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지음 / 읻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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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집을 구입하지만 끝까지 읽은 시집은 몇 안 된다.
특히나 요즘 출간되는 현대시의 난해함은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워 몇 편 읽고 그만 두는 게 다반사다.
그러니 한국 시 번역가를 인터뷰한 산문집이라는 설명을 읽고 한참을 망설여 고른 책이다.

인터뷰어인 “은유”작가도 초면이고 우리 시를 각국의 언어로 번역한 번역가들도 낯선 이름들이다.
우리 말로 번역된 외국시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나라 언어로 된 시를 읽어낼만한 능력이 없는 탓에 우리나라 시를 번역한 시를 읽은 일도 없다.
그러다보니 인터뷰에 응한 번역가들 중 ‘저주토끼’를 번역한 ‘안톤 허’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알게 된 번역가들이다.

한영 번역가 호영, 안톤 허, 소제, 알차나, 새벽, 한일 번역가인 승미, 한독 번역가인 박술을 르포 작가인 은유가 한 달에 한 번 서울 동네 책방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기록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단순한 묻고 답하기가 아니라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은유 작가의 소회를 적고 있다.

7인의 한국 시 번역가는 다른 계기로 시를 번역하는 길로 들어섰고 번역하는 과정은 각자에게 맞게 특화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시인의 시를 제대로 번역하기위해 지단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어 체계가 전혀 다른 언어를 번역한다는 일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휠씬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나에게 호영 번역가가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 준다.
"시는 이해에서 자유로워서 좋은 장르 같아요. 다 이해 못 해도 나중에 또 와서 읽으면 뭐가 보이겠지. 약간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냥 어떤 느낌을 가져가면 되는 것 같아요."(p36)

낯선 분야인 번역가, 그것도 우리 시를 번역하는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소개된 시 몇 편을 찾아 읽었다.
단순한 문장이 아닌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한 단어들을 보며 그들이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해진다.
끝내 읽지못할 그들의 번역된 시이지만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읻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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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이용약관
케이시 지음 / 플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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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이용약관을 꼼꼼히 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본다.
의도적인지 맨눈으로 보기 어려운 크기의 글자와 난해하고 복잡한 문장으로 쓰인 이용약관은 계약과 함께 따라 오는 문서이지만 자세히 본 적은 없다.
무려 <내 마음 이용약관>이라는 제목의 작은 에세이집을 꼼꼼히 읽어본다.

불공정한 지난 약관을 파기하고 새로운 이용약관을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작은 글씨의 약관을 읽지도 않고 동의했다.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지도 않았다.
나를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와의 접촉면을 늘리기. 즉, 내 시간을 늘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를 안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와 “너 한테 그런 면도 있었어?"의 그 면을 찾아야 했다.
(p12)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리해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요약해 준다.
느긋함과 더불어 이 정도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주고 나의 불안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작게 지금의 나에게 ”괜찮허용“이라는 말을 던져 준다.

소설에서는 매운 맛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작가지만 에세이만큼은 오바하지않아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글들로 가득하다.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의 책이라 곁에 두고 마음이 어지러울때 읽기에도 딱이다.

<케이시 작가님이 보내주신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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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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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Al가 소재인 6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소설은 AI가 실용화 되고도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한 시대를 그리고 있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한국전쟁 휴전 후 고전적인 방법으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로봇과 그 기술을 계량화하려는 로봇이 등장하는 #보편적인내엉덩이 속 AI는 인간과 공존하는 삶을 산다.
살아 생전 채팅 GPT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일하다 49일 연속 야근 중, 서른여덟 시간 무수면 갱신 중 사망한 ‘아샤누’는 채팅GPT 속으로 가게 되고 서버 안에서 인간의 질문에 답을 하는 존재가 신들이라는 설정의 이야기 #채팅GPT의신들 에 등장하는 신들이 펼치는 티키타카가 흥미롭다.

존엄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야기는 환자가 의식이 없자 존엄사가 시행되어야 할 순간에 입회 확인란에 AI 간병 로봇 구공일이 사인을 할 수 있는 지와 그 사인이 유효한 지의 논쟁으로 시작된다.
단순한 인공지능의 한계뿐 아니라 보호자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고령층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하는#비트겐슈타인의이름으로 는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간병 로봇 구공일이 카페 바리스타로 전직하여 30년을 일한 카페에 매화만신을 대신해 굿을 하러 온 로봇 구금산이 등장하는 #만물에앎에는참으로끝이없다 는 여전히 따듯한 마음을 갖고 있는 구공일이 반갑다.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표제작과 문윤성SF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이다.
아이를 키운 엄마나 지금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두 이야기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한밤중거실한복판에알렉산더스카스가드가나타난건에대하여 라는 긴 제목의 소설은 육아 중 엄마가 겪는 고립과 말이 통하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얼마나 크기 숨통을 트이게 하는지 증명해 준다.
표제작인 #오늘밤황새가당신을찾아갑니다 는 남편의 부재와 전담 육아를 해야하는 주인공의 고담함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엄마 작가의 이야기는 아이에 양육에 특화된 이야기를 재미나게 썼다.
나는 이미 지나온 길이지만 육아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 알기에 한밤중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나는 걸 반기고 황생영아송영 서비스는 물론 펭귄 서비스를 기대하는엄마의 마음이 이해된다.
한편으로 아무리 AI가 발달해 아이를 돌 볼 수 있어도 엄마라는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결론에 그냥 마음이 따듯해져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도서는 래빗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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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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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3부로 이루어졌다.
1부의 이야기는 열일곱, 열여섯 소년과 소녀인 ‘나’와 ‘너’가 고등학교 에세이 대회 시상식장에서 처음 만나 친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살았던 나와 너는 한달에 한 두번 정도 만나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
너는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그 도시에서 진짜 너와 만나는 상상을 한다.
나와 너의 사랑이 깊어가던 어느 날 실제 세계에서 너는 자취를 감추고 나는 너를 찾아 긴 시간을 보낸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독신으로 너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너와 이야기했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여전히 열여섯인 너를 만나게 된다.

2부는 그림자와 분리되어야만 하는 도시에서 나는 그림자만을 본래의 세상으로 보내게 되는 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도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오지의 도서관장으로 취직해 그 곳으로 거쳐를 옮기게 된다.
그 곳에서 전 도서관장과 옐로 서브마린 파커를 입은 신비한 소년을 만나게 되고 나는 그 곳에서 작은 카페의 여주인과 가까워진다.
3부는 다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속의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옐로 서브마린 파커를 소년과 만나게 되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을 한다.

하루키와의 인연은 #상실의시대 부터 시작했다.
결혼도 하고 꽤 나이가 들어서 처음 읽은 하루키의 소설은 퇴폐적이면서도 놀라웠고 지나가버린 청춘에 대한 그리움으로 작가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 그의 책을 읽었고 하루키의 팬이 되었다.
#기사단장죽이기 후 6년만의 신작 소식에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까지 읽어온 그의 장편소설은 알 수 없는 공간과 어린 소년과 소녀, 실종 등 비슷한 괘를 그리는 이야기들의 연속이라 어느 순간 식상해지기도 했고 더 이상 하루키의 이야기에 감흥이 없어 망설였다.
읽은 후의 소감은 그래도 읽기를 잘 했다다.
작가는 여전히 소년처럼 아름다운 글을 썼고 순수한 사랑을 꿈꾸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이루고 있는 세계의 진짜 모습을 찾아 헤메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키다운 글을 썼고 나는 하루키의 뻔함에 실망도 했다가 그의 건재함에 감명받기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어온 터라 더 이상 놀랍지않은 독자가 돼버린 나는 이 소설로 처음 하루키를 만나는 이들의 느낌이 궁금해진다.
7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은 느리게 구비져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멍함과 차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43년을 지나 완성한 그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며 나는 여전히 그의 글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기회에 구입해 두고 아직 읽기 않은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 나 읽어야 겠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ㅡ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도 모른다.
<작가의 후기 중>

부디 하루키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의 수가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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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 위픽
오한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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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을 비트코인에 보유하고 있던 우리 가족은 FTX가 파산하면서 우리 가족도 파산하고 만다.
아내 진진은 직장인 경주로 떠나고 나와 주동은 유치원때문에 서울에 남게 되면서 우리는 주말부부가 된다.
나도 일자리를 찾아 헤메지만 마음에 드는 일자리는 없고 진진은 취업 대신 주동이나 신경 써 달라고 한다.

지역지에 글을 쓰던 나는 스스로 눈먼 돈을 뿌리는 역할을 한다는 고용주에게 괴담 창작을 의뢰받게 되고 어느 날 500장의 사인을 해야할 일이 생기자 심부름꾼 소년,sb를 고용하게 된다.
sb는 그를 도와 괴담을 만들고 주동의 베이비시터가 되고 진진과도 가까워지며 나의 자리를 점점 잠식해 간다.

소설을 읽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들어가 작가의 저서 “산책하기 좋은 날”의 100자평에서 sb라는 닉네임을 찾아봤다.
그리고 정지돈 작가와 이상우 작가와 소설 속 ‘나’와의 친분이 궁금해졌다.
읽는 내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 고민하게 되지만 소설은 재미있다.

점점 자신의 자신의 자리를 잠식해 가는 sb를 보면서도 sb를 최저임금으로 부리는 달콤함을 버리지 못한다.
죽어라 일하는 ‘나’의 모습이 소설가라는 외피를 썼지만 우리 중 누구도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알량한 돈 몇 푼에 영혼을 팔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게 우리니 어찌 사는 게 맞는 지 고민하게 된다.

고백하건데 나는 오한기 작가의 소설을 2016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새해”로 먼저 만났지만 잊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단 한 편의 이야기’를 담은 위픽 시리즈의 최대 장점이 작품집에 속의 여러 명의 작가 중 한 명의 작가가 아니라 오롯이 한 작가의 작품에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임을 새삼 느꼈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찾아 읽을 것 같다.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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