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이 모이면
술 마시며 밤새도록 하던 얘기
되풀이해도 싫증이 나질 않는데
형들도 듣기만 했다는
먼 얘기도 아닌 바로 십여 년 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 어떤 곳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꽂았다고
거리에 비둘기 날고 노래가 날고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그건 정말 멋진 얘기야

 

그러나 지금은 지난 얘기일 뿐이라고
지금은 달라 될수가 없다고
왜 지금은 왜 지금은 난 보고싶은데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작사, 곡 전인권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135424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너무 더워서. 마음이 좀 시원해지는 노래가 없을까 혼자 막 생각했는데, 기껏 떠오르는 게 '코나' 정도. 근데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고, '비단구두' 때문에 간직하고 있던 cd 하나는 어느 궁한 날 팔아먹어버린 것 같다. 이 노래가 이렇게 대타마냥 등장할 노래는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은근히 시원할 수도 있겠다 싶다.  

 '1979-1987 추억 들국화', 시대도 말도 너무 아름다운. 전인권과 허성욱이 20년 전에 세상에 내놓았던 음반. 버릴 게 없다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 같다. 노래들뿐 아니라 심지어 다정하고 진지하게 '머리에 꽃을' 꽂아주는 허성욱과 전인권의 모습은 잠시나마 더위도 잊게 해준다.  

 

 

 이제는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어렸을 적 기억에서 '머리에 꽃을'과 가장 어울리는 조합은 단연 '미친 년'이었다. 뭔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베스트셀러 극장'을 열심히 보던 시절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화당리, 솟례' 이후 머리에 꽃을 꽂은 슬픈 미친 년의 이미지가 마음에 콱 박혀버렸다.(좀 자주 박히는 편이다;;) 실은 멀끔한 김주승에 반해서 가끔 해주던 재방송까지 열심히 봤던 것 같은데. 머리에 꽃을 꽂은 미친 년 솟례가, 서울에서 내려온 김주승의 환심을 얻으려 시골장에서 캉캉춤을 추던 장면 그리고 제 연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한 발 한 발 물 속으로 걸음을 내딛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기억 난다. 솟례가 걸어들어가 잠긴 물 위로 머리에 꽂았던 꽃잎이 둥둥 떠있었던가, 아니던가. 

 마침 그 때는 시골이 아니라도 동네마다 '미친 년' 하나쯤은 있었던 정겨운 시절이었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달고 사는 정신 질환이니 하는 둥의 세련된 인식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미침'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각박한 손가락질을 받거나 차가운 외면을 받는 이유로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솟례가 주효하기는 했지만, 어린 내 맘에도 '미친 사람'은 그저 좀 많이 여리고 많이 아픈, 조금은 무섭지만 어쩐지 슬픈 사람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전인권 허성욱. 알다시피 97년에 캐나다인가 어디에서 허성욱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새벽 심야 방송을 듣다가 무슨 사연 소개하듯 담담히 그의 죽음을 전하는 dj의 목소리에 나는 아연했지만, 남다른 감회를 털어놓기에 나는 그저 노래를 들었던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전설 들국화 추억 들국화 혹은 추한 들국화가 되기도 했던 그 들국화가 허성욱의 죽음으로 잠시나마 다시 뭉쳤다. 

 98년 초여름의 kbs홀, 위용당당한 방송국 건물에서의 재결합 공연은, 다시 뭉친다한들 이미 예전과 같을 수 없는 당연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던 것 같다. 공연 중간, 무대 위 허성욱을 위해 마련한 제단에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헌화를 했고... 아마 '축복합니다'가 연주됐던 것 같다. 마치 굉장히 사랑하던 친구를 보내는 듯 눈물이 났었다. 실은 포스트들국화 세대인 내가 굳이 허성욱은 죽었고 최구희가 없잖아 라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좀 웃기고, 전인권과 최성원에 대해 뭐라 말할 것도 없지만... 

 이후 학전에서 열렸던 '안녕하세요, 들국화'가 그렇게 안녕하지는 않았던 것처럼(나만 그랬나?) 계기가 무엇이건 역시 억지 만남은 아름답기 힘든 모양이다. 인생도 음악도 늘 아름다울 수 없는 걸 테고, 그렇다면 이 정도 남겨준 걸로도 '들국화'는 할 바를 다 한 게 아닐까 싶기도. 사랑했으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쩔 것이며, 카지노를 끊었으면 어떻고 아니라면 또 어쩔 것인가..;; 한편으론 너무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전설로 각인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다른 한편으론 ...... 이 때만 해도 저 슬림함과 풋풋함! 뭐, 그의 탓만은 아니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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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4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8-0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참말로... 노래 한 곡에 이렇게나 유구무언으로 만드는 댓글을..;;;;
오늘 아저씨 공연에서 준비없이 심장을 가격당한 터라, 지금 제가 살짝 제 정신이 아니랍니다. 아, 감동만빵 은혜의도가니...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