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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저는 이 소설이 일상 추리물인 줄 모르고 집어들었어요. 제목과 표지의 홍보문구를 보고, 정말로 '신'이 등장하는 소설인 줄 착각했거든요. "그날도 우리는 신에게 물었다" 하는 문구에서 제가 떠올린 건, 어딘지 모르게 땅에 발 붙이지 않은 느낌을 주는 누군가가 아이들이 뭘 물을 때마다 무심하게 툭 툭 선문답을 하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육체를 입고 극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와 스릴러를 섞은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극이 전개되면서 보여지는 건, 남들보다 좀 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셜록 홈즈 주니어입니다. 구도가 딱 그래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과, 그의 곁에서 그를 적극 지지하고 도우며 떄로는 그에게 사건에 개입할 명분이나 추진력을 만들어주는 조력자!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번역자도 '너무 일찍 홈즈를 만나버린 왓슨'으로 주인공을 평가하셨더라고요. 왓슨이긴 한데, 홈즈에게 동경과 질투와 분노와 원망과 맹목 등등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는 왓슨이거든요. 전체적으로 정신연령이 어리다는 게 확 보여요. 아무래도 나이가 초등학생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더 그런 듯 합니다. 홈즈도 왓슨도 다 초등학교 5학년생들이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까지. 5학년을 보내면서 겪는 사건들이 연작 형식으로 실려 있어요. 저는 소소하게 일상 얘기를 하던 첫 번째 봄과 여름의 초입 부분이 제일 좋았습니다. 특히 '왜 미술 시간에 야노가 가와카미에게 물통을 던졌을까?'라는 질문에 미즈타니가 왜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지를 묻는 부분이요. 둘의 갈등은 당사자들끼리 이야기해서 잘 해결되었고, 딱히 악의에 찬 괴롭힘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선생님이 말한 내용은 너무 가짜인 티가 나고... 그런 상황에서 제3자가 도대체 왜 그 진실을 궁금해하냐? 미즈타니는 그것을 '의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자기가 사태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올바른지 알고 싶은 상태라는 거죠. 여론의 상당수가 이런 감정에 기대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꽤 정확한 표현이다 싶어요.
아무래도 여름부터 등장하는 아동 학대 관련 이야기가 작가가 건드리고 싶었던 주제일 것 같은데... 저는 주인공이 너무나 순진한 온실 속 세계의 아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바람에 오히려 그 부분은 좀 튕겨져 나왔습니다. 게다가 5학년 소년 둘이서 해결할 수 없는 규모의 문제이다보니, 결국 어른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착한 아이'인 주인공의 시선 바깥에서 해결이 이뤄진다는 점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 아이들이 훌쩍 자라고 난 뒤, 그러니까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되었을 즈음을 배경으로 했으면 어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훨씬 더 활동의 폭이 넓어졌을 테고, 그에 따라 '신'이 멋지게 해결하는 비중도 훨씬 더 커지지 않았을까요?
소소한 일상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혹은 홈즈-왓슨식 관계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