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5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근삼 옮김 / 빛소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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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빛소굴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빛소굴 출판사 세계문학전집의 다섯 번째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미소년 ‘도리언 그레이’, 그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바질 홀워드’, 그리고 도리언에게 아름다움과 젊음의 가치를 설파하며 자신의 사상을 주입하는 ‘헨리 워튼’입니다.

소설은 정원의 꽃 향기가 가득한 바질의 화실에 헨리 경이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이젤에 놓인 도리언의 초상화를 최고의 걸작이라 칭찬하던 헨리 경은 마침내 그림의 모델인 도리언을 만나고, 바질이 그를 숭배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아! 젊음을 지니고 있는 동안에 당신의 청춘을 자각하세요. 당신의 황금시대를 낭비하지 말고요.” (p.42)

예술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느끼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유미주의의 대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도 초상화에 소원을 빌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바랄지 생각했습니다.

도리언처럼 세상을 놀라게 할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같은 소원은 꿈꾸지 않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영원한 젊음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주관이 확실하지 않은 젊은 시절, 나를 끝없이 추앙하는 바질과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헨리 경을 만났다면 나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도리언의 소원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로 얻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면, 아름다움 또한 인생을 망치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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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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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에 구입한 책을 이제야 읽었다.
5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표된 소설 세 편을 한데 묶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단숨에 읽었지만, 정작 책장을 덮고 나서는 읽은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루카스와 클라우스‘ 그리고 그들이 자아낸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한창이던 시절, 헝가리 국경 지역의 외할머니 집에 버려지듯 맡겨진 쌍둥이 형제는 인간의 세상이라고 부르기 힘든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할머니의 무관심과 학대, 그리고 잔혹한 전쟁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며 강인해지는 법을 익힌다.

누구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1부에서의 쌍둥이는 아이들이 경험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겪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마저 제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마치 잔혹한 전쟁 우화처럼 펼쳐지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들은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놓인 피폐하고 참담한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2와 3부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혼란과 마주하게 된다.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존재하지 않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 생각하게 한다.
비로소 드러난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이름조차 실존의 증거가 되지 못하고, 차라리 모든 참상이 누군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환상이기를 바라게 된다.

구분 없이 오직 ‘우리’로 존재하던 아이들이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고 마침내 국경을 넘는 순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과 단절된 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 놓이게 된 헝가리의 현대사가 겹쳐진다.
전 세계적 비극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서늘한 잔혹사로 바뀌는 순간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특히 아이들의 세상에서 전쟁의 폭력과 가정의 불행은 그 무게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잔혹한 생존방식이 담긴 1부가 거짓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다 모든 판이 뒤엎어지는 3부가 거짓일지 모른다 생각했고, 오랜 고민 끝에 1부와 2부 전체를 누군가의 환영으로 놓아 보기도 했다.
소설은 어느 쪽을 거짓으로 생각해도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전쟁이 주는 고난과 두려움만큼이나 가정의 불행도 아이들에게는 가혹하다.
오래전에 발표된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세 편의 소설이 만들어 내는 거짓말의 경계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결국 마음에 남은 것은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일보다 그 안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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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소기 - 듣지 말았어야 했다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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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북로드에서 진행한 가제본 서평단 우수 활동자로 선정되어 제공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출간 전 다른 독자들보다 먼저 읽는 건 큰 행운이라 할 것이다.
평소 일본의 토속적인 괴담을 접목한 작가의 호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데,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돼 책의 전반부를 먼저 읽게 됐다.

가제본은 작가의 주특기라고 할 만한 메타픽션 형식과 미쓰다 신조와 미마사키 슈조의 인연을 설명하는 ‘서장’이 빠진 채 ‘기록 [미마사카 만조의 노트]에서’의 일부만 담고 있었다.
하지만 뒷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에 본책 출간만 기다리게 되었고 신간을 구간으로 만드는 신공을 갖고 있는 나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 없어 <노조키메>를 이어 바로 읽기 시작했다.

나(미쓰다 신조)는 열성적인 애독자라는 편집자 미마사키 수조로부터 한 번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 그와 교류하기 시작한다.
이후 서로 괴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두삼회‘를 결성해 어울린다.
어느 날 미마사키에게서 대형 봉투를 받는데, 그 안에는 미마사키의 할아버지가 남긴 오래되고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소설은 미마사키의 할아버지가 스스로를 ‘엽기자‘라고 소개하며, 보고 들은 괴담이나 기담을 기록해 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부터 기록할 이야기는 어디에도 적어두지 않았음에서도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참석한 괴담 자리에서 한 여성의 경험담이 끝나고 초로의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자는 인적이 드문 온천으로 요양을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 이즈메‘에게 무인 산장에서 겪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온천에서 느낀 작은 괴이함에서 시작해 이즈메의 이야기로, 다시 산장에서 가져온 노트 속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낸다.

이야기가 겹겹이 쌓일수록 알 수 없는 공포도 함께 커져 가는 액자 구조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스스로 증식하는 듯한 공포를 만들어 낸다.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할아버지의 노트를 읽은 미마사키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주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노조키메>와 <미미소기>를 연달아 읽으며 작가가 걱정했던 일은 나에게 벌어지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창밖을 의식하고 작은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시선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리는 공포 중 어느 쪽이 더 두려운 지 고를 수 없을 만큼 두 소설 모두 편안한 잠을 방해할 정도로 오싹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놓지 못하고 오싹함을 느끼며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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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ㅣ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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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소설은 호러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이야기가 많은데, 특히 토속적인 괴담을 접목해 일본 문화 특유의 공포를 극대화하곤 한다.
이번에 읽은 <노조키메> 역시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메타픽션 형식으로,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부터가 실제 작가의 이야기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해 한층 흥미롭다.

소설은 작가가 간사이 지방에 머무르며 편집자로 일할 때 초등학교 교사인 ‘도쿠라 시게루‘에게 들은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와 재야의 민속 연구자인 ‘아이자와 소이치‘가 쓴 수기인 <종말 저택의 흉사>를 묶은 구성이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대신,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입은 경험과 50년 전의 이야기를 통해 그 앙화의 원인을 추리해 나간다.

산에 있는 나무 중 산신님이 깃든 나무를 ’노조키네‘라고 하는데, 그 나무를 베면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도 누군가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리다 보면, 극심한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놓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바로 ‘노조키메’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에 끊임없이 시달리다 결국 정신을 놓게 된다는 설정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얼마나 큰 공포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이 소설을 늦은 밤에 읽기 시작했는데, 중반으로 치달을수록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특히 아이자와 소이치가 마을에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시선과 장례 행렬과의 조우, 그리고 산길을 헤매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창밖을 의식하게 됐다.

소설은 모든 앙화는 자신들이 쌓은 업보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렬하게 남은 것은 읽는 내내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주는 희열과 뒤이어 기다리고 있는 <미미소기>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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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잡아라! ㅣ 웅진 우리그림책 163
박정섭 지음 / 웅진주니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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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웅진주니어 정기 서평단 자격으로 제공받았습니다.>

길쭉한 판형에 노랑과 검정이 강렬하게 대비되어 시선을 사로잡는 표지는 제목에 걸맞게 주의 깊게 관찰해 도둑을 잡아 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빨간 지붕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지령이 떨어지자 경찰차가 경광등을 반짝이며 출동합니다.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범인이 뚱뚱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미루 안경원 쪽으로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곧장 달려갑니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사라진 뒤입니다.
경찰은 또 다른 증언을 따라 뚱뚱하고 빨간 안경을 쓴 범인을 찾아 봉 치과 쪽으로 추격을 이어 갑니다.

그림책은 빨간 지붕 집에 든 도둑을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의 고군분투를 그립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라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한 단서가 하나씩 쌓이지만, 거리에는 범인과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경찰이 붙잡은 용의자들 가운데 진짜 도둑은 누구일까요?

도둑을 쫓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북적이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단서를 하나씩 맞춰 가며 범인의 정체를 좁혀 가다 보면 그림 속 인물들을 저절로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이 그림책의 재미는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책장을 넘기면 처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단서들이 눈에 들어오고, 거리의 사람들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듯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단순히 범인을 잡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이의 말을 귀 기울이고 그림 속에서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관찰력과 추리력을 자극합니다.
여러 번 볼수록 진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거리의 풍경도 새롭게 보이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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