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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포트 - 탈코르셋부터 소수자 차별 금지까지, 기자 4인이 추적한 우리사회 변화의 현장들
김아영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저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문제가 있는 많은 것들이, 세상에서는 굉장히 로맨틱하거나 멋진 일로 포장되곤 했거든요.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남자 주인공이 폭력성에 놀라곤 했는데 그게 많은 경우에 사랑에 빠지는 장치로 활용이 되더라고요. 주변에 말해도 별로 공감을 받지 못해서, 한국 사회에선 그냥 평생 좀 이상하게 살아야보다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2016년, 미투운동으로부터 불어닥친 페미니즘의 바람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니, 사실 제가 정말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오래 전부터 훨씬 더 많이 이상했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유레카!
<페미니즘 리포트>는 요 몇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서 문제제기가 되어온 페미니즘을 크게 4가지 이슈로 나누어 정리한 책입니다. 사실 그동안 나온 논의들을 얘기하면 정말 끝도 없는데, 큰 이슈들을 잘 뽑은 것 같아요. 탈코르셋/디지털 성범죄/임금격차/소수자 차별. 모두 지금의 페미니즘을 말할 때 뺴놓을 수 없는 주제들이잖아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읽기 쉽게' 쓰였기 때문에 흐름을 한번에 정리해서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에게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제일 눈이 가는 건 3장 임금격차였습니다. 요즘 제가 가장 관심있는 문제거든요. 남자가 100을 받을 때 저는 64밖에 받을 수 없다면, 앞으로 1인 가구로서 미혼 여성인 제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남녀차별은 이제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취업 시장에 나와보면 그런 소리를 안 하게 되는 이유가 있잖아요ㅋㅋㅋ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고 커리어에 올인한다고 해도, 같은 일을 하는 남자보다 덜 받는다면 희망이 없어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이런 식의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도대체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ㅠ
개인적으로 앞장에 몇년간의 사건을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해놓은 구성이 좋았습니다. 얼마 전 버닝썬 사건을 따라간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한 건데, 현재진행형의 사건을 계속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흐름이 헷갈릴 때가 있거든요. 제 생각보다 더 오래되기도 하고 혹은 더 빠르게 뭔가 바뀌기도 했더라고요. 그럴 때 연대기가 짧게나마 앞부분에 있으면 중요사건과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더라고요.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차별금지법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제법 멋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차별하는 쪽에 서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싸우고 있고, 차별금지법은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꼭 필요한 법이니까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법과 제도가 바뀌면 곧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믿어요. 때론 시스템이 사고방식을 결정하기도 하잖아요.
이제는 한국 여성이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일으킨 아주 큰 파동의 이슈를 묶어서 잘 정리해 보고 싶다면, <페미니즘 리포트>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