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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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열린책들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노교수인 바움가트너는 논문을 쓰던 중 책을 가지러 거실로 내려갔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에 멈추어 선다.
세 시간 전 아침으로 먹을 달걀을 삶을 때 사용한 작은 알루미늄 냄비가 불을 끄지 않은 화구에 여전히 올려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맨손으로 냄비를 들어 올리다 손에 화상을 입는다.

거기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집안일을 해주던 플로레스 부인은 남편의 사고 때문에 못 온다는 연락이 오고 초보 검침원을 안내해 지하로 내려가다 계단에서 굴러 무릎을 다친다.
노교수는 연속적으로 불행한 일이 일어난 아침, 10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떠올리며 그녀를 회상한다.

아내가 죽고 난 뒤 그는 아내가 지금까지 써온 시를 모아 시집을 내 문단의 호응을 얻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죽음의 책임을 느끼며 아내를 그리워한다.
소설은 아내 애나의 이야기와 그녀가 남길 글, 그리고 유대인인 바움가트너의 부모 이야기, 그리고 애나가 남긴 시의 대한 논문을 쓰고 싶어 하는 비어트릭스 코언과의 교류를 담고 있다.

바움가트너는 여전히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사랑하지만 다른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문득 느끼는 ‘환지통’처럼 아내의 부재를 깨닫고 그녀의 글을 읽고 그녀를 한없이 그리워한다.

폴 오스터 생애 마지막 작품인 이 소설이 처음 읽은 작가의 소설이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가의 마지막 이야기는 소란스럽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일상과 과거의 회상을 담고 있어 읽는 내내 누군가의 삶을 되짚어 보는 기분을 들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만남과 그만큼의 이별을 겪지만 가끔은 잊어버린 체 살아가기도 하고 어느 날 문득 몹시 그리워하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작가는 어쩜 남겨진 이들에게 자신의 소설 속 바움가트너가 애나의 죽음을 겪고도 일상을 살아간 것처럼 씩씩하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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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로렌스! 안녕, 소피아! 웅진 세계그림책 275
도린 크로닌 지음, 브라이언 크로닌 그림, 제님 옮김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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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웅진주니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울타리 밖이 너무 넓고 소란스러워 언제나 집 가까이에서만 노는 아이 로렌스와 나무 아래는 너무 울퉁불퉁해 나무 사이를 오가면서만 노는 파랑새 소피아의 이야기입니다.
절대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둘은 어느 날 문득 생긴 소피아의 용기로 친구가 됩니다.

가장 기다란 나뭇가지를 따라 산책을 나간 소피아의 용기 덕분에 로렌스를 만나게 되지만 둘은 여전히 로렌스는 울타리 안에, 소피아는 나무 위에서 놀면서 우정을 키워갑니다.
어느 날 온 세상이 깜깜해지고 비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고 폭풍이 몰려오자 둘은 서로를 걱정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머물고 싶어 하지요.
로렌스와 소피아는 울타리 안과 나무 위를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놀지만 둘은 서로의 사정을 헤아릴 뿐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색감의 그림은 평화로운 로렌스와 소피아의 일상의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친함이 지나쳐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로렌스와 소피아는 서로가 생각하는 안전한 곳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폭풍이라는 위험이 닥치자 서로를 걱정하며 용기를 내 친구를 찾아갑니다.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낸 로렌스와 소피아지만 여전히 울타리 밖은 생각처럼 소란스럽고 나무 아래는 울퉁불퉁합니다.

다시 울타리 안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걸 택하지 않고 또 다른 용기를 내는 두 친구의 모습은 함께라면 힘이 세지는 우정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따로따로 울타리 안과 나무 위에서, 가끔은 손을 잡고 울타리 밖을 오가며 함께 할 두 친구의 우정에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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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눈이 내리다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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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래빗홀출판사의 래빗홀클럽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

2004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작가의 소설은 앤솔로지에 수록된 단편 한편을 읽은 게 전부라 초면이라 할만하다.
한국 SF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소설집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이자 로제타상 후보작인 <고래눈이 내리다>와 짝을 이룬 <귀신숲이 내리다>는 심해와 우주라는 전혀 다른 장소가 배경이지만 생태계 파괴와 지구 회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다른 존재들에게 인간이 어떤 악형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심해에 살고 있는 생물과 우주에 버려진 거대구라는 점이 흥미롭다.

“저 위의 주민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제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려나요? 흙 위를 뒤덮은 괴물들이 지금 다 사라지고 나면, 썩지 않는 것을 먹고 죽는 아이들도, 그런 것에 목이 감겨 살이 짓물려가며 죽는 아이들도 사라지려나요?“
(p22, 고래눈이 내리다)

실상 지구에 인간만 한 자연재해는 없다. 원전이 터져 방사능으로 뒤덮인 곳이나 태풍으로 초토화된 지역, 폭탄으로 유리질처럼 녹아내린 도시마저도, 사막처럼 황량해지는 대신 울창한 숲이 들어선다. 치사량의 방사능이든 맹독성 낙진이든, 그 어떤 재해도 인간만큼 파멸적이지 않다. 재해는 오히려 지상 최대의 재난인 인간이 떠나가게 하여 동식물의 낙원을 되돌리곤 한다.
(p226,귀신숲이 내리다)

소설가가 되기 전 게임 회사에서 시나리오 작가 겸 기획자로 활동한 이력 덕분인지 <저예산 프로젝트> 속 게임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증강현실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기다 엽편 소설인 <까마귀가 날아들다>는 우리가 실제 경험한 작년 12월의 사태가 다른 평행우주에게 다른 결과로 일어난 경우에 예상되는 일 같아 소설의 발표된 날짜를 찾아보며 작가의 선경지명에 놀라게 된다.

함께 읽은 출간 기념 무크지 속 인터뷰는 작가가 쓴 소설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거기다 에세이는 작가가 어린 시절 처음 읽은 책 소개는 물론 글 쓰기에 도움을 준 여러 가지 그림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에게 한층 가까워진 느낌을 갖게 된다.
바람이라면 sf작가가 요즘 읽고 도움을 받았거나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도 소개해 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해를 시작으로 게임의 증강현실 속, 테이터화 된 세계는 물론 우주까지 넓혀가며 진행되는 소설은 생태, 상실, 회복, 기술 문명 등 현대적 문제들을 다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낯설고도 경이로운 세계를 펼쳐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당장 일어난 일이 아닐 거라는 안도와 언젠가는 실제로 일어날 일이지도 모르는 불안을 안겨주는 주며 우리에게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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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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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비채출판사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

감독 이름이야 우리나라 배우들과도 함께 작업한 작품이 있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으로 익숙하지만 아쉽게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한편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좋아했던 배우가 등장한 영화에 대한 기록이라는 설명에 덥석 고른 책이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준비 과정은 물론 감독의 영화에 대한 담론을 엿볼 수 있다.
책은 <이렇게 비 오는 날에>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미완선의 각본이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2011년에서 2019년까지 8년의 기록이다.

영화 준비과정에서 감독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에 놀라기도 하며 배우 섭외를 위해 공을 들이는 과정과 인터뷰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선과 딸 역의 클레망틴의 첫 대면에서 아역 배우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일곱 살 된 아이는 하루 최대 네 시간만 촬영한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감독은 영화 제작하기 위해 배우들이 출연했던 영화를 수없이 보고 마음에 드는 촬영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배우는 자신의 기준으로 파리를 정의 내리고 성사될 듯하던 촬영지는 불발되기도 한다.
감독이 여러 스텝들을 이끌고 배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장면을 조율하며 영화를 제작해 나가는 모습은 흡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떠오르게 한다.

감독이 찍은 여러 장의 현장 스케치 사진과 직접 그린 스토리보드와 그날그날 찍은 영화 촬영 기록들은 촬영 현장의 생동감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거기다 이선 호크에게 보낸 정중한 편지는 배우를 대하는 진심 어린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감독은 우리나라 배우들과 <브로커>를 찍었고 송강호 배우는 그 영화로 칸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바람이 있다면 다음 에세이에는 <브로커>를 찍을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제대로 방출해 줬으면 하고 바라본다.

영화를 보지 않아 과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 걱정하며 책을 펼쳤는데 추억 속 찬란했던 배우들의 여전하고 꾸밈없는 모습과 쉽게 접할 수 없는 스토리보드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물론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궁금해지게 하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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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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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 (문지문학상 후보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됩니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문학을 가장 빠르게 소개하며 독자와 함께하겠습니다.>

봄에 구입한 책을 여름이 시작되면서 읽는다.
붉은 딸기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의 소설집은 젊은 작가의 소설 세 편이 실려 있다.

강보라 작가의 <바우어의 정원>은 이름이 알려진 배우 은화가 3년의 공백을 깨고 오디션을 보러 간 곳에서 예전에 막역한 사이였던 후배 정림을 만난 이야기다.
오디션이 끝나고 둘은 함께 은화의 차를 타고 이동하며 대화를 하게 되고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본다.

가장 시의적절한 소설은 아무래도 성해나 작가의 <스무드>가 아닌가 싶다.
전혀 한국을 모르는 한인 3세 미국인 듀이가 경험한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관한 이야기는 언어는 물론 한국 사회에 대해 이해가 전무한 듀이를 통해 전혀 다르게 보이는 ‘타이극기‘ 집회 참가자의 호의가 괜히 마음 아프고 슬프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현이 길가에 놓인 파란색 패브릭 소파를 발견하면서 진행되는 윤단 작가의 <남은 여름>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 같다.
친구의 죽음이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은 탓인 것 같아 괴로워하는 서현의 모습이 슬프다.

세 편의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라 공감하며 읽게 된다.
유산이라는 아픔을 겪은 주인공들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고 친구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 살아가라고 그래도 살아가라고 하고 싶다.

소설이 끝나고 심도 깊게 진행된 인터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문장 사이 채우기”에 대한 윤단 작가의 인터뷰는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그리고 그 사이 빈칸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소설 속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한동안 집중할 것 같다.
벌써부터 ‘여름’ 편 ‘소설 보다’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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