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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의 정리 1 - 개정판
드니 게즈 지음, 문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평점 :
정말 정신없는 소설입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내용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소설 자체의 미스터리도 3가지나 되는데, 거기에 이것저것 수학 공식과 수학자들 이야기가 껴 있거든요. 그 어떤 소설보다도 읽는 속도가 느렸던 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수학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도 '내가 뭘 놓쳤나?' 하고 다시 돌아갔던 부분이 몇 부분이나 있었어요ㅋㅋㅋ 서술 자체가 순서대로 쭉 나오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거든요.
주인공 뤼슈 씨는 젊었을 적 '철학' 관련해서 꽤 날리던 노인장으로, 파리에서 조그마한 서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수학'과 관련해서 또 한창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던 그로루브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로부터 갑작스럽게 엄청난 양의 수학 관련 장서를 넘겨받게 됩니다. 알고보니 이 친구는 그 직후에 바로 화재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치 자신의 집에 화재가 나서 장서는 다 불타고 자신은 죽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한 모양새죠. 이것이 첫 번째 미스터리입니다. 그로루브르 씨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또 한 편으로는 막스라는 꼬맹이가 있습니다. 뤼슈 씨네 가게에서 일하는 페테르 씨라는 여성의 열한 살짜리 막내아들입니다. 귀가 좀 불편해서 잘 들리지 않지만, 그 덕분인지 오히려 온 몸의 감각으로 상대의 말을 캐치하는 능력이 있어요. 이 아이는 벼룩시장을 쏘다니며 타고난 감각으로 보물을 발견하는 재능으로, 어느 날 벼룩시장 모퉁이에서 남자 둘에게서 폭행을 당하며 "살려줘!" 하고 외치던(?) 앵무새 한 마리를 구조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앵무새는 보통 앵무새가 아니었고, 그래서 이 앵무새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조직이 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미스터리입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마지막으로 페테르 씨의 아주 많이 생략된 가정사입니다. 페테르 씨는 어느 날 맨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맨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일방적으로 파혼을 했어요. 그 후 아홉 달이 지나 쌍둥이를 낳았고, 그리고 또 어느 날 갑자기 고아 소년 막스를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저 이 부분에서 정말 이해가 안 되서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었어요. 맨홀에 빠졌다가 나오고나서 파혼을 했고, 그 후 아홉 달이 지나서 쌍둥이를 낳았다- 이게 맨홀이 사실 물리적인 맨홀이 아니고 어디에 끌려가서 강간을 당했다는 걸 지금 은유한 걸까? 그래서 쌍둥이가 태어났고? 그런데 나만 그걸 못 알아들었나? 하고 혼란스러웠어요. 앞으로 돌아가봐도 '인부들이 뚜껑을 열어두고 깜빡 하고 안전 표지판을 안 세웠다' 같은 묘사가 있으니 진짜 맨홀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해를 접어두고 읽다 보니까 쌍둥이도 자기 출생의 비밀(?)을 궁금해하더라고요. 맨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기들이 태어났냐면서요ㅋㅋㅋ 이것이 세 번째 미스터리입니다. 페테르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2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1권에서 세 가지 미스터리가 모두 해결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2권에서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될지 너무 궁금해요. 판타지스럽게 이어진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분위기 자체가 약간 빙글빙글 어리둥절 돌아가는 파리의 수학 수업 같은 느낌이거든요. 일단 앵무새부터가 범상치 않잖아요. 정말로 피타고라스 시대부터 살아온 수학의 메신저, 수학의 요정이라고 해도 아 그렇구나 할 것 같다니까요~ (진짜로 작가님이 그렇게 풀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뤼슈 씨가 해주는 철학과 교묘하게 합쳐진 수학과 수학자 얘기도 꽤 흥미로웠지만, 저는 일상에서 소소하게 수학 문제 내는 서술이 참 좋더라고요. 나도 풀 수 있는 퀴즈 같은 느낌? 그리고 수학 문제와 현실의 문제가 겹쳐지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등변 삼각형을 생각하면서 페테르 씨와 그의 두 쌍둥이, 그리고 막내아들을 생각하는 식으로요. 수학을 일상에 이런 식으로 겹쳐볼 수도 있구나, 이게 수학자의 감각이구나, 싶어서 재밌었어요. 읽는 내내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한단 말이야?'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답니다. 탈레스 같은 사람들은 수학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삼각형의 내각'이라든지 '피라미드의 비례' 같은 걸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게 새삼 너무 신기했어요. 저는 평생 태어나서 수학 시간 외에는 수학적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학창시절에 읽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배울 때, 이 소설을 같이 읽었으면 훨씬 더 재밌게, 훨씬 더 오래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음.. 그때는 이 소설도 그냥 참고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교과서에서 정해진 거, 원래 그런 거, 같은 느낌으로 배웠던 진리를 발견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보는 과정은 뭔가를 배우는 데 엄청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괜히 다시 한 번 수학교과서를 펼쳐보고 싶다는 충동 아닌 충동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