자인 검사 입장에서는 귀찮거나 피하고 싶은' 일들을 숨기지 않고 다 말해줍니다. 앞서 말했던 직구속 수사라든가, 검사의 유죄 판결 재심 청구, 형 미집행자에 대한 수사, 공소기각 판결이 날 확률이 매우 높은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 이미 문서작성이 다 끝난 상태에서 새로운 정황증거가 나왔을 때 다시 조사 후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 등등.. 솔직해서 좋긴 한데, 사람 목숨과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기 위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좀 무섭기도 해요. 


 모든 집단에는 청렴한 사람과 부패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집단은 청렴한 사람 덕분에 부패한 사람 몫까지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일 테고요. 하지만 경찰이나 검찰, 법원 혹은 병원 같이 '인생을 극단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직업군들은 제발 좀 청렴한 사람의 비중이 높았으면, 자연발생적으로 높을 수 없다면 (당연히 없겠죠?) 사회문화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높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누구도 제발 억울한 일을 겪지 않으면 좋겠어요.





 요즘 계속 고민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사건도 몇 있더라고요. 현대 사회에서 약자들은 정보를 얻지 못해서 더욱 취약해지는 걸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데 그게 창피해서 말을 못하는 바람에 무면허 운전으로 몇번이나 걸린 운전자도 있었고, 친했던 지인이 500만원을 훔쳤다고 무고를 했는데 제대로 된 정보를 알지 못해서 유죄 판결을 받아버린 분도 있었어요. 특히 후자의 배복자(가명) 씨의 사연이 너무 씁쓸했습니다.


 이 분은 애초에 500만원을 훔칠 수가 없었던 게, 배복자 씨는 그 날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현장에 있을 수도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미 한 차례 경찰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피 같은 돈을 날렸기 때문에, 조사하러 나오라는 경찰 전화를 '또 보이스 피싱이라고 생각해서' 믿지 않는 바람에 출석 기회를 놓칩니다. 나중에 진짜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것도 처벌받을까봐' 말을 못 해요. 일방적으로 재판에 지고 나서는 '돈이 더 들까봐' 항소를 못 하고요. 읽다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으아아 비명이 절로 나온다니까요.


 이렇게 악조건이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배복자 씨 주변에 법에 관련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니 배복자 씨가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기만 했더라도,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목으로 억울하게 유죄 선고를 받지는 않았을 텐데요. 정말로 취약한 계층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조차 모른다는 게,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그 하나로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나중에 유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그 유죄 기록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시간을 들여야 하잖아요ㅠ 법률구조공단 이런 것도 있다는 걸 알아야 찾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어휴..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를 능가합니다. 막상 매체에 나오면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 너무 작위적인 거 아냐?' 하고 욕먹을 일도 현실에서는 종종 벌어진다는 게 너무 놀라워요. 남편에게 공기청정기 렌탈 계약을 들키지 않으려고 코디네이터를 고객 몰래 계약서 작성하는 사기꾼으로 고소한 사건은 정말;;; 그래놓고 검사실에서 계속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 이런 작정한 거짓말쟁이들을 상대하는 게 어지간히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책에서 '쉬워 보이는 사건인데 막상 들어가면 잘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있다고 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겠다 싶어요. 둘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거짓말하는지 모르겠다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까요..




 검사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사건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그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같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약간 자기미화도 좀 있긴 한데ㅋㅋㅋ 그건 뭐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ㅋㅋㅋ 개인적으로 어린이들을 존중하지 않고 얕잡아보는 '~린이' 하는 표현을 싫어하는데, 초반에 검린이 같은 표현을 써서 그건 좀 마이너스였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재밌었어요. 만족!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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