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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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병실에서 눈을 뜬 ’오기‘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정년이 보장된 대학의 나름 잘 나가는 교수인 오기는 사랑하는 아내와 떠난 여행 중 일어난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오기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장모뿐이다.
오기는 아내가 아름답게 가꾼 정원이 있는 타운 하우스의 집으로 돌아오고 장모는 집에 드나들던 이들을 한 명씩 내보내며 직접 간병에 나선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손뿐 말을 할 수도 없어 눈만 깜빡여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남자는 장모의 행동이 수상하기만 하다.
바깥의 모든 것과 차단시킨 장모는 아내가 떠난 후 폐허로 변한 정원에 큰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비밀을 간직한 듯한 남자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장모가 한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남자의 하루하루가 공포로 변하기 시작한다.
움직일 수 없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오기는 오롯이 장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설령 장모가 자신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소설은 전신마비 환자가 느끼는 공포와 무력감은 물론 오기가 누워있는 방의 냄새까지 읽는 내내 그대로 전해진다.
아내가 남긴 고발문을 읽었을 거라 짐작되는 장모에게 어떤 내용의 글인지 모르는 까닭에 변명할 수도 없는 남자와 딸을 잃은 고통에 광기마저 보이는 장모의 모습은 그 심정이 이해되기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남자 오기와 죽음보다 더한 남편의 배신에 괴로워했을 아내, 그리고 딸의 괴로움을 아는 순간 사고의 진실까지 의심했을 장모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되기에 삶이 지옥이 된다.
일상의 평안을 깨뜨리는 것은 어느 한순간의 실수로 시작되기에 더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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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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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래빗홀클럽 3월 도서로 래빗홀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살기를 원한다면 ’예‘,
원하지 않는다면 ’아니오‘에 체크하시오.”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로 넘어가는 순간 사람들 앞에 보통 고양이보다 훨씬 큰 거대한 고양이가 나타나 말없이 종이를 하나씩 건넨다.
‘예‘에 체크한 순간 사람들은 눈 깜짝한 사이에 고양이로 변한다.

소설은 고양이로 변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이 중심이 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가는 연작소설집이다.
표제작인 ‘고양이와 나‘의 퀴어 커플은 한 사람이 고양이가 되자 고양이가 된 상대의 부모에게 둘 사이를 인정받고 그토록 꿈꾸던 보호자로 지정된다.

‘유진군’은 고양이가 되고서야 태어날 때의 성별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게 된다.
출판사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책을 한 권도 출판하지 못한 ’이름 없는 출판사’의 사장은 책방을 하던 친구가 고양이가 돼 버리자 어쩔 수 없이 책방을 운영하게 된 번역가와 친해진다.

‘고양이가 된 나의 입장’은 책방을 운영하다 고양이가 된 전 책방 주인의 현재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고양이와 나’에 등장했던 인물은 출판사 사장의 청탁에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의 가장 압권은 전 세계 인구의 5%가량이 고양이가 된 세상을 믿게 해주는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능청스럽게 마지막까지 사람들이 고양이로 변한 소설 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함께 살던 이들이 고양이로 변했다고 해서 울고 불고 하지 않을뿐더러 왜 그들이 고양이 되기를 택했는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하던 상대가 고양이가 돼도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고 함께 하며 고양이가 된 상대를 더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고양이와 사람 사이의 사랑이 존재하는 데 사람과 사람의 사랑 중 이해 못 할 사랑이 뭐가 있을까 싶은 소설은 우리가 정의한 사랑이 얼마나 협소한가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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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그림동화 발도르프 그림책 15
그림 형제 지음, 한미경 엮음, 다니엘라 드레셔 그림 / 하늘퍼블리싱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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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하늘퍼블리싱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다니엘라 드레셔”가 그림을 그린 동화책은 “그림 형제”의 동화 중 동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묶어 <동물들의 그림동화>로 재탄생했습니다.
우리가 그림만으로도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있는 ‘장화신은 고양이’가 표지를 장식한 동화책에는 모두 11편의 동화가 실려 있습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못된 늑대가 엄마처럼 꾸미고 나타나 아기 염소들을 몽땅 잡아먹는 데 막내만 시계 속에 숨어 목숨을 구한 뒤 엄마와 힘을 합쳐 늑대에게서 형들을 구해낸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를 시작으로 “브레멘의 음악대”와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이 실렸습니다.
이 동화 역시 새로운 이야기가 훨씬 많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토끼와 고슴도치“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떠오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토끼 역시 잘난 척하며 ‘금화 한 닢과 술 한 병‘ 내기를 하지만 고슴도치의 꾀에 속아 목숨을 잃게 되는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매번 약속을 계속 지키지 않는 막내 왕자와 충직한 여우가 등장하는 ’황금 새’도 재미있습니다.

악인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언젠가 복을 받는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는 동화는 부모와 함께 읽기에도 아이 혼자 읽기에도 좋습니다.
“유아기의 아이들에게는 세성이 선하다는 것을, 학령기의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청소년기의 아이들에는 세상이 참되다는 것을 경험시켜 주라는 발도로프 교육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교육철학을 서정적인 그림과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실현하고자 하는 그림책“ 발도로프 시리즈 그림책 열다섯 번째 이야기는 친숙한 동물들이 등장해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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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그림동화 발도르프 그림책 14
그림 형제 지음, 한미경 엮음, 다니엘라 드레셔 그림 / 하늘퍼블리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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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하늘퍼블리싱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어린 시절 일찍 어두워지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한방에서 잤던 저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어서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는 말 따위는 귓등으로 들으며 이야기를 졸라댔습니다.
도깨비가 나오고 장화, 홍련이 나오고 효녀 심청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잠을 쫓아버리기 충분할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국민학교를 들어가 도서관에서 처음 본 명작동화 속 예쁜 공주님 이야기에 홀딱 빠져 밤이면 제가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손녀가 들려주는 신기한 나라의 공주, 왕자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셨고 마음씨 나쁜 새엄마의 등장에 혀를 차곤 하셨습니다.
우리는 못된 악당이 큰 벌을 받는 결말에 이르면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신비한 그림동화>는 독일의 언어 학자이자 동화 작가인 그림 형제가 각지의 전설과 민담을 수집해 편찬한 동화인 “그림 동화”에 실린 이야기 중 신비한 이야기를 고르고 고른 그림책입니다.
거기다 수년간 미술 치료실을 운영했던 그림책 작가 “다니엘라 드레셔”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은 그림책입니다.

부모에 의해 숲에 버려졌던 아이들이 과자집에 사는 못된 마녀를 만나지만 마녀를 물리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인 “헨젤과 그레텔”을 포함해 모두 9편의 신기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할머니를 도와주고 예쁜 공주와 결혼한 젊은 백작이 등장하는 “샘가의 거위치기“ 는 누군가를 도와주면 큰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줍니다.

수록된 동화는 대부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가 많아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 보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가 잠자리 책으로 읽어주기도 좋을뿐더러 적당한 글자 크기와 아름다운 그림은 글밥이 있는 책을 읽기 시작하는 어린이가 혼자 보기에도 부담 없을 것입니다.

그림 동화가 오랜 세월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선명한 권선징악과 아무리 하찮은 존재와의 약속도 꼭 지켜야 한다는 결말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백마디 말보다 더 효과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약속을 어기거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언젠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결말에 세상이 언제나 바른 길로 돌아갈 거라 믿으며 평안해졌던 것 같아요.
그림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착한 사람은 복을 많이 받는 결말이 현실에서도 통하는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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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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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다산북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1977년 제정된 이상문학상은 국내에 한 해 동안 발표된 모든 중.단편소설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을 선정해 표창함으로써 한국문학의 현재를 확인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올해로 48회를 맞은 이상문학상이 주최사가 다산북스로 바뀐 후 첫 번째 작품집을 출간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약 300여 편의 중.단편소설 중 30편이 본심에 진출해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이 대상을 수상했고 5편의 우수상 수상작을 선정했다.

영예의 대상작인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은 80년 대 운동권이던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후 치러지는 장례식의 단상을 그린 작품으로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장례식만은 유쾌하기를 바란 아버지의 바람이 담겨있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린 NL이니 PD를 논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페미니스트인 딸이 상주 역할을 하기 바라며 찾아올 문상객들에게 일일이 전할 말을 준비해 둔다.

김기태 작가의 ’일렉트릭 픽션’은 엘리베이터에 붙은 메모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로 소설의 화자가 ‘그‘에서 ’나’로 바뀌는 순간 현대인의 삶 속으로 오롯이 들어가게 된다.
문지혁 작가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작가가 잘 활용하는 오토픽션의 소설로 나와는 처음부터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받지만 그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소설 속 남자의 모습만이 아니기에 가슴이 뜨끔해진다.

서장원 작가의 ’리틀 라이프‘는 회사에서 성공한 사람이지만 사지연장술 수술을 한 남자의 모습을 보며 말로는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실제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정기현 작가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서울 외곽의 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아무나 쉬어 갈 수 있는 교회와 이유를 알 수 없는 낙서들과 골목길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 없어서 좋았던 이야기다.

최민우 작가의 ’구아나’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거 중인 남녀의 평온한 일상에 여자의 오빠가 등장하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결혼을 한 사이가 아닌 그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지켜나가는 방법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전셋집을 편리하게 바꾸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오랫동안 함께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미 발표된 소설이라는 데 부끄럽게도 나에게는 다 새로운 작품들이었다.
소설들은 48년의 긴 시간 한국문학의 정통성을 이어온 문학상 수상작답게 재미있는 건 물론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예소연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 꼭 슬플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구아나‘를 읽으며 동거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 역시 ‘우리를 위해’ 그것이 문고리든 서로의 마음이든 불편한 것을 고치는 데 있다는 정답을 얻었다.

이번 작품집은 예년의 작품집과는 다르게 작가의 대담이 실려있다.
소설은 독자가 읽고 느끼는 게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작가가 작품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소설가와 문학평론가의 심사평을 읽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새로운 주최사에서 시작한 이상문학상이 오래도록 독자들과 함께 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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