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에서 1년에 네 권씩 출간하는 시리즈로 올 초에 처음 알게 된 시리즈다.작년 2024년 여름호에는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된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과 우수상을 수상한 서장원 작가의 <리틀 프라이드>가 실려있다.두 편은 이미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통해 읽었고 함윤이 작가의 <천사들(가제)>는 처음 읽은 작품이다.<그 개와 혁명>과 <천사들(가제)> , 두 작품 모두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예소연 작가가 과거 운동권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의 모습을 슬프기보다는 유쾌하게 그렸다면 함윤이 작가는 장례식이 있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주인공이 망자와 함께 하는 꿈속 이야기가 중심이다.죽음은 끝이기에 슬프다.소설 속 주인공들은 큰 소리로 우는 것이 아닌 각자 다른 방법으로 죽은 이들을 애도한다.지인들에게 아버지의 유언을 전달하는 딸도 있고 빠른 교통편이 아닌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가며 친구를 기억하며 느리게 장례식장에 가는 주인공도 있다.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지는 각자에 몫이지만 만약 내가 떠나는 사람이라면 예소연 작가 방식으로 이별하고 싶다.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애썼던 부분을 아는 것도 재미있지만 미처 작가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읽어내 질문하는 인터뷰어의 질문도 재미있다.
오빠는 위층, 여동생은 아래층, 남매는 사이좋게 이층 침대를 나눠 쓰고 있습니다.그런데 동생은 자꾸만 오빠가 자는 이층이 탐이 납니다.동생이 어렵게 “나도 위층에서 자고 싶어.” 라고 말하자 “위층은 엄청 위험해. 너는 아직 안 돼.”라고 오빠는 단칼에 거절합니다.오빠는 왜 이층이 위험하다고 했을까요?쉽게 잠이 들지 않는 밤, 오빠와 동생은 이층 침대를 타고 환상의 모험을 떠납니다.유령 나라에 가서 유령을 놀라게 해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침대가 나무 위에 집이 되어 정글 속 동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매일 밤 남매의 이층 침대는 아이들을 모험의 나라로 데려다줍니다.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층 침대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그림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피는 것은 물론 위아래층에 누운 남매가 잠들기 전 나누는 대화를 다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모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집니다.아이들이 펼치는 무궁무진한 모험과 오빠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행복합니다.어른이 읽어도 아이들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발바닥이 간질거리는 데 아이들은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지네요.아마도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불깃을 꼭 쥐고 숨을 죽이고 쑥쑥 커지는 침대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질 것 같네요.소란스러워지기는 하겠지만 잠자리에 읽어주기에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고른 위픽 시리즈다.요즘 핫한 젊은 작가 중 한 분, 성해나라는 이름만 믿고 읽기 시작한다.건축학과 4학년인 재서는 의심이 많고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교수에게 “숙제”라는 평가를 받는다.반면 응용수학과에서 전과한 이본은 같은 교수에게 “귀감”이라는 말을 듣는다.그런 이본과 재서는 한 학기 수업 내내 등고선만 그리게 한다는 악명을 듣는 문교수의 서머스쿨에 참여하게 된다.경주 변두리의 이백 년 된 고택 개축을 위해 조사차 현장에 나간 둘은 서로 다른 성격 탓에 어울리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다.교수가 지시한 바를 따르려는 재서와 더 편리한 방법을 택하려는 이본은 의뢰인의 의견과 달리 ‘개축‘이 아닌 ’재건‘으로 의견을 모은다.그런 둘에게 문교수는 경주를 둘러볼 것을 제안하고 둘은 한여름의 경주를 샅샅이 살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된다.전혀 다른 성격의 같은 과 학생인 이본과 재서의 이야기는 재서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재서는 자신의 장점을 찾기보다 이본과 비교하며 자신의 약점에 몰두하며 힘들어한다.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도시 경주의 고택에 살면서도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녀와 고택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이본과 재서는 닮은 듯하다.어려움이 닥치자 고택에 살던 그들은 그동안 오해했던 주민들의 진심을 알게 되고 재서와 이본 역시 경주를 제대로 본 후 왜 고택을 개축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단점이었던 고택의 불편했던 점들이 어느 순간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달리 보이듯 조심성 많은 재서의 성격이 천천히 그려지는 등고선만큼 편안하게 느껴진다.천양지차 다른 성격의 이본과 재서가 마주 잡은 손을 쉬 놓지 않을 것 같아 기분 좋아진다.그나저나 여름날의 경주에 가보고 싶다.
<본 도서는 황금가지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받았습니다.>2001년 <13계단>으로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는 데뷔작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다.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과작의 작가인 그의 새로운 작품에 늘 목말라하던 차에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단편집을 출간한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13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정리 해고된 사와키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다니무라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퇴근 후 집으로 가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이상한 ‘발소리’를 듣는다는 다니무라는 사와키에게 그 발소리가 진짜 들리는지 확인을 부탁한다.표제작인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미야코가 괴한에 의해 살해당하자 경찰은 약혼자인 요네무라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뚜렷한 물증을 찾을 수 없다.고심 끝에 경찰은 사건 현장으로 요네무라를 데려가고 그곳에서 미야코의 유령과 마주치게 된다.’세 번째 남자’는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남자가 되는 꿈을 꾼 마리코가 자신의 전생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꿈속에 등장했던 사고 장소를 찾아간다.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가장 끔찍했던 ‘아마기 산장‘은 전쟁이 끝나고 13년이 지난 1958년 경이 배경인 소설이다.소설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미조로 박사가 전쟁 중 근무했던 부대가 생체 실험을 했던 731부대로 짐작되기에 그의 집념이 더더욱 공포스럽다.‘두 개의 총구’는 밀폐된 건물에 총격에 의한 무차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찾아들고 그곳에 혼자 있는 이시야마는 어떻게든 그를 피해 숨어야 한다.스스로를 ’제로’라고 이름 지은 남자는 자신에 대한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해변에서 깨어난다.모두 6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작가의 전작인 <건널목의 유령>에서 접했던 심령 서스펜스와 같은 종류의 소설 등과 sf 소설로 이루어졌다.표제작을 비롯한 네 편의 소설에는 유령 같은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게 한다.실제로도 범행 후 범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쫓기기도 하고 사건을 맡은 수사관의 꿈에 피해자가 등장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니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이해할 수 없는 심령 현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평범한 모습을 한 인간들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까닭에 읽는 내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가독성이 너무 좋아 후루룩 읽게 되지만 다 읽은 후 읽은 시간보다 더 오래 인간의 잔혹성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이 계절에 읽기에 딱 좋은 소재의 이야기라 많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본 도서는 이덴슬리벨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소설은 작가인 줄리엣에게 어느 날 채널제도 건지섬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도시 애덤스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우연히 예전 줄리엣이 판매한 찰스 램의 책 안 쪽에 적힌 주소를 보고 편지를 보낸다는 도시는 자신을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으로 소개하고 현재 독일군이 점령했던 섬에는 서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런던에 있는 서점의 주소를 알아봐 줄 수 있는지 부탁한다.줄리엣은 자신이 팔았던 책 덕분에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는 도시의 편지에 감동해 찰스 램의 다른 책을 보내고 편지로 교류하기 시작한다.그리고 도시뿐 아니라 건지섬의 북클럽 회원들과도 편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특이한 이름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생긴 사연에 대해 듣게 되고 그 중심에 ‘엘리자베스 매케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였던 건지섬 주민들은 어린 자식들과 생이별을 하고 고립되었다는 두려움과 기아에 허덕이며 이웃의 감시를 받기도 한다.독일군 몰래 숨겨 키우던 돼지를 잡아 파티를 연 주민들은 통금시간이 가까워지자 각자 집으로 돌아가다 독일군의 검문에 걸리게 된다.다행히 엘리자베스의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독일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북클럽 모임을 시작하게 된다.소설은 줄리엣이 건지섬 주민들과 친구 소피, 그리고 소피의 오빠이자 출판사 대표인 시드니, 그리고 줄리엣의 남자 친구인 마크와 주고받은 편지와 전보, 쪽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간체 형식이다.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써 내려간 건지섬사람들의 편지는 줄리엣의 다음 작품의 영감을 주고 그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건지섬에 가게 된다.섬 사람들의 환대를 받은 줄리엣은 더더욱 건지섬의 북클럽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엘리자베스의 일생에 관심을 갖게 된다.전쟁 중 책이 사람들에게 주었던 위안과 하녀의 딸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강인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던 여인이자 엄마였던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이다.특별한 규칙이 없이 진행된 북클럽은 전쟁이라는 어려운 시절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했고 부모 잃은 아이를 보듬게 한다.천성이 착한 이들이었는지 아니면 독서를 통해 품이 넓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북클럽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살피게 된다.소설은 서로 주고 받는 편지를 통해 섬의 역사와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전쟁의 공포는 물론 그 안에피어나는 절절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녹여 담는다.특히 북클럽 회원들의 독서는 각자의 형편과 관심사에 따라 형식이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흥미롭게 펼쳐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의 작가가 등장할 때면 친근감과 반가움을 느끼게 한다.이 소설은 십 여 년 전에 타 출판사에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당시 읽은 책으로 꽤나 인상 깊게 읽었기에 언젠가 꼭 재독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다시 읽게 되었다.시간이 꽤 지난 탓에 소설의 자세한 부분까지 기억하지 못해 새로운 이야기를 읽은 기분이었지만 처음 읽을 때의 감동은 다시 찾아왔다.이모와 조카 사이인 작가들의 사연도 소설 속 이야기만큼 가슴 아파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