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이 그림책을 볼 나이를 훌쩍 지났지만 어린 시절 그림책 없이 자란 탓인지 지금도 그림책이 좋습니다.심오한 뜻을 담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좋지만 어린이 대상의 귀여운 그림책도 좋습니다.이번에 재미난 숨은 그림 찾기 책을 출간하신 이주희 작가님은 서로 닮은 곳 하나 없는 너와 내가 만나 보내는 하루하루를 그린 #안녕오리배 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신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글 자음 14개를 알려주는 그림책입니다.그림책을 펼쳐보면 앞면지에는 자음이 차례로 그려진 그림 사이에 노란 비옷을 입은 어이가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뒷면지에는 본문의 “찾아보세요!”의 정답이 있습니다.그림책은 한글의 자음을 익히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모음 수와 같은 14장의 그림에서 각각 7개의 숨은 그림을 찾아야 하니 그림책을 보다 보면 단어 98개를 알 수 있습니다.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숨은 그림을 찾으면서 한글을 알아가는 것이겠지만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닌 일반 그림책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구름 속에서 빗방울들이 쏴아아 쏟아져요.놀이터의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가 버렸어요.다른 친구들을 만나 볼까요?라랄랄라 다 같이 신나게 모험을 떠나요.”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은 비가 오자 모두 집으로 가버리고 혼자 남은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신나는 모험을 떠납니다.친구의 모험길에 함께 하는 것도 충분히 즐겁습니다.그림책이 정말 귀여워 주위에 막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한글을 아직 모르는 아이는 물론 글자를 잘 읽는 아이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어 집니다.글자를 익히기에도 좋고 집중해서 숨어있는 그림을 찾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 얼른 선물해 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에서 1년에 네 권씩 출간하는 시리즈로 올 초에 처음 알게 된 시리즈다.작년 2024년 여름호에는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된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과 우수상을 수상한 서장원 작가의 <리틀 프라이드>가 실려있다.두 편은 이미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통해 읽었고 함윤이 작가의 <천사들(가제)>는 처음 읽은 작품이다.<그 개와 혁명>과 <천사들(가제)> , 두 작품 모두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예소연 작가가 과거 운동권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의 모습을 슬프기보다는 유쾌하게 그렸다면 함윤이 작가는 장례식이 있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주인공이 망자와 함께 하는 꿈속 이야기가 중심이다.죽음은 끝이기에 슬프다.소설 속 주인공들은 큰 소리로 우는 것이 아닌 각자 다른 방법으로 죽은 이들을 애도한다.지인들에게 아버지의 유언을 전달하는 딸도 있고 빠른 교통편이 아닌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가며 친구를 기억하며 느리게 장례식장에 가는 주인공도 있다.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지는 각자에 몫이지만 만약 내가 떠나는 사람이라면 예소연 작가 방식으로 이별하고 싶다.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애썼던 부분을 아는 것도 재미있지만 미처 작가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읽어내 질문하는 인터뷰어의 질문도 재미있다.
오빠는 위층, 여동생은 아래층, 남매는 사이좋게 이층 침대를 나눠 쓰고 있습니다.그런데 동생은 자꾸만 오빠가 자는 이층이 탐이 납니다.동생이 어렵게 “나도 위층에서 자고 싶어.” 라고 말하자 “위층은 엄청 위험해. 너는 아직 안 돼.”라고 오빠는 단칼에 거절합니다.오빠는 왜 이층이 위험하다고 했을까요?쉽게 잠이 들지 않는 밤, 오빠와 동생은 이층 침대를 타고 환상의 모험을 떠납니다.유령 나라에 가서 유령을 놀라게 해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침대가 나무 위에 집이 되어 정글 속 동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매일 밤 남매의 이층 침대는 아이들을 모험의 나라로 데려다줍니다.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층 침대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그림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피는 것은 물론 위아래층에 누운 남매가 잠들기 전 나누는 대화를 다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모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집니다.아이들이 펼치는 무궁무진한 모험과 오빠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행복합니다.어른이 읽어도 아이들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발바닥이 간질거리는 데 아이들은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지네요.아마도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불깃을 꼭 쥐고 숨을 죽이고 쑥쑥 커지는 침대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질 것 같네요.소란스러워지기는 하겠지만 잠자리에 읽어주기에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고른 위픽 시리즈다.요즘 핫한 젊은 작가 중 한 분, 성해나라는 이름만 믿고 읽기 시작한다.건축학과 4학년인 재서는 의심이 많고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교수에게 “숙제”라는 평가를 받는다.반면 응용수학과에서 전과한 이본은 같은 교수에게 “귀감”이라는 말을 듣는다.그런 이본과 재서는 한 학기 수업 내내 등고선만 그리게 한다는 악명을 듣는 문교수의 서머스쿨에 참여하게 된다.경주 변두리의 이백 년 된 고택 개축을 위해 조사차 현장에 나간 둘은 서로 다른 성격 탓에 어울리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다.교수가 지시한 바를 따르려는 재서와 더 편리한 방법을 택하려는 이본은 의뢰인의 의견과 달리 ‘개축‘이 아닌 ’재건‘으로 의견을 모은다.그런 둘에게 문교수는 경주를 둘러볼 것을 제안하고 둘은 한여름의 경주를 샅샅이 살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된다.전혀 다른 성격의 같은 과 학생인 이본과 재서의 이야기는 재서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재서는 자신의 장점을 찾기보다 이본과 비교하며 자신의 약점에 몰두하며 힘들어한다.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도시 경주의 고택에 살면서도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녀와 고택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이본과 재서는 닮은 듯하다.어려움이 닥치자 고택에 살던 그들은 그동안 오해했던 주민들의 진심을 알게 되고 재서와 이본 역시 경주를 제대로 본 후 왜 고택을 개축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단점이었던 고택의 불편했던 점들이 어느 순간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달리 보이듯 조심성 많은 재서의 성격이 천천히 그려지는 등고선만큼 편안하게 느껴진다.천양지차 다른 성격의 이본과 재서가 마주 잡은 손을 쉬 놓지 않을 것 같아 기분 좋아진다.그나저나 여름날의 경주에 가보고 싶다.
<본 도서는 황금가지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받았습니다.>2001년 <13계단>으로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는 데뷔작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다.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과작의 작가인 그의 새로운 작품에 늘 목말라하던 차에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단편집을 출간한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13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정리 해고된 사와키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다니무라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퇴근 후 집으로 가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이상한 ‘발소리’를 듣는다는 다니무라는 사와키에게 그 발소리가 진짜 들리는지 확인을 부탁한다.표제작인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미야코가 괴한에 의해 살해당하자 경찰은 약혼자인 요네무라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뚜렷한 물증을 찾을 수 없다.고심 끝에 경찰은 사건 현장으로 요네무라를 데려가고 그곳에서 미야코의 유령과 마주치게 된다.’세 번째 남자’는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남자가 되는 꿈을 꾼 마리코가 자신의 전생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꿈속에 등장했던 사고 장소를 찾아간다.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가장 끔찍했던 ‘아마기 산장‘은 전쟁이 끝나고 13년이 지난 1958년 경이 배경인 소설이다.소설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미조로 박사가 전쟁 중 근무했던 부대가 생체 실험을 했던 731부대로 짐작되기에 그의 집념이 더더욱 공포스럽다.‘두 개의 총구’는 밀폐된 건물에 총격에 의한 무차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찾아들고 그곳에 혼자 있는 이시야마는 어떻게든 그를 피해 숨어야 한다.스스로를 ’제로’라고 이름 지은 남자는 자신에 대한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해변에서 깨어난다.모두 6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작가의 전작인 <건널목의 유령>에서 접했던 심령 서스펜스와 같은 종류의 소설 등과 sf 소설로 이루어졌다.표제작을 비롯한 네 편의 소설에는 유령 같은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게 한다.실제로도 범행 후 범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쫓기기도 하고 사건을 맡은 수사관의 꿈에 피해자가 등장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니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이해할 수 없는 심령 현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평범한 모습을 한 인간들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까닭에 읽는 내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가독성이 너무 좋아 후루룩 읽게 되지만 다 읽은 후 읽은 시간보다 더 오래 인간의 잔혹성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이 계절에 읽기에 딱 좋은 소재의 이야기라 많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