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 여자들에 대한 글쓰기
캐롤린 하일브런 지음, 김희정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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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자에게 결혼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이자 종착역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예전에 비해 결혼의 가치는 상대적인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 결혼은 중요한 관심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일 결혼이 우리 사회에서 다루어지는 방식은 파편적이다.

결혼을 가장 큰 테마로 다루는 tv 드라마에서는 남녀의 결혼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고 그 목표가 달성되면 하나의 신화를 시청자에게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결혼을 통해 맺어지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사실은 은폐된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무참히 깨질 때 급속도로 무너진 남녀 관계는 행복한 프라임타임을 훌쩍 지난 밤 시간 인생의 공허감을 부추긴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결혼의 환상과 맞바꿔버린 여자에게 남는 건 절망이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은 그 절망적인 공허감을 넘어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제압하는 희망의 언어를 갖기를 꿈꾸었던 여성 작가들에 관한 책이다. 남자의 그늘에 가려 재능을 억압당하며 착취당해야 했던 클라라 슈만같은 이들의 얘기를 모를 사람은 없다. 그것은 역사가 통념과는 달리 사실성과 허구성이 교묘하게 조합되는 하나의 픽션일지도 모른다는 역사 음모론의 실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역사가 엄연히 진실로 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가부장들의 이야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지배한 남자들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여자들을 추동한 것은 명예욕보다는 절실한 생존에 대한 갈망이었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이라는 제목은 번역할 때 새로 붙인 이름인데,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 당대에 만약 그의 누이 주디스가 똑같은 재능을 타고났다면 그녀는 미쳐 죽었을 것이라고 한 유명한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여성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우리에겐 훌륭한 참고가 될 것같다.

우리 문학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쓰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 작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간혹 자기 성에 갇힌 글쓰기를 하는 여성작가들도 있는데, 그만의 절실함이야 있겠지만 성에 갇힌 글쓰기는 타자를 수용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래서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훌륭한 글쓰기란 아마 남과 여라는 귀속된 성을 뛰어 넘어선 영역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귀속된 성을 넘어선 또 다른 성에 갇히는 건 더욱 보기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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