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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모나 숄레 지음, 유정애 옮김 / 마음서재 / 2021년 11월
평점 :
저에게 '마녀'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바로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자손"이라는 슬로건입니다. 마녀사냥이라는 게 종교의 이름을 빌린 여성 학살이라는 걸, 사회가 용인하지 않았던 똑똑하거나 독립적이거나 능력 있는 여자들을 도려내기 위한 시도였다는 걸 아주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좋은 문구죠. 어떤 경우의 수라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덫.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낙인. 마녀는 아주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이었다가, 이제는 저항과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페미니즘 도서를 읽을 때는 늘 그렇듯, 곳곳에 밑줄 치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세계를 인식하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속에만 묻어둔 이야기를, 정돈된 공적 발화로 듣게 될 때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희뿌연 안경을 쓰고 거리를 걷다 갑자기 안경이 깨끗해진 기분? 세상이 더 또렷하고, 더 정확하고, 더 분명하게 보이는 기분이에요. 예를 들어 어째서 남자들만 나오고 여자가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이토록 자연스러운데, 반대로 여자들만 나오고 남자가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질까? 어째서 여자 주인공은 반드시 사랑을 해야만 할까? 여기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렇게 답합니다. "인간의 자질 대부분이 '남성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그중 몇몇만이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다른 존재에 투사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훨씬 더 많이 갖게 된다." 도대체 왜 여자들은 소년 이야기에 그렇게 쉽게 공감할 수 있는데, 반대로 남자들은 소녀 이야기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어 하는지, 공감이 얼마나 사회문화적인 교육에 따라 학습되는지 알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요.
저자인 모나 숄레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곳곳에서 프랑스가 얼마나 성차별적인지를 성토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에 살았다면 분명 한국의 성차별에 기함했을 걸요? 물론 우리 모두의 조국은 각자의 방식대로 성차별적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여자를 착취하지만요. 프랑스가 단어에 설명을 붙이고, 여성의 공식적인 호칭을 나이에 따라 계급화한다면, 한국은 모든 경우에 여성에게 멸시하는 단어를 붙이고 어떤 경우에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게 망치질합니다.'메갈'이나 '페미니스트'는 우리 시대의 '마녀' 낙인이죠. 거기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그냥 자기 의견이 있거나, 주관이 있거나, 아니 하다못해 그냥 여성이기만 해도 그 낙인을 피할 수가 없거든요. 애초에 피할 수 있는 낙인이 아니에요.
능력있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마녀라는 낙인에 대한 고찰이나, 임신과 육아라는 굴레에서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찰, 그리고 노화를 금지당한 존재로서의 고찰,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임신 중단권이 굉장히 현재진행형인 이슈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특히 낙태 반대론자들은 실제로는 생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악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치들이 정말로 생명의 소중함에 관심이 있었으면, 태어난 생명에게도 똑같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N번방의 나라에서, 조두순의 나라에서, 손정우의 나라에서, 버닝썬의 나라에서 생명을 존중해서 낙태를 반대한다니 무슨 개소리에요? 태어난 애들이나 어떻게 잘 좀 보호해줘 보라지!
여러모로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저자가 굉장히 온건한 편에 속하는 편이라 (예를 들어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노화에 대한 시각 같은 것)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