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영화사 (Film History) - An Introduction, 3rd Edition
Kristin Thompson.데이비드 보드웰 지음 / 지필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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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본이 되는 책을 원서로 읽기 시작한 건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것같다. 뭐든지 역사를 좋아하는 취향에다가 특히 영화에 대한 관심도 더해져서 가끔씩 특정 국가의 영화사라든지 아니면 거창하긴 하지만 세계영화사 읽기를 좋아 한다. 그래서 영어 공부도 겸해서 조금씩 읽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이번에 처음 보는 것같지 않아서 알라딘 구매리스트를 확인해봤더니 벌써 6년 전에 구매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래서 오늘 서재에서 찾아내 보니 아마도 끝까지 읽었던 것같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서로 읽었던 부분부터 번역본으로 이어서 보기 시작했다. 번역 수준을 가늠해보기 위해 그 접점 어간의 언어를 대조해보았는데 충실한 직역 중심의 시도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냥 번역본 자체만 봐도 그런 느낌은 강하다. 역자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고 팀명만 나온 걸로 봐서는 특정인이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 번역상 가장 큰 문제는 역자들(?)이 한국어 문장 구조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20쪽 <사진, 10.30>의 캡션은 아래의 같이 번역돼 있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여상속자가 기자가 히치하이크하는 솜씨를 보여주자 안심한다."

 

"여상속자가"라는 주어는 "안심한다"와 가급적 근접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즉, 아래와 같이.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기자가 히치하이크하는 솜씨를 보여주자 여상속자는 안심한다.""

 

이런 감각이 없는 것이다. 그런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로서는 자연스레 머리가 아프게 된다.

 

띄어쓰기나 인명의 불일치 등도 가끔 있지만, 한국어 문장 구조에 맞지 않는 어순이 이 책 번역의 인상을 가장 흐리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원서를 읽어본 느낌으로는 원본의 언어가 쉽고 명료한 문체로 쓰여져 있어 오히려 이해는 빠른 편이다. 다만 영어이기 때문에 시안성이 떨어져 속도가 안난다는 단점이 있을 뿐. 번역의 문제점을 감수하면서라도 독서 속도를 내고 싶다면 번역본에 의존해도 큰 오류는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세계영화사라고 하면 제프리 노웰 스미스의 책이 많이 읽힌 것같다. 나 역시 이 책을 봤지만, 비슷한 분량으로 비슷한 시점을 커버하는 두 책이 내용상 큰 차이를 보이는 것같지는 않다. 다만, 베테랑과 신진 학자의 차이 정도가 느껴진다. 물론 세계영화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 둘 중 어느 한 권을 배제할 필요는 없고 둘 다 읽어야 하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굳이 애착의 정도를 나누자면 보드웰의 이 영화사가 더 마음에 드는 게 사실이다.

 

과도한 비유나 겉멋 부린 듯한 현학적 문체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갓 어딘가 입문한 신참들의 현학적이기만 하고 무게감 없는 문체는 스스로 미성숙을 드러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많이 가셔질 때, 담백하고 무게감 있고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게 다가가는 문체가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세계영화사의 기본 얼개는 얼추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이 책이 커버하고 있는 시간대를 다르게 써낼 만한 세계영화사는 반세기 이내에는 나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별 4개인 건, 이런 평가가 원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역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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