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직 펴내지 않은 책을 두고 그 내용보다는 오도된 반응에 먼저 마음을 써야 하는 경우를 이번에 겪었다. 연재라는 발표 양식과 선동적인 매스컴의 속성 덕분일 줄 안다.

   원래 이 작품을 구상한 의도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니는 데 있었다. 그런데 연재 첫회부터 반 페미니즘 작품으로 낙인찍혀 그 방면의 논객들로부터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 특히 지금은 페미니즘 문학의 선봉처럼 오해되고 있으나 실은 한 일탈이나 왜곡에 지나지 않는 이들과 내가 나란히 논의되는 것은 거의 욕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작품의 각 앞머리에는 틀림없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만한 구절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선입견 없이 읽어보면 거기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저속하게 이해되고 천박하게 추구되는 페미니즘을 알게 될 것이다. 편의주의나 개인적인 약점의 책임전게 내걸고 있는 그 깃발을 나는 비판했을 뿐이다.

  내가 보기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오랫동안 이 세상이 남성을 위주로 편성되어 있었다는 것마능로도 반페미니즘의 노릴는 시대 착오적인 구호로 몰려 마땅하다.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지나쳤을 때뿐이다. 한쪽으로 가는 배를 바로 세우는 길은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지 모든 짐을 다른 족으로 옮기는 데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첫회 발표 때부터 반페미니즘적인 것으로 몰아간 것은 시비 붙이기를 좋아하는 대중매체의 선동과 뭔가 요란한 일에 편승하기를 좋아하는 얼치기 논객들의 합작이다. 하지만 정작 작로서 내가 고민해야 할 일은 그런 과장되고 쓸데없이 격앙된 논의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련된 현대 소설의 표현 양식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얘기해야 하는 점과 요즘 사람들의 근거 없는 반의고적 경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불리하기 짝이 없는 얘기 방식이란 사건의 전개를 축으로 얘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과 배경과 분위기를 통해 사건의 전개를 추상케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얘기 방식을 말한다. 사건 서술은 한줌도 되지 않고 현대 소설론의 관점에서 보면 부차적 요소만 장황한 그런 얘기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근심스럽다.

   요즘 사람들의 반의고적 경향, 특히 양반 문화에 대한 적의에 대해 그 근거 없고 비둘어짐을 따지자면 따로이 책 한권이 필요할 정도다. 그것은 이나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는 일이 되고 나아가서는 자기 정체성의 부인이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을 돌파해야 할 주제를 다루는 게 어찌 작가에게 주저스럽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이 작품의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 정부인 장씨가 내게 직계 조상이 된다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자칙하면 타성들에게는 집안 자랑, 양반 자랑으로 오해받고 문중 사람들에게는 불경의 죄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ㅏㄷ.

   하지만 책을 펴내는 지금 가장 두렵고 걱정되는 일은 또 졸속과 불성실로 원고를 마감하는 일이다. 갈수록 큰 것과 작은 것, 급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별하지 못해 공연히 몸만 바쁘고 이룸은 적으니 절로 한탄이 난다. 다만 종아리를 걷고 꾸짖음과 가르침의 매를 기다릴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보보스족은 겉으로 볼 때는 부르주아 같은 삶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겉치레를 중시하는 부르주아와는 확연히 다르다. 패션은 고급이지만 브랜드가 경박하게 드러나서는 안되고 화려한 외관의 미보다는 내적인 질을 더 중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식생활에 있어 확연히 구분된다.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거나 걸쭉한 프랑스 정통 코스요리 대신 그 어떤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인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도심의 공해와 현대인의 바쁜 생활로부터 벗어나 몸의 평화를 추구하고 패스트푸드보다는 유기농 야채와 곡식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건강식을 섭취한다. 또 몇 만원짜리의 값비싼 레스토랑 식사 대신 가볍게 생식을 즐기고 그 값으로는 향긋한 스파 마사지나 발 마사지를 즐기는 것이다. 매일 저녁 이어졌던 술자리 모임을 피하고 퇴근 후 곧바로 헬스 클럽을 찾거나 요가 센터를 찾아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버리는 것 또한 웰빙의 일환이다. 짭짤한 야근 수당이나 상사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인 휴일 근무에 대해선 털끝만치의 미련도 없는 웰빙족은 주말이면 자신에 대한 봉사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문화 행사를 즐겨 찾는 것은 물론 다양한 레포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근교로 떠나는 주말 여행을 시도한다. 신문 하단에 가득 실린 패키지 투어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휴가 때면 남들과는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동남아로 스파 여행을 떠나 화려하고 세련된 리조트에서 맘껏 휴식을 즐기거나 유럽의 낡은 농가를 빌려 목가적인 나날을 즐기고 돌아오는 것, 휴가를 위해 몇 달치의 월급을 몽땅 털어넣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의 행복이다. 바쁜 시간에도 틈틈이 아로마테라피를 즐기는 것도 웰빙족의 습관. 업무에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아로마 스틱을 꺼내 향을 맡는다거나 숙면을 돕기 위한 라벤더 오일, 아침의 피곤함을 날리기 위한 로즈메리 향 같은 아로마테라피는 그들의 필수적인 생활 소품이다. 목욕을 할 때도 은은한 향초를 켜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 커피 대신 솔내음 가득한 차를 마시는 것은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피로를 없애기 위한 그들의 방법이다. 운동에 열심이지만 시간이 부족한 그들을 위해 시내 헬스 클럽들은 24시간 운영 체제를 갖추었고 사무실 주변에는 유기농 식재료만을 사용한 레스토랑이 성행한다. 또 심신의 안정을 위한 운동으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요가 센터는 이제 더 이상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커리어 우먼을 위한 스파도 빼놓을 수 없다. 점심 때와 퇴근 후를 이용해 간단히 받을 수 있는 스파나 마사지는 남성들에게도 낯설지 않은곳으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또 커피숍 대신 다양한 차(茶)를 구비하고 있는 차전문점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유행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압구정동이나 청담동뿐 아니라 샐러리맨들의 중심지로 알려진 여의도, 광화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모습들은 웰빙이 이제 우리의 생활 근처에 다가온 또 하나의 문화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활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만들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흠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원래 멘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기원전 1200년 고대 그리스 이타이타의 왕이던

오대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면서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믿을만한 친구인 멘터에게 맡긴다.

멘터는 오디세우스가 전장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년 동안

왕자의 친구, 선생, 아버지로, 인생의 상담자로

왕자를 돌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왕자는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해 있게 된다.

이 때부터 멘터는 지혜와 신뢰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이쓸어주는

지도자로 쓰이게 되었다.

멘터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믿고 따르며 본받을 만한 인물인 것이다.

 

나에게 멘터란 누구인가?

혼란만 있을 뿐이다.

이런 내가 내 아이들의, 학생들의

멘터로 선다는 것은 아직도 먼 길이다.

이 말로 기억하고 산다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멘터로 서는 길일 것이다.

장병혜 박사의 책은 참 읽을 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