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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야!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3
버나 알디마 지음, 김서정 옮김, 다이앤 딜론 외 그림 / 보림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서아프리카이야기를 독특한 그림으로 표현한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래서인지 우리와는 동떨어진 대륙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의 옛이야기 역시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프리카 옛이야기를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쓰는 작업을 많이 했다는 버나 아데마의 글에 환상적이고도 독특한 느낌의 딜런 부부의 그림은 독자를 아프리카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사람들과 동물 탈을 쓰며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조를 이루는 그림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토끼 한 마리가 살았단다.
토끼는 해 질 무렵이면 늘 문간에 앉아서 누가 지나가는 지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 날 저녁에 집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집 안에서 “나는 길쭉이다. 나무도 통째로 먹어 치우고 코끼리도 밟아 뭉갤 수 있다. 썩 꺼져라! 안 그러면 너도 밟아 뭉개 버릴 테니까!”라는 걸걸한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지나가던 개구리는 그 모습을 보고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토끼는 코웃음을 “너같이 쪼끄만 게? 아도 못 하는 걸 네가 한다고? 날 뭘로 보는 거야. 저리 꺼져하며!” 무시해 버린다.
그 뒤로 자칼, 표범, 코끼리, 코뿔소가 차례로 등장하지만 제 힘만 과시하려다 오히려 토끼에게 피해만 잔뜩 입히고 만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의 한 종족인 마사이족은 원색의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부족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각광받는 마사이워킹 때문에 더 친숙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딜런 부부가 그린 마사이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사이족 사이에 앉아 익살스러운 연극 한편을 보고 난 기분이다.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그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막을 설치하는 걸로 시작되는 연극은 색다른 구경에 잔뜩 기대하고 있는 관객과 분주한 막 뒤 모습은 보여줘 독자 자신이 객석에 앉아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가면은 한 가지 표정에 멈추어있지만 딜런 부부의 가면은 동물의 특징은 물론 동물들이 겪는 상황과 숨기고 있는 속마음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또한 연극 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사건을 해결한 개구리의 표정은 우왕좌왕 다른 동물들의 행동에 따라 변하고 있어 더 큰 즐거움을 준다.
멀리 무심한 듯 한가로이 걷던 수사자가 어느새 연극에 폭 빠지는 모습이나 하나 둘 몰려드는 사자 가족들은 그림책을 소리 내 읽다보면 하나둘 모여드는 아이들의 모습과 흡사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거기다 ‘눗’ ‘끄삐두, 끄삐두, 끄삐두’ ‘즛트, 즛트, 즛트’ ‘끄빠다 끄빠다’, ‘라스 라스 라스’, ‘느기시’ 등 우리에게는 생소한 아프리카 토속어의 흉내 내는 말은 읽다보면 색다른 흥을 오르게 한다.
약하다고 무시했던 개구리가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꼭 힘만이 최고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어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즐거움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읽고 교훈 한 자락 얻기 바라는 어른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어 더 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