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회고록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 강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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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조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지성계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아울러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한 학자임이 분명하다. 이후 등장한 푸코, 데리다, 라캉, 바르트 등 구조주의의 효시로 알려진 레비스트로스는 정작 구조주의라고 통칭되는 사상의 흐름에 자신이 계보학적 선구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지는 일에 대해서 대단히 불쾌한 감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야콥슨, 방브니스트와 같은 언어학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구조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도 레비스트로스와 이후 일군의 사상가들 사이의 친연성이 별반 없어 보인다. 일평생을 친족과 신화 연구에 바친 이 유태계 민족학자의 사상에 다가가기란 무척 낯선 일이다. 우리에게는 구조주의 사상의 근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교재로, 아니면 문화상대주의의 교리를 재확인하는 교재로서만 그는 존재한다.

그의 주저 <슬픈 열대>는 과학적 체계를 가진 글이 아니다. 그런 탓에 이 책은 학문의 과학성에서 멀찍이 벗어난 기행문쯤으로 소개되고 읽힌다. 그러나 책장을 펴 들고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제목의 이국적 감수성과는 동떨어진 민족학적 언술 구조에 사람들은 가슴이 막히는 듯한 답답증을 느끼며 책장을 덮는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는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세밀한 기억력을 가진 한 학자의 학문적 인생과 사상을 대담이라는 엿듣기 형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대담집이라는 형식은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서구에서는 흔한 출판 형식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낯설고 그만큼 매력적인 출판 형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이런 형식의 책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뭔가를 술회하고 종합할 가치가 있는 학문적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 탓은 아닐까. 그만큼 우리의 학문 역사는 짧고 학자 개인의 이력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교수도 정년을 마치면 학문 인생을 접고 유유자적한 노후를 즐기는 것을 일종의 멋으로 여기는 풍토는 학문이 단순한 직업 이상의 열정으로 확대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 아닐까.

그런 풍토에서 바라본 레비스트로스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책을 쓰며 학문적 인생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학문적 성과나 개인적 이념이나 사상과 무관하게 이처럼 거대한 지적 열정을 발휘하며 한 나라의 학문 풍토를 조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적 측면에서 볼 때 방법과 사상을 엄밀히 구분하며 마르크스를 읽은 처세술 밝은 인간이었고, 어떻게 보면 학자로서는 지나치게 생활력이 강하고 변화에 무딘 인간이었으나,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제외하고 순수한 학자로서 그를 바라볼 때 그는 감히 그 누구도 그 경지를 넘보지 못할 순수한 지적 열정을 가진 프로메테우스적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대담집은 난해한 사상가의 지적 사유 과정을 대담이라는 대중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간혹 신문 지문에 저명한 학자와의 대담이 실리는 경우가 있으나, 신문 지면이라는 제약 때문에 단순한 질문과 압축적인 답변이 오가기 마련이다. 비록 신문과 비교할 것이 못되지만 이 대담집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타의 대담집 이상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훌륭한 대담의 비결은 진행자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진행자가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대담이 성공할 리는 없다. 이 대담의 진행자 에리봉 디디에는 치밀한 준비를 통해 잊혀진 기억들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대담자의 입장에서는 불리한 사실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떠받들기 위한 대담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대담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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