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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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래 된 고전이라는 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담아내기는 좀 부족하잖아요. 현대의 눈으로 보면 여기저기 불편한 구석이 많지요. 그러다보니 우리 시대에 새롭게 다시 써 보자! 하는 시도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저는 사실 이런 시도를 꾸준히 찾아 보면서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익숙한 소재와 서사이다 보니 몰입은 쉬운데, 반면에 뭘 봐도 2차 창작이나 아류작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해방자 신데렐라> 말미에 리베카 솔닛이 덧붙인 작가의 말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막 대단히 잘 꾸민 말은 아니었어요. 단지 신데렐라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판본과 변형으로 내려오고 있는지를 말해준 것 뿐이었어요. 하지만 그 글을 읽다보니 새삼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버전이 모두 '원형'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원형'이 나타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예를 들면 디즈니 같이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제작사에서 새로운 버전을 제작한다면, 그건 우리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원형'으로 받아들여지겠다 하는 생각 말이에요. 그리고 그게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누군가가 쓴 동화책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이 익숙하고도 새로운 동화를 좀 더 너그럽고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ㅎㅎ


 <해방자 신데렐라>에서 가장 좋았던 건 신데렐라의 이름에 얽힌 아이디어였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이 동화 전체가 신데렐라의 (무시와 경멸과 자각하지 못하는 차별이 섞인) 호칭을 바로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신데렐라에게 진짜 이름을 돌려주는 여정이랄까요. 제가 영문권 독자가 아니라서 이렇게 뻔히 보이는 신데렐라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놓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완벽한 아이디어였어요! Cinder+Ella라니! 신데렐라라는 호칭에서 먼지를 털어내면 엘라가 된다니! 정말 너무 멋지지 않나요?! 수없이 다양한 신데렐라 버전을 봤지만 이건 또 처음이라 박수를 쳤답니다. 동화에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니 동화가 아니더라도 모든 창작물에서 이름이 얼마나 요한지는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오 정말 리베카 솔닛, 당신 천재인가봐..


 삽화가 그림자로만 이루어져 있어 인종을 특정할 수 없어 좋았다는 말에도 적극 동감합니다. 이런 부분을 만날 때마다 제가 항상 '인종'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필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요. 아무래도 매일 눈 뜨면 여러 인종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미국보다 덜 예민한 거겠죠. 전 그저 삽화가 미모를 드러내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신데렐라는 예쁘고, 왕자는 잘생겼고, 다른 사람들은 주인공 둘보다 덜 예쁘고 잘생기게 그려진.. 그런 식으로 미모에 따라 층위가 나뉘는 삽화를 보면서 학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만 주목했어요. 그런데 확실히 그림자로만 표현하다보니 신데렐라나 왕자, 마구종이나 마녀가 특정 인종으로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이것도 정말 굿 아이디어!


 더 많은 아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섬세하게 조형된 판본으로 옛 동화들을 만나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조카에게 선물해주고 싶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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