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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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건데, 저는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당연히 여성이 썼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 혐오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이 남성인 경우를 주변에서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역시 세상은 넓고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네요. 작가가 여성 혐오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면, 당연히 여성 혐오를 정당화할 거라고 지레 짐작을 하며 말없이 윙크를 보내거나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제발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별과 편견은 자각과 반성 없이는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으니까요.


 여성 혐오의 기원을 파헤치고, 그게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뭐가 중요할까요? 저는 그 이유가 역사와 문화라는 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게, 공기처럼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한국이 이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하는 것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생각해보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서 말이에요. 딛고 선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면 정말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막막해집니다. 여성 혐오는 인종 차별보다도 훨씬 더 자각하거나 인지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신화나 종교 속에서도 온갖 방법으로 여성을 하등하고 미천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잖아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살펴보면 '태초에 판도라가 있었다'나 마찬가지죠.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서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줬다 이겁니다. 기독교를 보면 '하와가 아담을 타락시켰다' 하는 버전이 있고요. 기독교뿐만 아니라 같은 뿌리를 둔 유대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반대로 완벽한 성녀를 내세워 실존하는 모든 여성을 모두 비하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처럼요. 저는 성당에 다녔으면서도 성모 마리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신의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했는지 전혀 몰랐지 뭐예요. 마리아가 처녀인지 아닌지, 언제 어떤 순간에도 존재했던 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모두 높으신 주교님들의 종교 회의를 거쳐 결정되었다는 거~ 만약 거기서 성모 반대론자 힘이 더 강했으면 지금쯤 마리아라는 '원죄 없이 태어난 유일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


 그리스-로마를 거쳐 기독교-중세-마녀사냥을 짚어보고, 문학과 철학에서 내재화된 여성 혐오를 들여다보면서 그에 영향을 받고 자란 온갖 독재자들이 여성을 어떻게 자궁 취급했는지를 연결시키는 솜씨가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놀라울 지경입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역사가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 중 하나인 여성의 '신체적 선택권', 즉 낙태에 대한 이슈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수 있어요. 한마디로, 지금 낙태 논쟁은 생명에 대한 논쟁이 전혀 아닌 거죠. 낙태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이게 생명에 대한 이슈가 되려면, 그들이 잉태중인 태아 이외에 다른 생명을 똑같이 존중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증거들이 눈만 돌리면 쏟아져 나오잖아요. 막상 태어나 존재하는 생명은 전혀 존중하지 않지만, 여성의 몸 안에 있을 때의 생명만은 존중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어휴.


 혐오와 차별과 편견의 역사는,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식하고 분쇄하기 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고대부터 굴려온 여성 혐오의 눈덩이가 엄청난 크기로 불어나 우리를 덮치고 있어요. 사실 읽고 나면 좀 막막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촘촘하게 짜여진, 고대 신화부터 일상의 종교까지 온갖 곳을 파고든 여성 혐오를 어떻게 벗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거든요. 책을 읽기 전에도 알긴 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야 잘 봐봐 이건 이런 줄기에서 이렇게 생긴 차별이야, 이걸 극복하려면 인식 자체를 바꿔야 돼, 하고 짚어주는 거랑 그 무게감이 달라요ㅠ 뭐 계속해서 차별해봐라 인류 다함께 멸절밖에 더 하겠냐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ㅋㅋㅋ


 지금 이 후기를 쓰고 있는 순간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버렸네요.. 책 속에 묘사된 탈레반의 정책과 사상을 되짚어봅니다. 그 사상이 탄생하게 된 과정도요.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제발 무사하기를, 살아남기를,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현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 빌어 먹을 여성 혐오로부터 우리 모두가 탈출할 수 있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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