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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 제1권 바다와 교류의 시대 - 믿고 보는 신일용의 인문교양 만화 ㅣ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1
신일용 지음 / 밥북 / 2022년 1월
평점 :
저는 역사를 좋아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건 정말로 길어야 100년이잖아요? 사실 그 반의 반도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각자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안간힘을 쓴 결과들이 한눈에 보이는 게 역사잖아요.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할 때가 많은데, 수백 수천만의 인생이니 오죽하겠어요. 역사를 안다고 해서 더 현명해지는 건 절대 아니지만, 역사를 모르면 과거의 누군가와 똑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가 자꾸만 과거의 어두운 측면을 끄집어내고 떠들어야 하는 것도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함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고 공부했던 역사는 한국, 아무리 넓혀봐야 중국과 유럽 정도였다는 걸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를 읽으며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아니, 제가 정말 동남아 지역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왜 진작에 관심 가지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완전히 낯선 이야기를 만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자극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동남아 지역으로 여행을 몇 번 해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돈 쓰는 관광객으로서 그 나라에 잠깐 들르는 것만으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인도네시아만 해도 수백 종류의 민족과 수백 개의 언어를 가진 다인종 다언어 국가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지도부의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하나의 국가 아래 통합시킬 수 있을까?'라니 말 다 했죠. 우리는 단일 언어를 가진 국가잖아요.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영미권이나 중국권 문화도 단일 언어 문화고요. 그래서 다언어 국가는 어떨지 상상이 잘 안 되더라고요. 사투리랑은 많이 다르겠죠? 그렇다면 다언어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바이링구얼이라는 뜻일까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다니! 공용어를 '무조건 가장 쉬운 언어'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저는 '아목'이라는 말도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이게 '스시'나 '김치'처럼 그 지역, 그 나라 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적인 문화여서 영어사전에도 기재가 된 단어래요~. 분노나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폭발하게 되는 그런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래요. 한국인은 '한恨'을 품는다면, 동남아인들은 '아목'을 드러냅니다. 환경에 따라 이런 기질적인 차이를 품게 되는 것도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에요.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역시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국경선이 왔다갔다 했다는 건 몰랐어요. 사실 아프리카의 자로 잰 듯 반듯한 국경선이 너무 유명해서 동남아가 좀 묻힌 감이 있네요. 유럽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어떤 국경선을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지금과는 국경선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동남아 자체가 워낙에 다른 민족들이 섞여서 싸우고 화해하고 손잡았다 배신했다 밥 먹듯이 하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문화가 있다고 해요. 그런 묘사를 읽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지가 좀 궁금했습니다. 국가보다 자신의 종교나 언어/민족에 더 큰 소속감과 정체성을 누리고 있을까요?
한 나라를 진득하게 보는 게 아니라, 동남아 전체 지역을 쫘르르 훑는 형식이라 사실 정신이 좀 없습니다. 읽으면서 나라별 역사를 꼼꼼하게 짚어주는 시리즈가 있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또 생각해보면 워낙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은 역사가 많은지라 한 나라만 딱 다루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해요. 방대한 역사를 압축하느라 좀 빠르게 넘어가긴 하지만, 만화 형식이라 전체적으로 재밌게 술술 잘 읽혀요. 역사/세계사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시리즈에 한 번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