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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손지상 옮김 / 들녘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나비효과'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라는 말도요. 여기 등장하는 모두가 진실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 자신이 무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거든요. 모두가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만 알고 있어요. 뭘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죠. 사람이 볼 수 있는 시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각자 흩어진 상황에서는 그걸 하나로 꿰어 맞출 수 없었지만,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접하게 된 사람이 그 조각들을 맞춰보기 시작한다면? 갑자기 35년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게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가끔 인간보다 한 단계 상위의 존재가 있다면, 그게 신이든 뭐든, 그 존재가 바라보는 사회는 거미줄처럼 아주 촘촘하고 호수처럼 잔물결이 끝도 없이 퍼지는 모습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도 딱 그래요. 35년 전, 몇번이나 사고가 났던 강 기슭에 한 건설업자가 기슭막이 공사를 하다가 화학물질이 유출되자 그걸 은폐하게 됩니다. 모든 이야기가 거기서부터 시작해요. 신문 사회면에나 실리는,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일이 불쑥 현재의 내 삶에 끼어들게 되는 과정. 본인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던 인과관계를 되짚어가 보는 게 바로 이 소설입니다.
전체적으로 '거짓말'이라는 테마가 많이 쓰여요.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지역에서 매우 지탄받고 있던 자신의 성 대신 친구의 성을 알려준 여고생, 자신을 우러러보는 자식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범죄에 손대고 만 가장, 새로 전학 온 친구와 있었으면 하는 일을 진짜처럼 말해보는 거짓말 놀이에 심취한 소년,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낯선 남자와 위험한 거래를 하고 만 CEO..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인 거짓말을 합니다. 어떤 거짓말은 밝혀지고, 어떤 거짓말은 일부 사람에게 공유되지만, 또 어떤 거짓말은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비밀로 남기도 해요.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은 물론 흥미로웠지만, 이 작품에서 진실이라는 게 꼭 밝혀져야 하는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핵심은 아니라는 게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각자 자신의 길로 나아갔거든요. 이 진실은 관계자들이 아무도 모른 채 평생 산다고 해도 별 문제가 안 돼요. 알면 좋지만 몰라도 좋은 그런 진실이거든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잖아요. 예를 들어 '35년 전, 다리 위에서 돌을 떨어뜨려 누군가를 크게 다치게 한 사람이 누군가?' 하는 문제. 만약 죽었다면 정말로 엄청난 일이 되었겠고 범인이 중요했겠죠. 하지만 35년이 지난 지금, 이미 회복해서 자기 삶을 잘 살고 있는 피해자에게 굳이 찾아가 범인을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피해자가 모른다고 해서 전혀 해가 되지 않잖아요.
[옮긴이의 말]에서 아무렇게나 칠하는 것 같던 스피드 페인팅을 뒤집으면 초상화가 되는 영상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는데, 너무 정확한 비유라 무릎을 딱 쳤다니까요! 우리는 하나하나의 점입니다. 우리만으로는 전체 그림이 도대체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충분히 많은 점을 그리고 그걸 멀리서 바라보면, 분명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거죠.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그 그림 속 한 점에 불과한 우리도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요. 이 소설 속 아유미와 겐야, 대갈과 땅콩처럼요.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의 일상 미스터리나 군상극에 가까운 느낌이 있습니다. 관계된 모두가 마지막에 다같이 모여서 낚시하는 부분이 특히 그래요.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우리 행동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게 상대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고, 기쁨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상처가 될 수도 있죠.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인과관계를 다 생각하거나 파악할 수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 힘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뿐일 겁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있으니까, 할 수 없는 거야."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어."
그래, 그거 말고는 없어. - p.434-435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