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 백천수 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0
손서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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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성장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읽다보면 주인공과 함께 제 자신도 훌쩍 큰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잖아요~ㅋㅋㅋ 비록 제가 직접적으로 한 경험은 아니지만 책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간접 경험도 차곡차곡 제 안에 쌓여서 뭔가 아주 조금씩, 0.01mm씩이라고 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그 숫자가 의미 없다고 하겠지만, 그건 살면서 두고 봐야 할 일이죠. 아무튼! 저는 그래서 청소년 소설도 무척 좋아합니다. <착한 아이 백천수 씨>를 집어든 이유도 제목과 표지에서 강하게 풍기는 그 '성장'의 느낌 때문이었어요.


 제목에서 착하다고 상정된 아이는 보통 실제로 착하다기보다 착해야 한다고 몰아붙여진 케이스가 많은 것 같은데, 백천수는 정말로 착한 아이입니다. '착하다'의 정의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쉽게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요. 백천수의 엄마인 강미숙은 착하다는 걸 그걸 욕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요즘 세상에 착하다는 말은 어리숙하고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이, 선의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백천수 본인은 좀 고달플지 몰라도 저는 백천수가 정말로 착한 아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시작부터 폭탄을 터뜨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이 케냐의 아이를 죽였다' 하고 전세계적으로 보도가 되고, 아이들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면 백천수도, 고승아도, 전혀 그런 사고를 칠 만한 아이들이 아닌 게 보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고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마거릿이 도대체 왜 등장하는지 몰랐는데,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접점으로 모여들면서 사건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이더라고요.


 <착한 아이 백천수 씨>는 굳이 따지자면 청소년 문학이겠지만, 읽다보면 이 안의 어른들도 모두 아직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통과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인 백천수를 비롯해 아프리카로 함께 해외연수(?)를 떠난 고승아, 그리고 갈등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라몬 타사피는 모두 아직 10대인 미성년자들이지만 정작 이 모두를 연결시키고 사건의 중심이 되는 마거릿 부인과 그의 남편 존, 그리고 해리는 성년을 애저녁에 지나친 어른들입니다. 하지만 이 중 누구도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우왕좌왕하면서 실수하고 후회하는 걸 반복해요.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사소한 선의가 사람을 살릴 때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 선의를 지지하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할 것이라는 오만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건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합니다. 비행 청소년을 구원하고 싶다는 마거릿의 열망이 사실은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는지, 혹은 아프리카에 봉사를 오는 외국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아프리카를 망치고 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줘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적선하는 건 정말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게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받는 사람은 기가 막히게 그 시혜적인 오만함을 캐치하기 마련이거든요.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배에 지방이 너무 꼈고 생각이 지나쳤다. 그러더니 아프리카 판타지에 시달렸다. 그들은 상상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고. 한데 몸은 나약하고 병들어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콧물을 닦아 주려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었고, 자기들보다 날씬한 아프리카 여인들에게 버터와 과자와 온갖 정크푸드를 먹이고 싶어 안달했고,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며 흉측한 건물을 지으러 몰려들었다. 또 있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대학생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을, 영어를, 세계사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배움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쳤다. 그들 또한 그렇게 배웠으니 똑같이 따라했다. 대학 때 딱히 야망을 펼칠 일이 없어서 그러기도 했다. 외국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면 현지 교사들은 뒤처진 진도 때문에 애를 먹었다. - p.89 


 이런 태도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우리나라에도 흔하잖아요. 기초생활수급자 애들 밥 못 먹는 건 안쓰럽다고 하면서도, 걔네가 조금이라도 좋은 밥 먹고 좋은 거 쓰면 노발대발해서는 구청에 항의전화 넣는다는 사람들이 딱 이 짝이에요. 마거릿은 계속해서 대상만 바꿔가면서 이런 태도를 고집하는데, 그러다가 케냐에서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어'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솔직히 저는 여기서 마거릿이 좀 더 나아가 무슨 행동을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마거릿은 백천수와 고승아 대신 라몬 타사피를 찾아가더라고요. 정말 끝까지 기만적이다 싶어서 혀를 찼습니다;; 


 모든 게 완전히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에요. 백천수는 확실히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 데 후폭풍을 온전히 무사히 견뎌낼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온갖 루머와 악의적인 언론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현지에서도 오해가 그대로 유지된 채로 그냥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이게 정말 해피엔딩일까? 뭐 이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주인공이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 모든 걸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면 좀.. 많이 억울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책 자체가 얇기도 하고, 전개에 속도감이 있어서 후루룩 읽혀요. 청소년 문학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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