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근대성과 순간의 시학 - 김수영.김종삼 시의 시간의식
남진우 지음 / 소명출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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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삼는 이들, 특히 그 중에서도 학문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있어 창작과 비평을 아우르는 일은 일종의 끝없는 지향으로 존재한다. 비평을 통해서 좌절된 창작의 숨결을 들이미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일 텐데,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남진우는 문학이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이들 중에서는 가장 큰 행복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는 대중적으로 비평가로서, 그것도 <인물과 사상>을 둘러싼 논쟁의 일 당사자로서 많이 알려져 있고, 그것보다 더 드물 게 시인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가장 낯선 것은 학자로서의 남진우일 것이다.

그의 삶은 온통 문학적 후광을 업은 책읽기로 둘러싸여 있다. 그가 자신의 주체를 세우고 반성할 때 항상 책에서 펼쳐진 상상과 사유가 가로놓여 있다고 할 때 그는 김수영적 책읽기, 김현적 책읽기의 가장 최근의 계승자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 쓰기를 통해 절대적 현존을 꿈꾼다는 측면에서 그는 가장 순수한 미학주의자로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현존을 가득 채우는 책과 시로서 모더니즘적 현존을 꿈꾸었던 김수영과 김종삼을 그의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일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그의 어느 평론집 제목은 김종삼의 시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195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김수영, 김종삼은 그 당시 활동한 그 어느 시인보다 학문연구자들에 의해 조명된 시인들이다. 남진우는 이들 두 시인의 시간의식을 거멀못으로 하여 우회적으로 자신의 존재론적 해명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상상적 도정이나 귀향적 도정이니 하니 다소 비평적 수사를 동원하여 그 두 시인의 시세계를 탐구하고 있는 이 책은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현재의 연구 분위기를 타지 않는, 아마 저 10여 년 전 어간의 지점에 놓여 있다. 시간의식이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축 사이의 관계 설정이고, 이런 틀은 그 어느 시인을 가져다 대도 좋을 정도의, 이미 방법론적 측면의 긴장감은 사라진 것에 속한다.

이처럼 방법론적 진부성을 상쇄시키면서 이 책의 가치나 득의의 영역을 열어놓는 것은 그동안의 비평 작업을 통해 길어 올린 선명한 수사적 문체가 건져내는 비평적 날카로움 혹은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시 연구가 대체로 방법론적인 모색에 치중한 나머지 세부 비평에 등한시함으로써, 방법론에 작품을 맞추고 있다는 재단의 혐의를 종종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달리, 남진우의 글은 오히려 세부 비평의 재치에 상당수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비평적 관심, 창작적 관심을 부정할 수 없고, 오히려 그런 차원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학문적 관심의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물론 남진우가 앞으로 어떤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나아갈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의 비평적 감수성이 학문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적정선을 유지하며 양쪽의 긴장감과 노력을 유지하는 일의 어려움은 그의 문학적 행보에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유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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