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펴내지 않은 책을 두고 그 내용보다는 오도된 반응에 먼저 마음을 써야 하는 경우를 이번에 겪었다. 연재라는 발표 양식과 선동적인 매스컴의 속성 덕분일 줄 안다.

   원래 이 작품을 구상한 의도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니는 데 있었다. 그런데 연재 첫회부터 반 페미니즘 작품으로 낙인찍혀 그 방면의 논객들로부터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 특히 지금은 페미니즘 문학의 선봉처럼 오해되고 있으나 실은 한 일탈이나 왜곡에 지나지 않는 이들과 내가 나란히 논의되는 것은 거의 욕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작품의 각 앞머리에는 틀림없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만한 구절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선입견 없이 읽어보면 거기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저속하게 이해되고 천박하게 추구되는 페미니즘을 알게 될 것이다. 편의주의나 개인적인 약점의 책임전게 내걸고 있는 그 깃발을 나는 비판했을 뿐이다.

  내가 보기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오랫동안 이 세상이 남성을 위주로 편성되어 있었다는 것마능로도 반페미니즘의 노릴는 시대 착오적인 구호로 몰려 마땅하다.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지나쳤을 때뿐이다. 한쪽으로 가는 배를 바로 세우는 길은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지 모든 짐을 다른 족으로 옮기는 데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첫회 발표 때부터 반페미니즘적인 것으로 몰아간 것은 시비 붙이기를 좋아하는 대중매체의 선동과 뭔가 요란한 일에 편승하기를 좋아하는 얼치기 논객들의 합작이다. 하지만 정작 작로서 내가 고민해야 할 일은 그런 과장되고 쓸데없이 격앙된 논의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련된 현대 소설의 표현 양식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얘기해야 하는 점과 요즘 사람들의 근거 없는 반의고적 경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불리하기 짝이 없는 얘기 방식이란 사건의 전개를 축으로 얘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과 배경과 분위기를 통해 사건의 전개를 추상케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얘기 방식을 말한다. 사건 서술은 한줌도 되지 않고 현대 소설론의 관점에서 보면 부차적 요소만 장황한 그런 얘기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근심스럽다.

   요즘 사람들의 반의고적 경향, 특히 양반 문화에 대한 적의에 대해 그 근거 없고 비둘어짐을 따지자면 따로이 책 한권이 필요할 정도다. 그것은 이나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는 일이 되고 나아가서는 자기 정체성의 부인이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을 돌파해야 할 주제를 다루는 게 어찌 작가에게 주저스럽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이 작품의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 정부인 장씨가 내게 직계 조상이 된다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자칙하면 타성들에게는 집안 자랑, 양반 자랑으로 오해받고 문중 사람들에게는 불경의 죄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ㅏㄷ.

   하지만 책을 펴내는 지금 가장 두렵고 걱정되는 일은 또 졸속과 불성실로 원고를 마감하는 일이다. 갈수록 큰 것과 작은 것, 급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별하지 못해 공연히 몸만 바쁘고 이룸은 적으니 절로 한탄이 난다. 다만 종아리를 걷고 꾸짖음과 가르침의 매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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