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김성곤.정정호 옮김 / 창 / 199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전공이 비교문학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비교문학은 경계선상의 학문이다. 자국의 문학을 기반으로 타국의 문학과의 영향 관계를 탐색하는 것이 비교문학의 기본과제인데, 그러므로 비교문학은 끊임없이 자국 문학과 타국 문학의 접변 지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문화와 제국주의>는 미국인 비교문학자로서 사이드가 제국의 형성기 영국, 프랑스 소설을 매개로 하여 문학과 제국이 맺는 관계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시도한 저서이다. 그러나 사이드는 제국의 소설뿐만 아니라 이 제국의 식민지 출신의 다양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그만큼의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사이드는 제국주의와 더불어 탈식민주의의 내러티브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민족주의가 빠져드는 토착주의, 환원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민족의식이 성공한 이후 사회 의식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민족주의는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는 식민지 경험을 가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이드는 파농의 해방 이론이 그런 측면에서 훌륭한 본보기임을 말하고 있다. 파농은 최근 들어 다시 소개되고 있는데, 파농의 유효성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으로 그에게 팔레스타인도 미국도 엄밀한 의미에서 정체성의 확고한 근거가 아니다. 그의 이런 위치처럼 그는 일방적으로 중동이나 아랍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오도된 민족주의로 인해 시민사회가 소멸된 아랍 국가들에 대한 시선도 만만치 않게 비판적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다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순수하지 않으며 타자와의 교섭이 빚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은 사무엘 헌팅턴같은 문명충돌론과는 대조되는 입장이 분명하다.

비교문학은 지역 연구, 인류학 등처럼 제국주의 확장기에 제국 확장과 관리 차원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학문 분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태생의 조건일 뿐, 이들 학문 분과는 다층적이며 다면적인 세계 문화의 공존과 평화를 위해 가장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확히 이런 일이다.

마지막으로 번역본에 대해서 한 마디 6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역저를 내는 일은 끔찍하게 힘든 일이다. 번역이란 걸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그 고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역이라고 하기에는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번역 편차가 심한 편이다. 최종 감수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역서 후반부로 갈수록 오자, 탈자, 비문 등이 엄청나게 등장해서 한 문장의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수두룩하다. 영문학 전공자로 번역이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부실한 번역은 원저의 가치에 대한 훼손이자 독자에 대한 불친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개정판을 하루바삐 내서 오류를 말끔히 정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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