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읽기 전까지는 저자인 공선옥을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얼기미에 배추를 건져 확독에 물 고추를 갈아 김치를 담그고, 학교 갈 때면 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를 아이들과 줄지어가고, 학교 끝나고 도시락 뚜껑에 잔디 씨를 훑어야했던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그이가 궁금해졌다.
시골 농부에  딸로 태어나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보고 자랐고, 농촌의 참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살고 있는 작가가 언니 같고,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후면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 다가온다.
도청분수대 앞에는 무대가 설치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 날에 슬픔을 함께 느끼며 시대의 변화에 가슴 벅차할 것이다.
내 기억 속에 80년 오월은 마을 앞 신작로에는 차한대 다니지 않았고 어른들은 목소리를 죽이며 광주에 난리가 났다고들 수군거렸다.
한때는 광주사태라고 불리던 그 날에 진실이 밝혀지고 숨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는 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이 병든 이들이 남아 있고 억울함이 남아있는 광주의 이야기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현실이다.
내가 어린 시절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공부 잘하고 똑똑해서 시골에서 어렵게 대학을 보내 놓으면 하나같이 공부는 안하고 모두 데모 현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등골 빠지게 일만 하는 부모에 심정을 안다면 어찌 저렇게 변할 수 있나하는 생각에 어른들 말대로 모두 대학만 가면 빨간 물이 저절로 드는 줄 알았다.
그때는  눈과 귀를 막는 세상이었으니 뭐가 그르고 오른 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살았으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눈 ,귀 다 뜨고 있는 지금도 나는 복잡하고, 어렵고, 참기 힘든 현실에 한발 짝 물러나 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 마음이 힘든 것을 핑계로 한발자국 떨어져 보고 있다.
나는 어쩜 스스로 눈 막고, 귀 막는 세월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직 나에게 직접 해당사항이 있는 이야기에는 벌떼처럼 흥분하면서 나와는 떨어져있는 이웃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내 조카 또래의 아이들인 미순이, 효순이에 죽음보다는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였고, 천성산의 도룡뇽 때문에 단식하는 지율 스님을 보면서도 피 같은 세금을 먼저 생각했고, 머나먼 이라크에서 죽어간 우리 젊은이 김선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의 가족사를 더 궁금해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내 이웃을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내 집 울타리에 내 가족에게만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급식비를 못내 학교 급식에서 제외된 아이들에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TV에서 나오는 맛난 음식에 먼저 눈을 돌렸다.
나도 분명 미원으로 맛을 내고, 고기라고는 명절 때와 모심고 탈곡하던 날 품앗이 일꾼들 밥상에 올랐던 김칫국 속 돼지고기 몇 점이 전부이던 시절을 살았으면서도 그 시절을 잊고 살았다.
아직도 그 어렵던 시절처럼 살고 있는 내 이웃에게 등 돌리고 살았었다.
세상사는 게 모두 참말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수는 없겠지만 내 앞에 놓인 행복만을 끌어안고 있지 말고 내 등뒤에 서럽게 울고 있는 이에게 눈 돌리는 법을 이 책을 읽으며 배웠다.

<한 해의 맨 마지막 계절의 겨울이다. 그리고 한 해의 맨 처음의 계절 또한 겨울이다. 겨울 속에는 그렇듯 마지막과 처음이 함께 있다.
한 해의 마지막인 이 계절에. 우리는 한 해의 처음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우듯이 말이다. 할아버지에게 절망은 희망의 다른 말이듯이, 모든 마지막은 모든 처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봄이다.
너무 눈부셔 서러운 계절이다.
그래도 봄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는 행복할 것이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해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이도 세상에는 많은 데.
아무도 눈 가리고, 귀 막지 않은 이 시대에 스스로 눈, 귀 막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이 계절이 더 서러워진다.
살아가면서 거짓말만이 전부 넘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내 이웃을 향해 눈 맞추며 그래도 언젠가는 참말처럼 사는 날이 꼭 있을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봄이 영 안 올 것 같았던 겨울이 지난 뒤. 분명 봄이 온 것처럼 언제인가는 오늘 거짓말 같은 날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옛날 서럽던 시절을 지금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처럼 언제인가는 오늘을 추억하는 날이 틀림없이 올 거라는 희망에 끈만은 놓치지 말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