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이다.스키여행도 약발이 금방 떨어져버렸다.백로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이 글은 일기도 독후감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우현이의 아이스 하키 연습 시간이다.탈의실에 들어가자 우현인 차마 중간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옆 제일 구석자리에 자리잡는다.조용히 스케이트를 매어준다.끈을 너무 꽉 매주려 그랬는지 손끝이 갈라져서 약간 피가 난다. 링크에 들어선다.그들은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앉아있다.난 가능한 머리 노랗고 눈 파란 그들과 떨어져 앉아서 책을 든다.신경숙의 외딴방이다.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다.그들은 없다.나는 내 외딴방에 돌아와 있다.
<글쓰기란 나에게 집이었을까.>
<글쓰기,내가 이토록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만이,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낮아지지 않았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소외를 여기서 느낀다.책을 읽으며 내 우물 속의 쇠스랑이 울렁인다.정신 없다.말도 잊고 묵묵히 설겆이를 한다.오빠가 나를 본다.내 눈은 멀리 외딴방에 사로잡혀 있다.소용 없음을 안 그도 그만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유리를 깨려고 한다.아줌마들에게 이끌려 쇼핑 몰에 간다.기대와는 다르게 자꾸 대화가 엇나가는 것 같다.일대일로 볼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그녀들이 모이니 다른 사람들 같다.갑자기 공허해진다.점심으로 스시를 시키고 자리를 잡는다.순간 나는 본다.내 앞의 유리벽을.환상처럼 스르르 소리 없이 내려오는 그 유리벽을 난 멍하니 본다.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작아져있다.목소리도 그들에게 들릴 턱이 없다.유리는 나에게 감옥이다.군중 속의 고독.하루종일 더 우울하다.
기도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군중속의 고독이 더 싫다고.차라리 집에 혼자있는 고독을 즐긴다고.그래서 그녀는 여러사람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많이 잊어버렸다고 했다.그녀는 이젠 초월해서 담담히 말하는데 듣고있던 나는 그녀때문에 내 고독이 사무쳐서 눈물이 나왔다.
영등포 여고.내가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를 보러 갔던 학교이다.신경숙,그녀가 시골서 상경해 동남전기를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던 1979년.그 해를 기억한다.박정희 대통령이 밤사이 죽은 줄도 모르고 난 새벽에 오시는 영어 선생님과 우유를 마시며 공부를 했었다.그녀들이 에어 드라이버로 나사를 박고 미싱으로 손등을 박고 2만개 사탕을 비틀어 싸느라 손이 짓무르고 노조에 가입하고 월급을 쪼개서 시골 집에 보낼때 난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검정색 차를 타고 학교에 갔고 식모언니가 밥을 차려줬으며 용돈으로 성룡의 영화를 보고 게리무어의 음반을 샀다.
<현재성을 오래 생각해본다. 너무 속도가 빨라 노래 하나도 따라부르기 힘든 지금,내가 붙들 현재란 무엇인가,하고.나는 지나가고 싶지만 과연 무엇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인지.미래소설이나 가상소설이라고 처음부터 작정을 해둔게 아니면 글쓰기는 결국 뒤돌아보기 아닌가.>
살짝 터진 손끝이 계속 아프다.피아노 콩쿨을 나가려 연습하던 그때 이후 손끝이 갈라진 것도 내 기억 속에 처음이다.안하던 집안일에 손이 많이 거칠어졌다.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며 그녀들을 생각한다.
구역 성경공부를 간다.언제나 울까봐 조심스럽다.예전에 헌금을 미리 주일 전날 새돈으로 준비 안했다고 오빠한테 혼난 이야기를 한다.별것도 아닌데 갑자기 또 눈물이 나온다.수도꼭지가 열리니 줄줄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그리 슬프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일상의 이야기인데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민망하다.행여나 나를 신심이 깊은 사람으로 오해할까봐 걱정이다.끝나고 일어서는데 코까지 빨개진 나한테 옆사람이 말한다.알러지 있으세요? 하고.
알러지,알러지,알러지,하고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닌다.갑자기 순간 설명이 된다.내가 우는 이유가.그래 알러지가 맞다.내가 내 속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내 연하디 연한 속살을 열어보이는 순간,벽에 가렸던 내 속살이 놀라 알러지처럼 반응하는 것이다.이제 알았다.내가 우는 이유를.
<니 글쓰기는 니 살 파먹기야.한꺼번에 너무 많이 파내면 네가 아프다.>
요즘의 내 책 읽기가 내 속살 파먹기인 걸 안다.내 살을 파야 내가 산다는 모순된 사실.......
< 지워진 문장들 속에 그녀가 서있다.>
가슴이 뜨끔해졌다.이 글을 몇 번이나 쳤다가 지웠다가 했다.그래.지워진 문장 속에 누군가가 있다.......누군가....
<그래..............꿈이었는 지도 몰라.......내 마음이 우기면 손이 비웃는다.손이 기억했다.열쇠통을 잠글 때의 감각이며 문이 잠기며 냈던 딸깍, 소리들은.나는 손을 내려다 본다.그리고선 중얼거린다.네가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야.절대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자들의 고독은 그 스며듦이 끝났을 때 시작되는 거겠지.스스로 거슬러올라 가장 어려웠던 처음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고독.>
침대에 누워 오빠에게 파고든다.나에게 오빠는 구원의 서광이다.오빠에게로만 통로가 나있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오빠로 통한다.다른 길들은 이제 사라져버렸다.그의 품에 안겨 묻는다.그가 나에게 구원이라면 그에게 나는 무엇이냐고.오빠가 놀린다.차라리 여상이나 나온 여자랑 결혼할껄 그랬어.그랬으면 단순했을 텐데.왜그리 생각이 복잡하냐고.훗.직업 훈련원을 나오고 공장을 다니며 야간 여고를 나와서 고뇌하며 이 책을 썼을 신경숙.그녀가 들었으면 기절할 이야기다.
<당신 가족이 여기,그것도 남쪽에서 땅과 함께 있고,내 가족이 머나먼 중국땅에서 언제나 유랑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 만큼이나 당신과 나는 달라요.나는 중국에 있어도 조선족이고 여기에 있어도 흑룡강성에서 온 사람이지요.하지만 당신은 흑룡강성에 가도 여기에 있어도 온전한 한국인이지요.그래서 당신은 어디엘 가도 어울릴 거에요.>
어디엘 가도 어울릴 거라는 온전한 한국인으로 미국서 살기가 왜 흑룡강성에서 살기보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는지...흑룡강성이라는 마치 천체의 어느 별을 느끼게 하는 머나먼 이름대신에 그 흔하디 흔한 미국에서 살기가 왜 어려운지...
나, 외딴방을 벗어나 집으로 과연 갈 수 있을까.........쇠스랑을 퍼올려야한다.......내 우물의 쇠스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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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글은 신경숙의 외딴방에서 그대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