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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작은 아씨들 1 (189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영화 원작 소설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박지선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고전 <작은 아씨들>이 요즘 대세입니다. 영화며 연극이며 뮤지컬이며 온갖 장르로 각색되어 즐거움을 주고 있어요! 출판업계도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다양한 번역과 디자인의 <작은 아씨들>을 내놓고 있는 중이라,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래저래 즐겁습니다. 그 와중에 더스토리에서 나온 초판본 시리즈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네요ㅎㅎ 초판본이라니! 비록 진짜 초판일 수는 없고, 그저 디자인만 같은 복각본이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정서를 느끼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벨벳 버전과 민트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저는 상큼한 마치 가 자매들의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가 좋아서 민트 버전으로! 책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표지의 일러스트는 첫째 메그의 결혼식 때 장면이랍니다:)
이 중에 하나는 네 취향이겠지
<작은 아씨들>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각각 놀랍도록 다른 네 명의 자매들일 겁니다. 아름답고 의젓하며 살짝 허영심이 있는 첫째 메그, 모험심 많은 장난꾸러기인데다 작가로서 출중한 재능을 가진 둘째 조, 조용하고 수줍음 많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셋째 베스, 그리고 누구보다 사교적이고 현실적인 막내 에이미까지! 이렇게 다양하고 생생한 현실 속 여자 아이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특히 고전일수록 소년의 성장담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소녀의 성장담은 적은 느낌이랄까요? 특히나 <작은 아씨들>이 출간될 당시에는 이런 경향이 더 심했던지라, 판타지가 살짝 뿌려진 소소한 일상 속 자연스러운 네 명의 소녀들에게 당시 독자들이 열광한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동안은 만나보지 못했던, '나 같기도 하고 내 친구 같기도 하고 내 이웃 같기도 한' 이 네 명의 소녀들을 응원하고 싶어졌을 테니까요!
자매라 해도 각자의 성향과 개성에 따라 서로 다른 관계가 쌓이게 되는데, 형제자매가 있다면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묘사가 펼쳐집니다. 모두가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는 없거든요. 사랑의 형태와 결과 농도가 조금씩 달라요. 예를 들어 막내 에이미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라임을 빚졌다고 할 때, 친구들 사이에서의 그 미묘한 알력을 헤아리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사람은 메그일 수밖에 없죠. 남에게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가난하다고 무시받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메그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조나 베스는 에이미나 메그만큼 사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그런 부분에 신경을 덜 쓰게 되잖아요. 한편 조와 베스는 성격이 정반대라서 오히려 서로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 단점을 상쇄시키는 조합이고, 고민이나 비밀도 모조리 털어놓는 친구입니다. 조와 에이미는 워낙 성격이 솔직하고 고집도 세서 맞부딪치는 일이 많지만 또 그만큼 미운 정이 많이 든 사이고요. 자매간의 약간은 미묘한 그 간극을 엄청 잘 표현해내서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와요.
현대로 오면 올수록, 네 자매 중에서도 작가의 분신이자 사실상 주인공인 조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장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이니까요. 현대 독자의 눈에는 현모양처가 꿈인 메그나 조용하게 집에 틀어박혀 있는 베스 혹은 부잣집으로 시집가겠다는 에이미보다는 자기 능력으로 세상에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조가 더 멋지게 보일 수밖에 없죠. 가장 독립적이잖아요~ 유명한 작가들 중에서도 <작은 아씨들>을 읽으면서 조에게 자신을 이입했다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요. 물론 저도 어릴 때 조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작가의 원고를 불태운' 에이미를 무척 미워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조에게도 결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약 네 자매 중 한 사람이 된다면 조가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죠.
그런데 여러 장르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내용을 접한 덕분일까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다른 자매들한테도 자꾸 눈길이 가더라구요. 특히 저는 베스가 자꾸 눈에 밟혀요. 누구보다 선하고, 다정하고, 배려심 많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영원히 소녀로 남게 된 우리의 천사! 영화에서 셋째인 베스를 일부러 가장 어린 배우로 캐스팅한 건,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베스만은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래요. 메그도, 조도, 에이미도, 결국 모두 떠나고 마는 집을 끝까지 지킨 아이. 조와 베스의 바닷가 장면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요ㅠ 어떻게 그렇게 어린 아이가 담담하게 자기 죽음 이후의 세계를 걱정할 수 있을까요? 조금은 더 제멋대로 굴고 아프다고 호소해도 좋을 텐데.. 베스는 그러기에는 너무 생각이 깊은 아이라 그게 너무 슬퍼요.
로맨스가 뒤섞인 성장담
1권이 워낙 유명해서 후일담인 2권이 살짝 묻히는 감이 있었는데, 요즘에 새로 출간되는 버전에서는 합본도 많아서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장르로 각색할 때도 2권 내용까지 다 집어넣는 경우가 많고요. 그 덕분에 요즘 많은 분들이 새롭게 알고 가장 충격을 받으시는 부분이 아마 자매들의 러브라인일 텐데요~ 갑자기 로리는 조에게 차이더니 얼마 뒤 조의 여동생인 에이미와 결혼을 하는 게 아닙니까?! 게다가 웬 듣도보도 못한 나이 많은 독일인 교수가 등장해 조를 낚아채고요! 아무리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지만, 1권 내내 조와 로리의 투닥거림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독자로서는 약간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죠. 꼭 조와 로리가 이어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들을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워요. 특히 저는 유교걸이라서(ㅋㅋ) 언니에게 열렬히 구애하던 남자가 마음을 바꿔 그 동생과 결혼한다는 게 영 껄끄럽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로리는 조보다 '마치 가'에 매혹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마치 가의 일원이 되고 싶다, 저 사람들이랑 진짜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사실 조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던 게 아닌가 싶은? 뭐, 동갑이기도 하고 가장 친하기도 한 조가 제일 우선순위였던 건 맞지만요. 만약 메그가 짝이 없었거나 베스가 건강했다면 그 둘도 로리의 상대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해요. 이렇게 말하면 에이미에 대한 로리의 사랑을 폄하하는 것 같지만, 정말로 그런 의심이 드는 걸 어떡합니까. 사실 로리의 할아버지인 로런스 씨는 원작에서 대놓고 마치 가의 딸이기만 하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로리와 에이미가 평생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그냥 로리는 옆집 소년 로리로 남아줬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아쉬움이지만요.
사실 올콧은 당시 많은 여성 문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조를 혼자 사는 독신 여성으로 그리고 싶어했대요. 그런데 <작은 아씨들> 1권 이후로 엄청나게 많은 독자들의 편지가 도착한 거예요. 조를 로리와 이어달라고요! 하지만 작가는 로리는 조에게 맞는 짝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에게 적당하고 재미있는 짝을 찾아준 결과 베어 교수가 등장하게 됐다나봐요. 아무래도 여성이 결혼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이다 보니 그런 전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대에는 베어 교수를 등장시키지 않거나 혹은 베어 교수가 등장한다고 해도 조가 작가로서 혼자 당당히 성공하는 결말로 각색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원작자 의도대로 여자 주인공이 결혼하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도 대중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대가 온 거죠! 올레!
어린 시절에 즐겁게 읽은 책을 어른이 되어서 새롭게 만나니 신기해요. 다시 읽으니 새롭게 보이는 것도 많고, 특히나 이런 고전은 다양한 버전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다 보니 여러 가지 설정들이 머리 속에 뒤섞여 있었다가 원작을 읽고서야 정리되기도 하고요. 어디까지가 원작이고 어디까지가 각색인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드라마 같은 다른 작품을 보고 나서 보시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소설 그대로도 여전히 근사하고 재밌는 작품이지만요. 여전히 생생하고 매력적인 이 네 명의 소녀들, 다시 만나면 또 한 번 사랑에 빠지실 수밖에 없으실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