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다래끼 팔아요 국시꼬랭이 동네 9
신민재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책을 읽다보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열광하는 책들이 있다.
<언어세상>에서 나온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가 그 중 하나이다.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여서 지나쳐버렸던 문화를 찾아내어 옛 아이들과 오늘의 아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책인 만큼 읽고 나면 부모와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미소짓게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며 좋아한다.
특히 [눈 다래끼 팔아요]는 고향 생각에 젖어 여러 번 보게 된다.
귀여운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보니 기교를 부리지 않고 그린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볼거리도 많다.
금방이라도 졸졸거리며 흐를 것 같은 개울가 풍경이라든가 좁은 나무 마루며, 꽃밭에 핀 해바라기, 과꽃이 내 고향 마을 그대로여서 더 정답고 반갑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지나간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이야 눈 다래끼 난 아이들이 흔하지 않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 흔했던 질병이었다.
병원도 약방도 귀했던 시절 한번 난 눈 다래끼는 다 나을 때까지는 아이들에 놀림감이 되었었다.
순옥이도 눈 다래끼 때문에  개구쟁이 남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모처럼 마을에 찾아 온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을 수도 없게 된다.
지금이야 휴대전화에 까지 카메라가 붙어 있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찍을 수 있는 게 사진이지만 그 시절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찍을 수 없었던 사진을 다래끼 때문에  찍을 기회를 놓친 순옥이는 울면서 집으로 온다.
할머니는 손녀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채고는 "할미가 눈 다래끼 낫게 해 줄 테니 울지 마라." 하신다.
쪼글쪼글 주름진 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민간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쓰신다.
어린 손녀가 놀래기라도 할까봐 "얼레빗에도 다래끼 나나?", "물고기 눈에도 다래끼 나나?"하시며 아이에 마음을 안심시키고는 다래끼 난 곳의 속눈썹을 쑥 뽑는 다.
그리고 그 속눈썹을 삼거리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하신다.
나도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당시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의사고 해결사였다.
배앓이라도 하면 할머니가 쓱 만져주셨는데 신기하게도 그 아픔이 잠잠해졌다.
또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할머니 치마폭만 잡고 있으면 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무서운 우리 엄마도 할머니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으니 할머니 나에게 든든한 보디가드였다.
순옥이에게도 할머니는 그러했으리라.
손녀가 찍고 싶어하는 사진을 꼭 찍어주고 싶어 사진사에게 특별히 부탁하셨을 할머니 마음이 전해져 와 돌아가신 지 오래된 우리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항상 지나간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다래끼가 나면 할머니를 먼저 찾았고, 할머니는 덧나지 않게 만지지 말 것을 당부 또 당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면 눈썹을 뽑아 주셨다.
뽑은 눈썹을 돌멩이 사이에 넣어서 골목길에 놓아두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럴 때면 난 그 돌멩이를 우리 식구나 내 친구가 차게 될까봐 가슴을 졸였다.
아마도 꼭 다른 사람이 그 돌멩이를 차서 다래끼가 옮아가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우리 조상들의 특유의 해학이 숨어 있었던 듯 싶다.
정월 대보름이면 더위를 팔았던 것처럼.
이제는 눈 다래끼 난 나를 놀렸던 친구도 없고, 빨래하던 개울가의 물도 다 말라 버렸지만 잊고 지냈던 추억만은 새록새록 살아난다.
지금은 그림책 속과 너무나 달라진 내 고향이지만 마음만은 어린 시절 내가 되어 먼지 폴폴 나는 골목을 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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