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의 보은 - 초등학생 그림책 6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달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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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읽을 책을 구입할 때는 내가 읽을 책보다 몇 배는 더 꼼꼼하게 따지는 편이다.
내가 보는 책이야 한 번 읽고 책꽂이 신세를 지게 돼도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덜 들지만 몇 번씩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책은 대충 샀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런데 그 신중함을 잠시 잊게 하는 작가들이 몇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이다.
이 작가를 처음 안 건 <주만지>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원작이 특이하게도 그림책이라는 데 신기해하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에 작가 특유의 세밀화로 그려진 그의 책들은 단번에 우리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의 이름은 하나의 믿음이 돼 버렸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특별한 교훈을 얻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와 즐거움을 최고로 생각하는 나에게 <크리스 반 알스버그>야 말로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꼽고 있다.

{내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때마다 전 "다음에 나올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적어도 제 다음 작품이 그 전 작품보다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그의 말처럼 나는 그의 새로운 작품에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우리나라에 번역되는 책은 그가  책을 출판한 순서와는 다르게 번역되었지만...)

"빗자루의 보은"도 역시 그다운 맛이 난다.
질감이 있는 종이에 갈색 톤의 석필로 그린 그림은 으스스하면서도 환상적이다.
"음..........마녀가 타고 다닌다는 빗자루는 언제까지 하늘을 날 수 있을 까? 영원히 날 수 없다면 날지 못하게 된 빗자루는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마지막의 멋진 반전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어느 날 비행 중 갑자기 힘을 잃은 마녀의 빗자루는 과수댁의 채마밭으로 떨어지게 된다.
피투성이가 된 마녀를 발견한 인정 많은 과수댁은 마녀를 돕게 되고, 몸을 추스른 마녀는 빗자루만을 남겨 놓고 떠나게 된다.
마녀가 두고 간 날지 못하는 빗자루는 혼자서 바닥을 쓸고, 장작을 패고, 물을 긷고, 닭 모이를 주고, 풀밭에 풀어놓은 소를 몰아오기도 한다.
거기다 간단한 피아노 연주까지 하는 재주를 선보인다.
이 신기한 빗자루는 이웃에 사는 스피베이 가족의 눈에 뛰게 되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일하는 빗자루를 요물로 생각하고 멀리 덜어진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빗자루의 존재를 알린다.
온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 눈엔 요망하게만 보이는 빗자루를 불에 태울 것을 과수댁에게 강요한다.
사람들을 막을 힘이 없는 과수댁은 어쩔 수 없이 빗자루를 화형(?)시키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빗자루 귀신이 마을을 어슬렁거리게 되자 온 마을은 공포에 휩싸이고 과수댁과 빗자루를 괴롭히던 이웃 스피베이씨는 마침내 멀리 떠나게 된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아도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화형까지 시키는 마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보는 존재에 대한 적대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처음 보는 것,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등 돌리는 습관이 있는 나도 분명 그렇게 혼자 비질을 하고, 스스로 일을 하고, 통탕거리며 피아노를 치는 빗자루가 있다면 두려워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심오한 교훈을 찾아내어 토론하기를 바라지 않는 다.
읽고 난 느낌을 길게 살을 부쳐가며 이야기하기를 주문하지도 않는 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의 숨은 뜻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걸 바라지 않는 다.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보며 마음껏 상상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밤중 마녀가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친구를 기다리는 모습에 오싹해하고, 보름달이 뜬 날 밤 허연 빗자루 귀신이 도끼를 들고 숲 속을 누빌 때 면 함께 공포에 떨던 아이들은 이 책을 덮으며 꿈을 꾸고 난 듯한 얼굴로 "재미있다"라고 짧게 말한다.
아이들이 말한 재미있다라는 표현보다 더 좋은 평이 있을까 싶다.
멋진 작가의 멋진 그림책을 만나 함께 읽으며 무지무지 행복해 했으니 만족 대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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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6-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만지>는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워요. 며칠 전에 <자수라>를 주문해서 오늘 받았답니다.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아두어야겠어요. ^^
 
반쪽이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9
이미애 글, 이억배 그림 / 보림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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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보통 엄마들처럼 우리 아이가 언제쯤 한글을 떼야하는지 그 시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다 때가 되면 읽는 다는 엄마들도 있었고 일찍 가르칠수록 좋다는 엄마들도 있었다.
다른 엄마들과 동물원에 갔는데 우리 아들과 같은 또래 아이가 표지판을 줄줄 읽어서 너무 충격을 받아 그 날로 당장 한글 공부를 시키려고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한글에 별 흥미도 없었고 싫어하기까지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이 있고 발달 시기가 다르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과 절대로, 절대로 비교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그림책 읽기였다.
글자를 모르고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다보니 그림을 보는 눈이 생기고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꾸미는 재주(?)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림만으로 작가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이억배 선생님의 책은 그림 속에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굉장히 좋아한다.
민화 풍에 화려한 그림이 눈에 쏙 들어오는 모양이다.
가끔은 글을 읽지 않고 그림만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제일 재미있어하는 책이 바로 '반쪽이'이다.
그림 속에 무한한 이야기가 있는 책이다.
표지부터 확 눈을 사로잡는 그림들은 익살스럽다.
면지 가득 그려진 지도를 보면 반쪽이가 사는 집, 무서운 호랑이들, 커다란 바위를 지나서 큰 나무와 솟대를 지나가면 부잣집 영감님의 집이 보인다.
면지 그림만으로도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이든 아주머니가 빌고 빌어 얻은 아들 삼 형제 중 막둥이만 반쪽으로 태어났는데 잉어를 반 마리 훔쳐먹은 고양이도 반쪽고양이를 낳은 모양이다.
항상 즐거운 표정의 반쪽이는 형들 과거 시험에 따라 나섰다가 여러 고초를 겪게 되고 마지막에는 밧줄에 꽁꽁 묶여 깊은 산 속에 던져지게 되는데 그때 나타난 호랑이들을 한 손으로 빙빙 돌려 휘익 던지는데 빙글빙글 도는 눈과 빼어 문 혀가 아이들을 웃음 짓게 한다.
부자영감은 딸을 걸고 장기를 두는데 반쪽이 옆으로 모여드는 구경꾼들이 판이 더 할수록 각양각색 표정으로 구경을 한다.
옆에 서 있는 당나귀에 모습은 주인이 지게되면 당나귀에게 화풀이를 할까봐 조마 조마하는 눈빛이란다.
세 컷으로 그려진 영감 집 풍경 첫날은 기필코 지켜 내리라는 결연함이 마당 한 가운데 있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틀날밤에는 강아지 눈에서 묻어나는 졸리 움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그런데 이억배 선생님이 실수를 하신 모양이다.
두 번째 밤 풍경에는 동그란 문고리가 그려져 있는데 모두 깊은 잠에 빠진 마지막 밤에는 문고리가 빠져있다.
이것도 아이들이 찾아낸 것이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에서는 정말 둥둥 꽹꽹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반쪽밖에 안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용감한 반쪽이는 어린이들에게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한글만 떼면 아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거의 스스로 책을 읽는다.
엄마들도 책을 많이 읽게 할 욕심으로 일찍 가르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책을 보면서도 글만 읽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글을 알더라도 엄마, 아빠가 옆에서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 속으로 직접 빠져 들어가 주인공과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해보는 것 같다.
글을 읽느라 글보다 더 재미있고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그림을 놓쳐버린다면....
그림책에 그림은 그림의 형태만이 아닐 것이다.
그림의 색깔, 붓의 기운, 색의 농도, 그림의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작가의 감성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소중한 작가의 그 감성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한다.
우리 아이는 지금은 한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안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 없이도 혼자 읽기도 하지만 아직도 읽어주는 걸 더 좋아한다.
분명 우리 아이는 책읽기를 통해 한글을 깨우친 것은 아니다.
정말 다 때가 되니까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의 조급증으로 그림책 보기에 참 재미를 빼앗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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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범벅 장수 옛날옛적에 4
한병호 그림, 이상교 글 / 국민서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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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책꽂이에는 두 권의 [도깨비와 범벅장수]가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고, 그림을 그린 분은 도깨비그림으로 유명하신 한병호 님으로 똑 같다.
다르다면 글을 쓰신 분이 이경애 님과 이상교 님이 시다는 거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책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다고 했을 때는 판형이나 살짝 바꿔 나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새로 나온 책을 읽고 난 뒤 처음으로 한말은 "와! 더 재미있네!" 다.
하긴 확실히 책이 진화를 했다.
전에는 보통의 그림책처럼 하드커버로 된 책이었는데
책표지도 한지를 사용해 더 고급스러워 졌고 책도 길고 날씬해 졌다..
글씨체도 흔히 볼 수 없었던 궁서체로 쓰여있고, 글도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신선하다.
책을 열 때도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왼편에서부터 볼 수 있게 만들어 졌다.
그림도 전에 그림보다 좀 더 부드러워져 무서운 도깨비보다는 불쌍하고 가엾은 도깨비로 잘 표현되어 있다.
할머니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듯한 입말의 글들이라 읽어주기도 좋고 아이들이 들으면서도 더 재미있어 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도깨비는 험상궂게 생겼어도 고약하거나 이유 없이 사람을 놀래 키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항상 어리숙하지만 은혜를 입으면 꼭 갚을 줄 아는 순박한 존재들인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도 마찬가지다.
도깨비들은 가난한 범벅장수의 호박범벅을 금돈, 은돈으로 값을 치르고 먹는다.
하지만 큰 요행보다는 착실하게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은 범벅장수 때문에 도깨비들은 더 이상 호박범벅을 맛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 달큰한 인간의 음식에 맛들였으니 도깨비들은 날마다 범벅을 그리워하게 된다.
가여운 도깨비들은 범벅장수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하기 위해  방해공작을 펼치지만 영리한 농부가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 다.
논밭에 가득 쌓인 돌멩이를 보고는 잘 되었다고 능청을 부리니 어리석은 도깨비들은 아차 싶어 개똥을 잔뜩 뿌려준다.
그 개똥이 거름이 되어 농사는 어찌나 잘 되던지... 농부가 다시 범벅장수 되기는 물 건너간 듯 싶어 다급해진 도깨비들은 농부에 땅에 말뚝을 막아 기를 쓰며 끌고 가려한다.
농사 잘 되는 땅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면 앞뒤 가리지도 않고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싶어 도깨비가 가엾다.
도깨비 방망이가 없다는 둥, 범벅장수가 범벅을 팔러 다닐 때는 가을이었는데 도깨비들이 범벅장수를 기다릴 때는 추운 겨울이라는 둥 그림을 보며 아이들은 재잘거린다.
전에는 도깨비의 어리석음만을 이야기하던 아이들인데 추운 겨울 거적 하나에 의지에 벌벌 떨고 있는 도깨비 모습에서  측은지심이라도 생겼는지  안 하던 소리를 한다.
"범벅장수 아저씨, 나쁘다. 도깨비 덕분에 부자가 됐는데, 호박범벅 좀 만들어 주지."
"근데 도깨비도 바보다. 금돈 은돈도 나오게 하고, 돌멩이도 나오게 하고, 똥도 나오게 하는 재주로 호박범벅 만들면 되잖아."
이 책을 읽을 때면 꼭 나머지 다른 한 권도 가져와 함께 읽는 다.
어른이 보기에는 같은 이야기의 그림책으로 생각되지만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혹 전에 출판되었던 책하고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라는 생각에 읽어보기를 포기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 연사 힘차게 외치고 싶다.
일단 한번 읽어보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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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다래끼 팔아요 국시꼬랭이 동네 9
신민재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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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다보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열광하는 책들이 있다.
<언어세상>에서 나온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가 그 중 하나이다.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여서 지나쳐버렸던 문화를 찾아내어 옛 아이들과 오늘의 아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책인 만큼 읽고 나면 부모와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미소짓게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며 좋아한다.
특히 [눈 다래끼 팔아요]는 고향 생각에 젖어 여러 번 보게 된다.
귀여운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보니 기교를 부리지 않고 그린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볼거리도 많다.
금방이라도 졸졸거리며 흐를 것 같은 개울가 풍경이라든가 좁은 나무 마루며, 꽃밭에 핀 해바라기, 과꽃이 내 고향 마을 그대로여서 더 정답고 반갑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지나간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이야 눈 다래끼 난 아이들이 흔하지 않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 흔했던 질병이었다.
병원도 약방도 귀했던 시절 한번 난 눈 다래끼는 다 나을 때까지는 아이들에 놀림감이 되었었다.
순옥이도 눈 다래끼 때문에  개구쟁이 남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모처럼 마을에 찾아 온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을 수도 없게 된다.
지금이야 휴대전화에 까지 카메라가 붙어 있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찍을 수 있는 게 사진이지만 그 시절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찍을 수 없었던 사진을 다래끼 때문에  찍을 기회를 놓친 순옥이는 울면서 집으로 온다.
할머니는 손녀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채고는 "할미가 눈 다래끼 낫게 해 줄 테니 울지 마라." 하신다.
쪼글쪼글 주름진 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민간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쓰신다.
어린 손녀가 놀래기라도 할까봐 "얼레빗에도 다래끼 나나?", "물고기 눈에도 다래끼 나나?"하시며 아이에 마음을 안심시키고는 다래끼 난 곳의 속눈썹을 쑥 뽑는 다.
그리고 그 속눈썹을 삼거리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하신다.
나도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당시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의사고 해결사였다.
배앓이라도 하면 할머니가 쓱 만져주셨는데 신기하게도 그 아픔이 잠잠해졌다.
또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할머니 치마폭만 잡고 있으면 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무서운 우리 엄마도 할머니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으니 할머니 나에게 든든한 보디가드였다.
순옥이에게도 할머니는 그러했으리라.
손녀가 찍고 싶어하는 사진을 꼭 찍어주고 싶어 사진사에게 특별히 부탁하셨을 할머니 마음이 전해져 와 돌아가신 지 오래된 우리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항상 지나간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다래끼가 나면 할머니를 먼저 찾았고, 할머니는 덧나지 않게 만지지 말 것을 당부 또 당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면 눈썹을 뽑아 주셨다.
뽑은 눈썹을 돌멩이 사이에 넣어서 골목길에 놓아두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럴 때면 난 그 돌멩이를 우리 식구나 내 친구가 차게 될까봐 가슴을 졸였다.
아마도 꼭 다른 사람이 그 돌멩이를 차서 다래끼가 옮아가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우리 조상들의 특유의 해학이 숨어 있었던 듯 싶다.
정월 대보름이면 더위를 팔았던 것처럼.
이제는 눈 다래끼 난 나를 놀렸던 친구도 없고, 빨래하던 개울가의 물도 다 말라 버렸지만 잊고 지냈던 추억만은 새록새록 살아난다.
지금은 그림책 속과 너무나 달라진 내 고향이지만 마음만은 어린 시절 내가 되어 먼지 폴폴 나는 골목을 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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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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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읽기 전까지는 저자인 공선옥을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얼기미에 배추를 건져 확독에 물 고추를 갈아 김치를 담그고, 학교 갈 때면 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를 아이들과 줄지어가고, 학교 끝나고 도시락 뚜껑에 잔디 씨를 훑어야했던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그이가 궁금해졌다.
시골 농부에  딸로 태어나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보고 자랐고, 농촌의 참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살고 있는 작가가 언니 같고,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후면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 다가온다.
도청분수대 앞에는 무대가 설치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 날에 슬픔을 함께 느끼며 시대의 변화에 가슴 벅차할 것이다.
내 기억 속에 80년 오월은 마을 앞 신작로에는 차한대 다니지 않았고 어른들은 목소리를 죽이며 광주에 난리가 났다고들 수군거렸다.
한때는 광주사태라고 불리던 그 날에 진실이 밝혀지고 숨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는 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이 병든 이들이 남아 있고 억울함이 남아있는 광주의 이야기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현실이다.
내가 어린 시절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공부 잘하고 똑똑해서 시골에서 어렵게 대학을 보내 놓으면 하나같이 공부는 안하고 모두 데모 현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등골 빠지게 일만 하는 부모에 심정을 안다면 어찌 저렇게 변할 수 있나하는 생각에 어른들 말대로 모두 대학만 가면 빨간 물이 저절로 드는 줄 알았다.
그때는  눈과 귀를 막는 세상이었으니 뭐가 그르고 오른 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살았으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눈 ,귀 다 뜨고 있는 지금도 나는 복잡하고, 어렵고, 참기 힘든 현실에 한발 짝 물러나 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 마음이 힘든 것을 핑계로 한발자국 떨어져 보고 있다.
나는 어쩜 스스로 눈 막고, 귀 막는 세월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직 나에게 직접 해당사항이 있는 이야기에는 벌떼처럼 흥분하면서 나와는 떨어져있는 이웃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내 조카 또래의 아이들인 미순이, 효순이에 죽음보다는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였고, 천성산의 도룡뇽 때문에 단식하는 지율 스님을 보면서도 피 같은 세금을 먼저 생각했고, 머나먼 이라크에서 죽어간 우리 젊은이 김선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의 가족사를 더 궁금해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내 이웃을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내 집 울타리에 내 가족에게만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급식비를 못내 학교 급식에서 제외된 아이들에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TV에서 나오는 맛난 음식에 먼저 눈을 돌렸다.
나도 분명 미원으로 맛을 내고, 고기라고는 명절 때와 모심고 탈곡하던 날 품앗이 일꾼들 밥상에 올랐던 김칫국 속 돼지고기 몇 점이 전부이던 시절을 살았으면서도 그 시절을 잊고 살았다.
아직도 그 어렵던 시절처럼 살고 있는 내 이웃에게 등 돌리고 살았었다.
세상사는 게 모두 참말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수는 없겠지만 내 앞에 놓인 행복만을 끌어안고 있지 말고 내 등뒤에 서럽게 울고 있는 이에게 눈 돌리는 법을 이 책을 읽으며 배웠다.

<한 해의 맨 마지막 계절의 겨울이다. 그리고 한 해의 맨 처음의 계절 또한 겨울이다. 겨울 속에는 그렇듯 마지막과 처음이 함께 있다.
한 해의 마지막인 이 계절에. 우리는 한 해의 처음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우듯이 말이다. 할아버지에게 절망은 희망의 다른 말이듯이, 모든 마지막은 모든 처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봄이다.
너무 눈부셔 서러운 계절이다.
그래도 봄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는 행복할 것이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해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이도 세상에는 많은 데.
아무도 눈 가리고, 귀 막지 않은 이 시대에 스스로 눈, 귀 막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이 계절이 더 서러워진다.
살아가면서 거짓말만이 전부 넘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내 이웃을 향해 눈 맞추며 그래도 언젠가는 참말처럼 사는 날이 꼭 있을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봄이 영 안 올 것 같았던 겨울이 지난 뒤. 분명 봄이 온 것처럼 언제인가는 오늘 거짓말 같은 날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옛날 서럽던 시절을 지금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처럼 언제인가는 오늘을 추억하는 날이 틀림없이 올 거라는 희망에 끈만은 놓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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